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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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시대를 생각하다>
작성일 : 2023-09-16 22:39조회 : 42


<시대를 생각하다>


내가 신문에 칼럼을 자주 쓰기 시작한 때는 2003년 말에 조선일보 비상임 논설위원을 그만두고 1년간 안식년을 맞아 여행과  산행을 즐기던 시기부터다. 요즘은 종이 신문을 내는 신문사가 그 때에 비해서 몇 배는 늘어난 것 같고, 인터넷 신문이 많아서 신문에 글을 쓸 기회는 널려 있지만 그 때는 그렇지 못했다. 이처럼 요즘은 칼럼 지면이 널려 있지만 과연 칼럼다운 칼럼을 쓰는 필자가 얼마나 되는가는 별개 문제다.

두 달 전에 나온 책 <시대를 생각하다>는 내가 지천명(知天命)이라는 50세를 넘긴 후부터 이순(耳順)이라는 60세를 훌쩍 넘겨서 국회의원이 되어 기고를 중단할 때까지 쓴 칼럼 중 80편을 분야 별로 묶은 것이다. 그 기간 중 일간신문과 주간잡지에 기고한 칼럼과 서평은 대략 150편이 되니까 절반을 추린 것이다.

1993년에 대학에서 정교수가 되기 전까지는 전공분야 논문을 쓰기에 바빴고, 환경 문제에 대한 칼럼을 전문잡지에 많이 기고했다. 지금은 상식이 되다시피 한 멸종위기종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 해양투기에 의한 해양오염을 규제하기 위한 런던덤핑협약(LDC)에 관한 학술논문을 누가 처음 썼는지를 검색하면 바로 내 이름이 나온다. 남이 하지 않은 분야를 먼저 공부했기 때문이다. 정교수가 되고 학장을 지낸 후 전공 부담에서 벗어나서 원래 흥미를 갖고 있던 분야의 책을 읽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나는 번역서를 읽지 않는다. 내가 이따금 읽는 번역서는 일본 책 뿐이다. 일본어를 배우지 못했을 뿐더러 일본어는 우리말과 어순이 같아서 번역본을 읽는데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에 <자유론>, <자유로부터의 도피> 등을 번역본으로 읽었는데, 읽고 나서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도 번역본이었기 때문이지 않았나 한다. 대학 4학년 때 외교사를 공부할 때 Albrecht Carre의 <Diplomatic History Since the Congress of Vienna>를 읽었는데, 우리 교과서 보다 훨씬 이해가 쉽다고 느꼈다. 대학원 입학 후에는 미국 헌법에 관한 책을 주문해서 많이 보았다.

<시대를 생각하다>에는 박정희를 이해할 수 있는 두 권에 대한 서평이 있다. 김창룡과 황용주의 평전을 소개한 글이다. 요즘 백선엽을 두고 논란이 많은데, 백 장군은 사형집행이 임박한 박정희의 생명을 구해 준 사람으로도 중요한 인물이다. 백 장군은 또한 김창룡 소장 암살 사건을 다룬 군사재판 재판장이었다. 백선엽 장군은 김창룡 암살의 주범으로 허태영 대령 외에도 강문봉 중장에 사형판결을 내리고 그 상부에 4성 장군이 있다고 보고 이승만 대통령에게 수사를 품의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4성 장군에 대한 수사를 거부하고 강문봉 중장에 대한 사형판결을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그 4성 장군이 박정희 정부에서 국무총리와 국회의장을 지낸 정일권이다. 박 대통령의 생명을 구해 준 백선엽은 박정희 정권 하에서 교통부장관을 잠시 지내고 대사를 지내는데 그쳤다. 나는 이 부분이 전에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박 대통령은 자기를 잘 아는 백선엽이 부담스러웠던 것이 아닌가.

박정희와 황용주 간의 우정은 박정희가 기본적으로 사회주의자였음을 잘 보여 준다. 5.16 후 평화적 남북통일을 주장했던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을 사형에 처하고 북에서 내려온 황태성을 처형한 것도 그의 좌익 컴플렉스와 관련이 있다. 5.16 후 군정기간 중 한국일보는 박정희 최고위 의장은 영국 노동당 같은 사회주의 정책을 추구할 것이라는 기사를 냈다가 문제가 되자 장기영 한국일보 사장은 오보를 인정하고 한주일 동안 자진 정간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보가 아니었다. 미국 대사관의 권유 또는 압력, 그리고 김종필 등에 의해 노선이 바뀐 것이다.

김지태가 운영하던 MBC를 공영방송으로 만들고 황용주를 사장으로 임명한 것도 당시 박정희의 생각이었다. 젊은 언론인 황용주는 민족주의자이고 사회주의자였다. 황용주는 박정희 정부의 김종필 등 보수파에 의해 축출돼서 젊은 나이에 야인이 되어 평생을 낭인처럼 지냈다. 그런 점에서 박 대통령은 사회주의적 성향이 있었던 국가주의자이고  현대적 의미의 보수주의자는 절대로 아니었다. 요즘 시끄러운 논쟁을 보면서 우리는 한 사람의 삶을 너무 단면적으로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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