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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상속세는 과연 정당하고 필요한 세금인가 ?
작성일 : 2008-04-03 11:06조회 : 6,294
상속세는 과연 정당하고 필요한 세금인가 ?
(월간조선 6월호)
李相敦 (중앙대 법대 교수)
재산세가 대폭 오른 데다 종합부동산세 대상마저 확대되어 세금 납부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또 한가지 걱정해야 할 것은 그들의 건강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혹시 죽기라도 하면 상속세를 내기 위해 가족들이 집을 팔고 거리로 나가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경제발전에 따라 개인의 자산 수준도 전 보다 높아 졌지만 상속세 기준은 그대로 있다 보니 중대형 아파트를 갖고 있는 사람은 죽어도 세금을 두드려 맞게 된 것이다.
현행 세법상 배우자가 남아 있는 경우는 기본적으로 10억원, 배우자가 없는 경우는 5억원이 넘는 재산을 남기면 상속세를 부과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공시가 10억원 이 넘는 집과 금융재산을 갖고 있는 사람이 사망하면 상속자, 즉 남은 가족은 꼼짝없이 상속세를 내야 한다. 상속세를 내기 위해 집을 팔면 이번에는 양도세를 내야 한다. 가장(家長)이 죽은 것도 억울한데 정들어 살던 집마저 내놓고 작은 집으로 줄여 나가야 하는 것이다.
영미법계 국가와 달리 우리 세법은 부부 사이에도 상속이 있다고 보아 남은 배우자에게 상속세를 부과한다. 원래 부부란 하나의 경제단위인데 남편이 죽으면 상속세 명목으로 돈을 빼앗아가니 남편도 잃고 돈도 잃는 ‘참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租稅 暴政
어느 작은 기업군(群)을 일으킨 여성 기업인은 사업을 하던 남편이 별안간 사망하자 상속세를 내기 위해 살던 집을 팔고 공장에서 살아가면서 힘들게 사업을 다시 일으켰다고 한다. 이를 ‘인간승리’로 볼 수도 있겠지만 도무지 그런 경우에 정부가 상속세를 받아 가는 것이 합리적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정부는 금년부터는 부부가 집을 각각 한 채 씩 갖고 있어도 두 주택의 가격이 합해서 6억원을 넘으면 종합부동산을 부과하기로 했다. 부부를 하나의 경제단위로 본 것이다. 그런데 부부 중 어느 일방이 먼저 사망해서 남은 배우자가 사망한 배우자의 재산을 상속하는 경우에도 상속세를 부과한다. 종합부동산세는 부부를 한 개의 단위로 보고 상속세는 부부를 별개의 단위로 보는 것이니, 그야말로 멋대로 세금을 걷는 셈이다. ‘조세 暴政(폭정)’이라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상속세를 물리는 이유
상속세를 부과하는 근거는 상속을 받는 사람은 자기의 노력이나 능력에 관계없이 재산을 획득하는 것이라서 정부가 그 중의 일부를 환수해서 공공복지에 지출하는 것이 형평과 평등의 견지에서 맞는다는 이유에서 이다. 그런 생각은 우리 사회에 폭 넓게 번져 있다. 또한 사람은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간다면서, 평생동안 어렵게 모은 재산을 대학에 기증하거나 전재산을 기부하고 죽은 사람을 대단하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삼성의 이건희家 및 현대자동차의 정몽구家가 경영권을 대물림하기 위해 편법을 동원한 것이 폭로되자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우리 사회에선 상속은 ‘惡’이고 상속세는 그에 대한 정당한 응징인 셈이다.
삼성과 현대자동차는 입을 다물고 있지만 보기가 딱했던지 재계 일각에서는 상속가액이 30억원이 넘으면 50%의 세율을 적용하는 상속세 때문에 기업의 경영권이 위협 받는다고 거들었다. 그러자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부(富)의 승계란 있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건희 회장과 정몽구 회장이 기업 승계를 무리한 방법을 써서 경영권 승계를 서두른 것은 막대한 상속세를 피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만일 이 회장과 정 회장이 어느 시점에 사망하면 이재용씨와 정의선씨는 엄청난 상속세를 내야 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이씨와 정씨는 상속받은 주식을 팔아야만 할 것이며, 그러면 삼성과 현대자동차는 이씨와 정씨 가문을 떠나는 것이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기업이 창업자의 후손에게 대물림 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보며, ‘주인이 없는 기업’이 좋은 기업이라고 본다.
