칼럼

2012년 12월

작성일 : 2022-08-29 08:54조회 : 751

2012년 12월

위 사진은 2012년 12월 말, 그러니까 그해 대선이 끝나고 <주간경향>에서 무슨 기사를 쓴다고 해서 평소에 알던 김석구 사진기자가 대학 연구실에 와서 찍은 여러 장 중의 하나이다. 김석구 기자는 당시 경향신문 사진부에서는 가장 선임이었고 얼마 후 퇴직했다. 그렇게 해서 그 때 찍은 몇 장의 사진은 내가 중앙대에 찍은 마지막 사진이 되었다. 그 때 사진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은 아래에 첨부한 것(위에 있는 것)인데, 이런 자연스러운 사진은 웬만한 사진기자도 찍기가 어렵다고 생각된다.

나는 당시 30년간 있었던 대학을 65세 정년보다 4년 빨리 퇴직하기로 결정하고 총장한테 명예퇴직원을 낸 후였다. 물론 총장은 만류했지만 대학 당국은 내 의사를 존중해서 그렇게 처리를 해 주었다. 2013년 새해 들어서 연구실을 정리했는데, 오랫동안 보지 않고 서가(書架)에서 잠자고 있던 전문서적 몇몇은 후배 교수들이 가져갔지만 많은 자료와 책은 재활용 폐기물 신세가 되고 말았다. 우리 세대는 외국 저널이 매우 소중했기 때문에 모아놓은 것이 많았지만 온라인 외국 학술서적 서비스가 대학에 들어 온 다음에는 무용지물이 돼서 역시 재활용 공장으로 향하고 말았다.

미국 대학 교수들의 연구실은 우리에 비해선 좁은 편이다. 책과 자료를 자기 돈 들여서 살 일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우리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교수가 자기 돈 들여서 저널과 외국 책을 사지 않으면 학술논문을 쓸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교수 연구실은 거대한 자료실이 되고 말았다. 나이 든 교수 연구실에서 헌책방 냄새(곰팡이 냄새)가 나는 경우가 흔했다. (물론 열심히 연구했던 교수들의 경우다.) 나는 옛날 책을 무조건 껴안고 사는 대책이 없는 부류는 아니었지만,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일은 보통이 아니었다. 책과 자료를 분류해서 버릴 것은 버리고 집으로 가져 올 것은 가져오고 하는데 꼬박 두 달이 걸렸다.

우리 세대가 교수생활을 시작한 1980년대 만 해도 대학이 가난해서 연구실에 집기다운 집기를 비치해 주지 못했다. 결국 자기 돈을 들여서 책상 서가 소파 등을 들여 놓고 몇 번씩 개비(改備)하곤 했다. 컴퓨터라는 게 생기자 그것도 자기 돈을 들여서 연구실과 집에 들여 놓아야 했다. XT, AT, 386, 486을 거쳐서 펜티엄 시리즈까지 도무지 컴퓨터와 노트북을 몇 대나 샀던지는 정확히 셀 수가 없는데, 대학 연구실에서 쓰는 컴퓨터만 5~6대는 샀던 것으로 기억된다. 2000년대 초 들어서 무슨 계기였는지 대학이 모든 교수들에게 노트북을 사주었고, 언젠가 부터는 신임교수들에게 컴퓨터를 기본으로 배정해 주었다. 세상이 많이 좋아 진 것이다.

10년 전에 내가 대학을 떠날 때 교수 생활 30년차인 정교수는 세전(稅前) 연봉이 1억 원 정도였는데 (물론 대학 마다 차이가 있다), 그 연봉이면 초임 조교수를 2명 채용할 수 있어서 대학으로서는 나이 든 교수가 나가 주는 것이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그런 시스템이 그렇게 잘 기능하지는 않는다. 대학 교수는 정년이 없는 미국 대학에서도 나이든 교수들을 내 보내기 위해 명예퇴직 제도를 운영했더니 유능한 늙은 교수들이 명예퇴직금 받고 나가서 다른 대학으로 옮겨가고, 제발 나가주었으면 하는 무능한 늙은 교수들은 버티고 있어서 이제는 그런 제도를 운영하지 않는다. 미국에선 늙은 교수를 내보내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다. 강의 평가가 나쁘다는 등 온갖 자료를 내밀어도 변호사를 고용해서 노인 차별로 소송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 대학 당국은 속수무책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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