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흑산 공항 문제

작성일 : 2023-02-02 16:45조회 : 538

흑산 공항 문제

20대 국회 시절인 2018년, 흑산 공항 사업은 국립공원위원회에서 거의 통과되기 직전에 있었다. 나는 국립공원 경내에서 공항을 건설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서 당연히 안 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고 해서 놀랐다. 환경/생태적 근거로 사업의 부당함을 입증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마지막 심의를 앞둔 시점에 그 사안을 살펴 보았더니 활주로가 너무 짧아 보였다. 그래서 세계의 위험한 공항, 프로펠러 항공기 안전성 같은 문제를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흑산 공항에서 운용하기로 한 프랑스제 항공기 ATR은 사고가 거의 매년 한두번씩 났음을 알게 됐다. 주로 아프리카, 동남아, 중남미에서 사고가 많이 났지만 2015년 타이완, 2017년 캐나다 등에서도 사고가 났다. 미국은 1994년 아메리칸 이글 사고 후 기체 해빙(解氷)장치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돼서 그 후론 주로 화물운송용으로 사용하고 있음도 알게 됐다.

익명을 요구한 항공전문가한테 물어 보았더니, 이런 말을 했다. 활주로 1,100미터는 너무 짧아서 흑산 공항에서 이륙을 하면 항공모함에서 전투기가 이륙하는 모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활주로가 짧은 항공모함에서 전투기가 발진하면 전투기가 잠시 바다로 내려앉는 듯하다가 엔진 추진력으로 하늘로 솟아오르는데, 흑산 공항에서 승객을 꽉 채운 ATR이 이륙하면 활주로를 떠나서 잠시 갈아 앉는 듯하다가 상승해야 하는데 제때 상승하지 못하면 바다에 빠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 이런 상황을 시뮬레이션 해 보았나를 알아보았더니 능력있는 기관에서 그것을 했는지도 의문이었다. 그러면 왜 하필 ATR인가를 알아보았다. 문제는 40인 정도를 태우는 항공기 기종이 별로 없고, ATR이 상대적으로 저가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제3세계에서 많이 운용하는 것이다.

국립공원위원회 심의를 앞두고 환노위에서 이런 문제가 제기되고 국토부가 제대로 답변을 못하자 국립공원위원회 위원들이 심의를 보류해서 무산돼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이 흑산 공항은 문재인 정부의 국책사업이었고 2018년 지방선거 공약이었다. 환노위에서 국민의힘(당시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관심이 없었고 수도권 출신 민주당 의원 몇 명은 내심으로는 못마땅했지만 표면적으로 반대할 수는 없었는데, 내가 나서는 바람에 무산돼 버렸다.

당시 환경부 장관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나중에 감옥살이를 한 김은경이었다. 순진하고 소박한 김은경 장관은 흑산 공항 사업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지만 사업 승인 여부는 국립공원위원회의 권한이었다. 김은경 장관은 흑산 공항 사업안이 부결되자 좋아했지만, 이것이 결국 정권 수뇌부에 좋지 않게 보여서 장관직을 그만두고 또 블랙리스트 수사에 그냥 노출되는 결과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은경 장관이 문재인 정권 수뇌부와 갈등을 빚은 또 다른 사안은 풍력 발전이었다. 문 정부는 탈원전을 앞세우고 환경친화적이라는 태양광과 풍력 발전에 몰두했다. 경북 영양군에선 산꼭대기 능선에 풍력발전기를 대규모로 세워서 민원이 많았다. 환경영향평가를 해도 요식행위로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나는 현장에 가서 답사하고 또 주민들을 만나보았다. 도무지 산꼭대기에 풍력 발전기를 대거 세운다는 것이 무모해 보였다. 그러던 중 사업승인의 토대가 된 환경영향평가를 부실하게 했음이 드러나서 환경부가 대대적인 점검에 나섰고 사업 추진 중 위반사항이 드러나서 공사 중지 처분이 내려졌다. 환경부가 이미 공사 중인 대규모 사업을 중단시켰으니 우리나라 환경 정책 역사상 의미 있는 조치였다.

하지만 이 역시 김은경 환경장관이 문 정권 수뇌부와 마찰을 빚는데 기여했다고 나는 본다. 김은경 장관이 이른바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문재인 정권 하에서 기소되기에 이른 것은 이 이 두 사건으로 정권과 충돌을 빚은 것도 기여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흔히 국민의힘은 토건세력에 의해 좌우되고 민주당은 환경과 생태를 지킨다고 생각하지 쉽지만 이 두 사건은 전혀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문재인 정부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아예 없애 버렸다.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을 하면서 예타를 생략했다고 그렇게 비난했던 민주당이 예타를 아예 없애 버렸으니 황당한 일이다.

지난번 부산시 보궐선거를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은 부산에 내려가서 가덕도 공항을 약속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부산시장 선거에서 참패했다. 보궐선거를 앞두고 대통령이 이렇게 구차하게 현지에 내려가서 개발사업을 약속하는 경우를 과거에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영남권 공항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혜롭게 마무리 했던 것인데, 알량한 보궐선거를 이기겠다고 대통령이 현지에 내려가서 법석을 떨었다. 하지만 민주당은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 대통령 선거, 지방선거에서 줄줄이 패배했다. 명분도 잃고 실리로 잃어버린 처량한 모습이다.

사진은 내가 국회 임기를 마치면서 우리 의원실이 다루었던 흑산 공항 사건과 영양 풍력 단지 사건을 정리해서 발간한 정책보고서이다. 나중에 이 문제가 다시 거론되면 누군가는 찾아 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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