상속세 폐지×축소가 세계적 추세
많은 사람들이 상속세 부과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상속세는 정의로운 세금이라고 ‘세뇌’되어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이제까지 대부분의 사람에겐 상속세가 남의 일이었다. 그러나 소득과 재산보유 수준이 높아 지고, 부동산과 금융자산이 한눈에 잡히는 세상이 되다 보니 많은 사람이 상속세 앞에 발가벗고 서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상속세가 나쁜 세금이라거나 상속세는 부작용이 많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다간 재벌과 부자를 옹호하는 ‘나쁜 사람’으로 낙인 찍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상속세를 다시 보아야 할 때가 됐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세계의 추세도 상속세를 아예 폐지하나 그 세율을 줄이는 쪽이다. 상속세 부과가 부작용이 많고 또한 상속세 부과로 얻어지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나라들이 법인세, 소득세, 상속세 등 온갖 세금을 줄여나가고 있다. 그래야만 투자를 촉진하고 기업을 유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자들은 세금이 적은 나라로 아예 국적을 옮기기도 하니 세금 많이 받으려다 세금 낼 사람과 기업을 잊어 버리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재산세, 법인세, 상속세 등 온갖 세금을 쥐어 짜고 있다.
여러 나라의 사정을 보면 상속세가 없는 나라 보다는 상속세를 두고 있는 나라가 많다. 상속세가 없는 나라로는 멕시코, 중국, 인도 등이며, 캐나다, 호주, 이스라엘, 그리고 스웨덴과 러시아 등이 상속세를 폐지했다. 상속세를 부과하지만 최고 세율이 20% 미만인 경우는 홍콩, 싱가포르, 덴마크를 들 수 있다. 다른 유럽국가들은 최고세율이 30% 안팎이다. 최고세율이 50% 수준인 나라로는 미국, 일본, 한국이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그렇다 하더라도 미국의 상속세율이 이렇게 높은 것은 의외로 들릴 것이다.
미국에선 높은 세율 때문에 상속세가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1990년대 들어 상속세를 아예 폐지하자는 운동이 일더니, 공화당이 이를 정책을 채택하게 되었다. 미국이 상속세를 폐지하게 되면 다른 나라들도 영향을 입기 마련이라 우리도 미국의 동향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또한 미국에서 벌어지는 상속세를 둘러싼 논쟁은 이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상속녀와 결혼한 남자들이 세운 나라’
미국은 상속녀와 결혼한 남자들이 세운 나라다. 건국의 아버지이자 초대 대통령을 지낸 조지 워싱턴은 27살 때인 1759년에 한 살 연상인 먀사 커스티스와 결혼했다. 먀샤는 18세 때 자기보다 20살이나 많은 다니엘 커스티스란 부유한 남자와 결혼했었는데, 다니엘은 1757년에 사망했다. 다니엘의 막대한 재산을 상속한 마샤는 2년 후 조지 워싱턴과 결혼해서 워싱턴은 그 후 경제적 안정을 찾게 되었다.
독립선언문의 기초자이며 3대 대통령을 지낸 토머스 제퍼슨도 돈 많은 상속녀 마샤 스켈튼과 1772년에 결혼했다. 부모로부터 많은 재산을 상속한 마샤와 결혼한 제퍼슨도 돈 걱정하지 않고 나라 일을 하게 됐다. 그 때엔 상속세가 없어서 부모나 남편이 남긴 재산은 당연히 자식과 아내가 차지했던 것이고, 상속재산을 갖고 있던 아내들 덕분에 워싱턴과 제퍼슨은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일에 전념할 수 있었다.
