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패트 닉슨 영결식

작성일 : 2022-09-27 10:43조회 : 742

패트 닉슨 영결식

근래에 있었던 미국 대통령 장례식으로서는 2004년 6월 5일에 타계한 로널드 레이건의 경우가 가장 장엄했다. 존 F. 케네디 암살(1963년 11월)과 린든 존슨 타계(1973년 1월) 후 20년 만에 닉슨이 타계(1994년 4월)했는데, 닉슨은 불미스럽게 사임했기 때문에 장례식도 조촐하게 치렀다. 따라서 성공적인 대통령이었던 레이건이 타계하자 미국은 오랜만에 장엄한 국장을 치렀다. 레이건 영결식에서 낸시 여사와 마가릿 대처 전 총리가 레이건의 관(棺)에 작별 인사를 하는 모습은 특히 깊은 감동을 주었다.

전직 대통령 또는 그 배우자의 영결식에서 조사(弔辭)를 읽다가 감정이 북받쳐서 울먹이는 경우는 있지만 전직 대통령이 오열(嗚咽)을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닉슨은 부인 패트 여사 영결식에서 오열은 물론이고 거의 통곡을 하다시피 했다. 닉슨의 부인 패트(Pat Nixon 1912~1993. 6.22) 여사는 1993년 6월에 사망해서 캘리포니나 요바 린다에 있는 닉슨 기념도서관 앞에서 영결식이 열렸다.

매력적인 재클린 케네디에 가려서 패트 닉슨은 거의 잊힌 사람이 됐지만 나는 패트 닉슨이야말로 전통적 의미에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헌신적으로 그리고 가장 충실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다른 퍼스트레이디와 달리 패트 여사는 닉슨이 하원의원 출마할 때부터 선거운동을 앞장서서 했다. 그 후 하원의원 재선과 상원의원 선거, 부통령 후보로서 두 번 치른 대선. 패배로 끝난 1960년 대선과 1962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 그리고 1968년과 1972년 대선까지 선거 때 마다 앞장서서 남편을 도왔다. 뿐만 아니라 패트 여사는 다른 공화당 후보를 위해 지원 유세까지 했다.

닉슨은 내성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오직 정치와 공적 일에만 몰두하는 스타일이었고 부인에게 따듯한 말 한마디 할 줄 몰랐다. 카메라 앞에서도 닉슨은 부인에게 다정한 모습을 보일 줄 몰랐고 패트 여사가 남편 손을 잡고 정다운 모습을 억지로 연출했다. 닉슨은 자기의 정치적 행로에 대해서도 혼자 결정하고 부인에게 통보하는 식이었다. 무엇보다 워터게이트로 인해 대통령을 사임해야 하는 상황은 패트 여사에게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1974년 8월 9일,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패트 여사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면서 담담하게 백악관을 나와서 마지막으로 대통령 헬기를 타야만 했다.

패트 여사는 10대에 부모를 여의고 남동생 둘을 돌보면서 일을 해가면서 남가주 대학(USC)을 나온 의지의 여인이었다. 닉슨은 자기와 성장 배경이 비슷한 패트에게 첫눈에 반해서 청혼을 해서 두 사람은 결혼을 했다. 부통령 부인으로서 그리고 퍼스트레이디로서 패트 여사는 장애인, 고아 같은 어려운 사정에 있는 사람들을 자주 방문했다. 닉슨과 함께 사이공을 방문했을 때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군사병원을 방문해서 부상당한 병사들을 위로했다.

백악관을 나온 후에 닉슨은 책을 펴내는 등 사회 활동을 재개했으나 패트 여사는 집에 칩거하고 외부 출입을 거의 하지 않았다. 정치인의 아내, 그것도 성격이 괴팍하고 급하며 여자를 배려할 줄 모르는 정치인의 아내로서 스트레스가 많았던 패트 여사는 평소에 담배와 잭 다니엘 같은 위스키를 즐겼다.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리던 패트 여사는 1993년 6월 22일 사망했다.

패트 닉슨의 영결식은 캘리포니아 요바 린다에서 있었는데, 로널드 레이건 부부와 제럴드 포드 부부, 그리고 밥 돌 상원의원 등 가까운 사람들만 참석했다. 닉슨은 그 날 소리 내어 울었고 특히 하관(下棺) 때는 통곡을 하다시피 했다. 닉슨은 따듯하게 해주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백악관을 나와야 하는 치욕을 안겨준 데 대해 미안하다고 말 한마디 하지 못한 자신을 돌아보고 그렇게 오열했을 것이다. 부인을 먼저 보낸 닉슨은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10달 후에 사망해서 부인 옆에 묻혔다.

사진 (1) 패트 여사 영결식 장면. 닉슨 옆은 빌리 그레이엄 목사
사진 (2) 오열하는 닉슨. 옆은 큰 딸 트리샤, 손자, 그리고 사위 에드 콕스
사진 (3) 닉슨 가족 백악관 공식 사진. 왼쪽이 둘째 딸 줄리와 사위 데이비드 아이젠하워(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손자). 오른 쪽이 큰 딸 트리샤와 사위 에드 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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