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바이마르 공화국의 교훈

작성일 : 2022-09-09 17:27조회 : 804

바이마르 공화국의 교훈

가장 민주적인 헌법을 자랑했던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이 허무하게 무너지고 히틀러의 제3제국이 들어선 과정은 1970년대 초 대학을 다녔던 우리들에게도 수수께끼였다. 대학 1학년 때 정치학 과목에선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필수 도서였다. 우리는 연세대 이극찬 교수님이 번역한 그 책을 필독서로 생각하고 읽었다. 2학년이 돼서 헌법을 공부할 때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실패를 2원적 집정부(執政府)라는 정부 형태의 실패로 해석하는 설명에 우리는 익숙해졌다. 당시 우리 헌법 학자들이 칼 뢰벤스타인이라는 독일계 미국 정치학/헌법 교수의 정부구조/정치과정 이론에 깊이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바이마르 공화국이 무너지고 히틀러가 집권을 하게 되는 배경에는 경제, 정치, 사회, 심리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고, 당시 프랑스 3공화국 정치인들과 영국의 챔벌레인 총리가 독일 상황을 잘못 읽어서 2차 세계대전이란 미증유(未曾有)의 비극을 초래했음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도대체 그 유명한 철학자 과학자 예술가를 탄생시킨 독일에서 그런 황당한 일이 발생했음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국회 임기가 끝나고 한가할 때 바이마르 공화국의 몰락과정을 그린 아래의 책 <The Death of Democracy>를 재미있게 읽었다. 역사가(historian)는 역사적 사실을 조합해서 자기만의 스토리로 만드는 사람(story teller)인데, 이 책의 저자 벤자민 카터 헤트(Benjamin Carter Hett)는 20세기 전반기 독일에 관한 미국 최고의 역사가로 등극한 인물이다. 뉴욕 로체스터에서 태어나서 캐나다에서 성장한 그는 1987년에 알버타 대학을 졸업하고 토론토 대학 로스쿨을 나와서 변호사를 몇 년 하다가 적성이 아님을 깨닫고 다시 토론토 대학에서 역사학 석사를 하고 하버드에서 2001년에 역사학 박사학위를 땄다. 2003년부터 뉴욕 시립대(CUNY) 교수로 있으면서 그는 나치스 집권 전후에 관한 책을 여러 권 펴냈다.

히틀러를 소송 증언대에 세우고 3시간 동안 심문했다가 결국 수용소에서 젊은 나이에 죽은 한스 리텐 변호사의 일대기인 <Crossing Hitler>(2008년), 나치 집권의 계기였던 의사당 방화를 다룬 <Burning the Reichtag>(2014년)을 펴내서 호평을 받았다. 이 책 <The Death of Democracy>(2018년)은 바이마르 공화국이 무너지고 나치가 집권을 하는 과정을 잘 그려냈다. 우습게 시작한 나치당이 지지 세력을 확장해서 의회 등 제도권 정치를 압도해 버리는 과정이 잘 그려져 있다. 이렇게 해서 대의민주주의 보루(堡壘)인 의회가 무너지고 지옥문이 활짝 열려 버린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이 보다 더 시의적절할 수 없다”(".. could not be more timely")고 서평 기사를 내보냈다. 나치스 세력이 의회 중심의 제도권 정치를 무너뜨린 모습에서 트럼프를 열렬하게 지지하는 세력에 굴복한 공화당, 그리고 그로 인해 판도가 결정된 2016년 대선을 볼 수 있음을 둘러서 표현한 것이다. 광적(狂的)인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팬덤 정치가 정당의 의사결정 과정을 장악하면 본선에서 유권자들은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갖지 못한다. 우리나라도 지난 대선에서 양당은 의회 경험이 많은 두 사람을 젖히고 대중적 팬덤에서 강점을 보인 두 사람을 후보로 각각 선출했다. 그렇게 해서 한 사람은 대통령이 됐고 다른 한 사람은 야당 대표가 됐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지금 각각 다른 위기에 처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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