상속세의 유래
미국에서 상속세가 처음 등장한 것은 1797년이었다. 프랑스와 해전(海戰)을 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어서 군함을 건조하는데 드는 비용에 보태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유언장과 유산(遺産)에 관한 서류에 인지를 붙이는 수준에 불과했다. 또 5년간만 운영하기로 했던 것이었으나 사정이 바뀌자 1년 앞당겨 폐지했다.
상속세는 남북전쟁 중이던 1862년에 다시 도입되었다. 물론 정부(북군)가 전쟁비용을 대기 위해서 였는데, 1797년 상속세와는 달리 상속재산에 과해 지는 직접세였다. 세율은 사망자의 가까운 친척이 상속하는 경우에는 0.75%, 먼 친척이 상속하는 경우는 최고 5%였다. 전쟁이 끝나자 상속세를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고, 의회는 1870년에 이를 폐지했다.
1898년에 미국과 스페인 간에 전쟁이 발생하자 또다시 상속세를 부과하게 되었는데, 상속액이 100만 달러를 넘는 경우에 최고 15%의 세금을 부과했다. 전쟁이 생각 보다 빨리 끝나자 의회는 1902년에 이를 폐지하였다. 이처럼 상속세는 전쟁이란 특수한 상황에서 정부가 돈이 궁했기 때문에 한시적으로 부과했던 것이다.
사회정책으로서 상속세를 도입하려는 생각은 20세기 초에 생겼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일정한 액수를 넘는 상속에 대해서 세금을 물리자는 제안을 한 적이 있으니 실제로 입법화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자 또 다시 상속세를 도입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상속액이 500만 달러가 넘는 경우에 최고 10%의 세율을 적용했으나 다음해에는 1,000만 달러가 넘는 경우에 최고 25%를 적용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쟁이 끝나도 상속세가 폐지되지 않았다. 당시 미국 경제가 급성장해서 상속세를 걷는 것이 정당하다는 생각이 정치인들 사이에 번졌던 것이다. 상속세가 富의 재분배를 위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주의자 프랭클린 루스벨트
상속세를 살인적 고율(高率)로 만든 사람은 부유층의 아들로 태어나 진보적 사회주의자가 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다. ‘뉴딜’이란 이름의 사회주의 정책을 밀어 부치던 그는 1934년에 상속세의 세율을 최고 60%로 인상했고, 다음해에는 이를 70%로 인상했다. 루스벨트는 연방소득세의 최고 세율도 75%로 인상했고, 법인세도 인상했다. 이른바 ‘부자 털어내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루스벨트의 세금 인상 조치가 큰 효과를 발휘하지는 못했다. 거부(巨富)들은 재단을 만들어서 상속세를 피해나갔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연방상속세는 면세점 60만 달러에 최고세율 55%라는 골격을 유지해 왔다. 상속세는 부동산, 예금, 주식, 자동차, 공장시설, 농기구, 생명보험금 등 모든 재산에 대하여 적용되었다. 세법은 상속세를 상속재산의 공정한 시세(fair market value)에 근거해서 계산하는데, 이를 두고 상속인이 선임한 변호사와 연방국세청 공무원 간에 실랑이가 벌어지기 마련이다.
아담 스미스와 앤드류 카네기
아담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르도에서 알프레드 마셜에 이르는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상속이야말로 사람들이 저축을 하게 하는 동기라고 말했다. 자유주의 경제철학은 20세기 초까지 미국을 지배해 왔다. 그러나 1930년대에 들어서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증가했고 이에 따라 “상속이 반드시 저축을 조장한다”는 이론은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상속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가장 설득력있게 주장한 사람은 경제학자가 아니라 철강사업으로 거부가 된 앤드류 카네기이다. 카네기는 ‘富의 복음(The Gospel of Wealth)’라는 책에서 富는 그것이 유래한 공동체로 되돌아가야 하며, 상속은 자식들을 게으르고 만들고 부패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후 상속세는 사람들간의 기회균등을 보장하는 장치라는 생각이 자리잡게 되었다. 상속세가 정의에 이바지한다고 본 학자로는 1971년에 ‘정의론 (A Theory of Justice)’를 펴내서 유명해진 법철학자 존 롤스를 들 수 있다. 롤스는 축적된 富 를 다음 세대에 넘겨 주는 것은 정의에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상속세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런 주장이 잘못됐다고 본다. 만일에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의 균등이 보장되어야 한다면 재산 상속 뿐 아니라 유전적 재능이 자식에게 전해지는 것과 교육과 경험을 자식에게 제공하는 것도 균등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유전적 재능과 학력이나 경험을 물려 주는 데 대해선 정부가 아무런 제재를 하지 못하면서 유독 재산상속을 문제 삼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사망세’ 폐지 운동
미국은 원래 영국이 부당한 세금을 부과하자 이에 대항해서 독립한 나라이다. 그 만큼 미국인들 사이엔 세금에 대한 저항감이 뿌리가 깊다. 하지만 뉴딜 이래 진보정책이 미국 사회의 주류(主流)를 이루자 그런 감정은 공공연하게 표출되지 못했다.
1981년에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하자 세금 감면이 새로운 정부정책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50년 만에 미국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다.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은 패배했지만 1994년 선거에서 공화당은 반세기 만에 상하원의 다수석을 장악했다. 세금을 줄여서 돈을 개인에 돌려 주어야만 경제가 잘 돌아갈 것이라는 레이건의 철학은 공화당의 철학이 되었고, 2001년에는 레이건의 철학을 계승한 조지 부시가 대통령이 되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상속세를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재임 중 이 문제를 다루지는 못했다. 1990년대에 들어 중소기업과 농장주들이 단체를 만들어서 상속세 폐지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헤리티지 재단, 미국 기업연구소(AEI), 케이토 연구소 등 작은 정부를 주창하는 연구소들은 정부가 세금을 걷어가서 엉뚱한 곳에 쓰기 보다는 개인에게 돌려 주면 돈이 보다 현명하게 쓰여져서 경제가 발전하게 된다면서, 상속세가 매우 나쁜 세금이라고 주장했다.
상속세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상속세의 정확한 명칭은 ‘사망세(Death Tax)’라면서 정확한 명칭을 쓰자고 주장했다. 이들의 캠페인은 멋지게 성공해서 오늘날 법률 용어인 ‘상속세’ 보다는 ‘사망세’가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다. ‘상속세’라면 상속재산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들리지만 ‘사망세’는 사람이 죽었는데 정부가 죽은 사람을 상대로 돈을 빼앗아가는 것으로 들리기 마련이다. 상속세는 실제로는 사망하는 사람에게 부과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망세’가 보다 정확한 용어라고 이들은 말한다.
사망세를 폐지해야 하는 이유
사망세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논점은 아래와 같다.
첫째, 사망세는 反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세금이다. 사람이 죽었는데 정부가 돈을 걷어 가는 것은 윤리와 도덕에 반한다는 것이다. 또한 상속세는 열심히 일하고 근검절약해서 재산을 모은 사람들을 처벌하는 매우 나쁜 세금이라는 것이다.
둘째, 사망세는 부당한 2중과세다. 사람들은 소득이 생기면 그때그때 세금을 낸다. 사람들이 저축하거나 투자하면 이자, 배당금 및 자본증가에 대해 또 세금을 낸다. 그리고 이렇게 세금을 다 내고 모은 돈을 쓰지 않고 남긴 것이 상속재산인데 여기에 대해 또 세금을 부과하는 상속세는 부당한 2중과세라는 주장이다.
셋째, 사망세는 경제성장을 저해한다. 사망세를 가족에게 부과함으로써 가족의 재산을 반 토막으로 만들기 때문에 개인사업을 하는 사람은 사업규모를 확대하지 않으려 하고, 심지어 나이가 들면 사업을 아예 정리하기도 한다. 중소기업과 농장주들은 그들이 사업 규모를 키워도 자기들이 죽은 후 정부가 가져가는 것을 잘 알고 사업을 키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자영업자가 별안간 사망한 경우의 77%가 상속세를 내지 못해 사업체체를 남에게 넘기거나 문을 닫는다는 통계도 있다.
넷째, 사망세는 미국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근래에 호주와 뉴질랜드는 물론이고 사회주의 국가였던 슬로바키아, 불가리아, 러시아, 그리고 사회주의 정책을 취하고 있는 스웨덴 마저 상속세를 폐지했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함인데, 사정이 그러함에도 고율의 상속세를 그대로 두는 것은 멍청한 짓이라는 것이다.
다섯째, 사망세는 변호사와 회계사만 살찌게 만든다. 죽은 후 사망세를 피하거나 줄이기 위해 변호사와 회계사에게 많은 돈을 주어가며 자문을 받고, 그들의 자문에 따라 복잡한 절세 대책을 시행한다. 젊은 변호사들이 돈 많은 노인들에게 상속세를 줄이기 위해 돈을 어떻게 쓰라고 지도하고 자문료를 받아가는 희극적 현상이 일상화되었다. 돈이 아주 많은 사람들은 능력있는 로펌을 고용해서 세법을 교묘하게 빠져 나간다. 그러나 대부분 중소기업과 농장주들은 그런 돈이 없기 때문에 상속세 폭탄세례를 맞기 마련이다.
여섯째, 사망세는 결코 소수의 부유한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상속세 폐지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상속세를 내는 사람은 전체 미국인의 1-2% 밖에 안 된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은 사람들이 돈을 저축하지 않고 써버리고 변호사 와 상의해서 교묘하게 빠져나가서 사망세를 내는 사람이 적은 것이다.
일곱째, 사망세는 소수인종과 여성에게 대단히 불리하게 작용한다. 동양계, 남미계, 흑인 등 소수인종과 여성은 자영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백인 남성 보다 많기 때문에 상속세에 특히 취약하다. 미국에서 흑인 여성이 소유 운영하던 유일한 신문이던 ‘시카고 데일리 디펜더’紙는 사주가 죽은 후 상속세를 내지 못해 폐업했다.
여덟째, 상속세는 환경과 자연을 파괴한다. 넓은 농장이나 산지를 갖고 있던 사람은 자기가 죽으면 내게 될 상속세를 걱정해서 생시에 땅을 쪼개서 팔거나 아예 개발업자에게 의뢰해서 택지를 조성해서 판다. 나무가 울창한 땅을 상속받은 자식이 상속세를 내기 위해 땅을 팔아야 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는데, 부동산 개발업자가 이런 땅을 사들여서 개발을 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상속세를 폐지하면 자연 상태의 땅을 보다 많이 보존하게 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미국민의 여론
1999년과 2000년에 이루어진 두 건의 여론조사는 미국인의 70%가 상속세 폐지를 지지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2005년에 뉴욕타임스가 행한 여론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의 76%가 상속세 폐지를 지지하고 있어 상속세 폐지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음을 확연히 보여 주었다.
몇몇 베스트 셀러도 사망세가 잘못된 세금이라는 인식을 미국인들에게 폭 넓게 심어 주었다. ‘우리 이웃의 백만장자(The Millionaire Next Door, 1998)’라는 책은 미국의 부자들은 대부분 열심히 일하고 검소한 사람들임을 잘 보여 주었다. ‘파산해서 죽기(Die Broke, 1998년)’라는 베스트셀러는 상속세를 피하기 위해선 돈을 마구 쓰고 파산해서 죽고, 그래도 돈이 남으면 젊은 부인을 얻어서 그 부인한테 유산을 넘기는 방법(미국에선 배우자는 기본적으로 상속세를 내지 않는다) 등 상속세가 야기하는 부작용을 파헤쳐서 화제가 됐다. 이 책의 저자는 상속세 때문에 부모들이 흥청망청 낭비하고, 아내가 죽으면 젊은 부인 얻어서 또 흥청망청하는 풍조를 조장해서 자녀 교육과 사회 분위기에 나쁜 영향을 준다고 했다.
사망세를 폐지해야 일자리가 늘어난다
미국에서 매년 걷히는 사망세는 2001년 전에는 연간 250억 달러에 달했는데, 이는 전체 연방 세수의 1%에 해당했다. 이 1%를 걷기 위해 소요되는 행정비용과 공무원 봉급, 그리고 상속인의 법률비용을 합치면 이 세금액수와 비슷해 질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한가지 주목할 것은 미국의 경제규모가 막대하게 커졌음에도 상속세가 전체 미국의 연방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경제학자들은 이것이 상속세를 낼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상속세를 피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증거라고 지적한다. 즉, 돈이 있는 사람들은 자식들에게 소액씩 꾸준히 재산을 쪼개서 주어 상속세와 증여세를 피해나가며, 상속세를 낼 바에야 쓰고 죽는다는 생각으로 불건전한 소비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상속세를 폐지하면 어떤 경제적 효과가 생길 것인가 ? 조지 메이슨 대학의 리차드 와그너 교수가 1993년에 행한 연구에 의하면 사망세를 전면적으로 폐지하면 8년 만에 국가 총생산이 800억 달러 증가하며 25만개의 일자리가 생기고 주가 총액이 6400억 달러 증가할 것이라 한다.
헤리티지 재단의 경제학자인 윌리엄 비치는 연방 상속세로 인해 연간 17만개에서 25만개에 이르는 일자리가 생기지 못하고 있다고 계산했다. 상속세 때문에 투자를 기피하고 또 소극적 경영을 함으로서 응당 생길 수 있는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카네기 대학이 최근에 수행한 연구는 사망세를 폐지하면 투자가 늘어서 오히려 세수가 증가할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상속세 폐지에 나선 공화당
공화당이 상하원의 다수당이 된 후 상속세를 감축하기 위한 노력이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2000년에 의회는 상속세를 폐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클린턴 대통령은 이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2000년 대선 때 부시는 사망세 철폐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부시는 대통령 임기 첫해에 대폭적인 감세조치를 담은 ‘경제성장과 세금감면법’에 서명해서 그의 선거공약을 지켰다. 이 법은 2001년에 675,000 달러이던 상속세 면세점을 점차 인상해서 2002년에는 1백만 달러, 그리고 2009년에는 350만 달러가 되도록 하고, 2010년에는 상속세가 없어지도록 하였다.
그런데 이 법은 한시법이기 때문에 2010년 12월31일 자정까지만 효력을 갖도록 되어 있어 그 해 자정을 넘겨서 사망하면 2002년도의 세금이 적용되도록 되어 있다. 상속세가 부활하는 것이다. 그래서 2010년 연말이 닥쳐오도록 죽지 않은 사람들은 상속세를 절약하기 위해선 자살을 할 것인가 여부를 고민해야 한다는 농담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부시의 감세법도 증여세는 건드리지 않았다. 의회는 증여세 마저 폐지하면 부유한 사람들이 생전에 자신들의 재산을 자식들에게 증여하게 될 것으로 우려해서 증여세 면세점을 100만 달러로 정한 기존의 법 조항을 그대로 두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2001년의 세금 감면 조치가 상속자들에게 반드시 유리한 것만은 아닌데, 그것은 자본증가세(capital gain tax)가 부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사망한 아버지가 생시에 주당 5달러로 인수한 주식의 가치가 사망 시에는 주당 12달러가 돼 있다면 상속인은 상속세를 내지 않고 이 주식을 상속하지만 그가 주식을 팔게 되면 주당 차액 7달러에 대해 자본증가세를 내야 한다. 따라서 상속 받은 주식이나 기업재산을 팔지 않고 그대로 보유하면서 가업을 지속하는 상속자는 세금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상속받은 재산을 매각하는 경우에도 일정한도 내에서는 자본증가세를 내지 않을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선 복잡한 절차가 요구된다.
사망세 폐지에 반대하는 사람들
절대 다수의 미국인들이 사망세 폐지에 찬성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상속세가 폐지되면 富의 세습을 허용해서 貧富 차이를 조장할 것이라 주장한다. 민주당의 진보파 의원들은 상속세 폐지에 반대하는데, 그것은 상속세 폐지가 그들이 따르는 이른바 ‘진보 이념’과 배치되기 때문이다.
상속세 폐지에 반대하는 대단한 부자들도 있다. 조지 소로스, 워렌 버핏, 빌 게이츠 등 거부들은 ‘책임있는 부(富)를 위한 위원회(Committee for Responsible Wealth)를 만들어서 “우리들에 세금을 메기라(Tax Us)”는 의견광고를 내서 화제가 됐다. 이를 본 우리나라 일부 언론은 미국의 거부들은 사회적 책임감을 갖고 있는데 우리나라 재벌들은 그렇지 않다고 비난하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의 속사정을 들여 보면 반드시 전혀 딴판임을 알 수 있다.
우선 워렌 버핏의 경우를 보기로 하자. 버핏은 주식 투자로 돈을 많이 벌었지만 그 외에도 다른 사람의 사망과 관련된 사업으로도 재미를 보았다. 버핏이 운영하는 보험회사가 개발한 상품 중에는 사망세 보험이 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얼마 후 죽을 것 같으면 돈을 흥청망청 쓸 텐 데 그러다가 예상보다 오래 살면 돈이 없어서 어쩌나 하고 걱정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을 상대로 한 보험을 개발해서 오래 살 줄 알고 돈을 아껴 쓰다가 빨리 죽게 되면 상속세를 대신 내주는 보험을 개발한 것이다.
버핏의 또 다른 사업은 상속세를 내지 못해 매물로 나온 가족 기업을 헐값에 사들이는 것이다. 그가 이렇게 매수한 기업은 데어리 퀸, 조단 저스틴 인더스트리, 스타 퍼니처, 보렌하임, 벨 브리지 주얼리, 등 수없이 많다. 그러면서도 버핏은 정작 자기가 죽으면 자기 재산의 대부분으로 자선재단을 세우도록 했다. 그러면 버핏은 상속세를 피해나가는 것이고 그의 자식들은 재단을 운영해가면서 재단이 소유하고 있는 재산은 자기 것처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빌 게이츠와 조지 소로스의 사정도 다를 것이 없다. 이들은 이미 재단을 설립해 놓았기 때문에 그들이 사망해도 사망세를 별로 많이 내지 않는다. 사망세 폐지에 반대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들의 재산을 상속세가 없거나 매우 적은 나라로 옮겨 놓은 경우도 있다. 케네디 대통령의 아버지 조지프 케네디는 자기 재산을 세금이 적은 피지에 신탁계정을 조성해서 미국의 높은 상속세를 피해나갔고, 자식들은 그 계정으로부터 돈을 타먹게 해놓고 죽었다.
상속세와 재단
상속세가 폐지되면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액수가 줄어 들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2003년에 상하원 합동 경제분과위원회는 부시 대통령의 감세 조치가 있은 후인 2003년에 자선단체에 대한 전체 기부액이 216억원에 달해서 1999년에 대비해서 25% 증가했다고 결론내렸다. 기부를 하는 동기는 상속세와 별로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사망세를 철폐하면 공익재단 출연이 줄어 들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미국에는 록펠러 재단, 카네기 재단, 포드 재단 등 많은 공익재단이 있다. 이런 재단이 탄생하게 된 것도 전적으로 상속세 때문이다. 자동차 왕국을 세운 헨리 포드는 생시에는 결코 자선적이지 못했다. 그는 사업을 늘려서 근로자들에게 일자리를 만들고 소비자에게 보다 좋은 차를 값싸게 공급하는 것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자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사망한 후 막대한 상속세를 피하기 위해 그의 재산의 대부분은 포드 재단에 귀속됐다. 포드는 자기 재산이 다시 투자되는 것을 원했을 것이지만 상속세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다.
문제는 오늘날 포드 재단은 창업자의 의도와 통제를 떠나서 反자본주의와 反시장주의를 조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진보주의에 물든 재단 이사와 실무자들은 反과학적인 환경운동을 후원하고, 대학에 동성애 연구센터를 세웠다.
록펠러家가 세운 록펠러 재단, 카네기家가 세운 카네기 재단도 마찬가지다. 초기에 록펠러 재단은 병원을 많이 세웠고, 카네기 재단은 도서관과 음악당을 많이 세웠다. 하지만 그 후 이 재단들은 창업자의 뜻과 무관하게 진보주의를 미국 사회에 퍼뜨리는데 돈을 뿌리게 됐다. 포드 재단, 록펠러 재단, 카네기 재단 뿐 아니라 맥아더 재단, 하인즈 재단 등 거의 모든 재단이 그런 형편이다. 그린피스가 벌리는 온갖 시위, 1999년 말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 회의를 좌초시킨 대규모 시위의 돈줄을 캐어 보면 결국 재단으로 통하게 되어 있다.
‘사망세 영구 폐지법’
2005년 4월 하원은 272대 162라는 압도적 차이로 상속세를 항구적으로 폐지하기 위한 ‘사망세 영구폐지법(안)(Death Tax Repeal Permanancy Act)’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이제 상원 통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공화당 상원의원은 전원 이에 찬성하고 몇몇 민주당 상원의원이 이에 동조하고 있다. 하지만 공화당이 민주당 진보파의 필리버스터를 종식시킬 수 있는 60석을 확보할 수 있을는지 미지수이다. 민주당은 상속세를 가족 기업의 경우에만 전액 면제해 주자는 타협안을 내놓고 있으나 공화당은 전면 폐지를 고수하고 있다.
미국의 논쟁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우리나라 언론은 툭하면 누가 평생 모은 몇 억 원을 어디에 기부했다는 뉴스를 대단하게 다루는 경향이 있다. 또한 걸핏하면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삼성에게 가해진 뭇매는 바로 그런 것이고, 다급해진 삼성은 8000억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상속세를 없애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여론의 뭇매를 맞기 십상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상속세에 대해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알아 왔던 것은 ‘神話’였다는 사실이다.
사실을 이야기 하자면, 우리가 본성으로 느꼈던 것이 진실에 가깝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우리 가족 모두가 편안하게 살아 왔던 집이 단지 집값이 뛰었다고 해서 막대한 상속세를 내야 한다면 수긍할 수 있겠는가 ? 할아버지가 시작한 작은 식당을 아버지가 계승해서 분점도 여는 등 잘 키워 놓았는데, 이제 아버지가 은퇴할 나이가 되어 내가 승계하려고 하니 증여세를 내야 하고, 그렇다고 아버지가 그냥 돌아가시면 상속세 때문에 거덜이 날 지경이 되었다면 수긍할 수 있겠는가 ?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현대자동차의 경우를 보기로 하자. 반드시 상속세를 내야 한다면 정몽구 회장이 돌아간 경우(이런 가정을 해서 죄송하지만, 사실 모든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다) 상속자들은 50%나 되는 상속세를 내기 위해 주식을 팔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얼마 후 회사의 경영권은 외국인 펀드 등 기관의 연합세력에 넘어 갈 것이다. 주인없는 회사는 장기투자를 하기 보다는 단기 수익성 확보에 주력할 것이다. 주인없는 회사가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음은 정몽구 회장이 인수한 기아자동차를 보면 잘 알게 된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큰 와인 제조업체의 하나인 갈로 양조장의 경우를 보기로 하자. 캘리포니아에서 와인 양조장을 경영하던 조 갈로는 禁酎法(금주법)이 시행되자 파산했고, 실의 끝에 부인을 죽이고 자살했다. 졸지에 부모를 잃어 버린 갈로 형제는 금주법이 폐지된 후 황폐해진 와인 양조장을 재건했다. 오늘날 갈로 양조장은 자살한 창업자의 손자들이 경영하고 있는데, 상속세 납부가 당면과제가 됐다. 갈로 양조장 상속자들은 대를 이어 경영을 하고 있을 뿐인데, 이들에 대해 막대한 상속세를 메기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는 정말 의문이다. 황폐해진 양조장을 다시 일으켜서 굴지의 와인 메이커로 성장시킨 이 가족에게 훈장을 주지 못할 망정 왜 세금 폭탄을 퍼붓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이제 우리도 상속세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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