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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상돈-김호기 대담 2 : 여주 (경향)
작성일 : 2011-03-01 22:19조회 : 4,287
경향신문 2011년 3월 1일자 기사. (저작권 : 경향신문)
[이상돈·김호기의 대화](2) 4대강·구제역 재앙 덮친 여주
(정리 | 최희진 기자)
ㆍ이상돈 “인간 탐욕이 만든 ‘불편한 진실’ 학자·언론 방조”
ㆍ김호기 “4대강 사업은 생명 부정… 국민 평가 이뤄질 것”
차 두 대가 다닐 만한 너비의 도로 양옆으로 모래언덕이 끝없이 이어졌다. 경기 여주의 여주·이포·강천보 공사 현장에서 퍼올린 토사를 쌓아놓은 것이다. 논이었던 땅은 4대강 정비사업이 시작된 후 준설토 적치장으로 변했다. 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트럭들은 쉼없이 모래언덕을 오르내리며 준설토를 쏟아붓고 있었다. 모래언덕을 ‘MB산맥’이라 부른 이상돈 교수(중앙대·법학)는 “이런 환경에서 주민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모르겠다”고 염려했다. 여주를 파헤쳐 놓은 것은 4대강 공사만이 아니다. 구제역 살처분으로 가축 16만마리가 묻혔다. 매몰지는 향후 수년간 농지로 쓸 수 없고 사체에서 나온 침출수가 지하로 스며들면 지하수도 사용할 수 없다. 여주는 4대강 공사와 구제역, 두 가지 재앙과 한꺼번에 마주하고 있었다.
이상돈 교수와 김호기 교수(연세대·사회학)는 두 번째 ‘대화’를 위해 일요일인 지난 27일 여주의 4대강 공사 현장에서 이항진 여주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47)을 만났다. 김 교수가 먼저 “지난해 여름 이포보 고공시위 등 여주는 4대강 사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며 4대강 사업 반대운동에 참여한 동기를 물었다. 이 위원장은 “여주에 찾아와 강을 보신 분들은 말없이 우신다. 사람의 길이란 게 대체 무엇인가. 인간이라는 생물종에 회의까지 느꼈다”고 말했다. 4대강 공사에 반대하며 지난해 소신공양한 문수 스님 이야기를 하며 휴지로 눈물을 닦기도 했다. 이 교수는 “4대강 공사와 구제역이 함께 발생한 여주는 우리 시대의 ‘불편한 진실’이 됐다”고 지적했다. 대화는 여주 4대강 공사의 현황을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이항진 = 여주에는 이포·여주·강천보 등 보 3개가 약 10㎞ 간격으로 세워진다. 단일 지역 내 최대 공사 지역이다. 현재 공사가 80% 진척된 것으로 추정된다. 1993년 처음 여주에 내려왔을 때 이곳은 사람도 자동차도 적은 한산한 동네였다. 등산도 하고 강에서 배도 타며 자연을 벗삼아 지내겠다는 꿈이 있었다. 그러나 3년 전 한반도 대운하 논쟁이 시작되고 지난해 수경 스님이 여주로 오신 뒤 내 삶도 크게 바뀌었다. 뒷날을 예비하기 위해 돈을 벌어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사라지고 4대강에만 몰두하게 됐다.
이상돈 = 여주는 전통적으로 홍수 취약지구로 꼽힌다. 정부 주장대로 여주의 홍수를 막기 위해 보를 세운다면 여주보다 상류에 세워야 하는 것 아닌가. 또 보 높이가 낮아서 홍수 조절 효과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내세운 논리가 빈약하다.
이항진 = 여주는 충주댐만으로 홍수 조절이 가능했다. 수해의 대부분은 인간이 강으로 덤빌 때 일어난다. 강변의 갈대밭과 농경지를 특별법으로 개발해 주택지구를 만들고 공원을 만든다면 사람이 강으로 덤비는 형상이 된다. 얼마 전 신진교라고 40년간 멀쩡했던 다리가 무너졌다. 강을 좁고 깊게 만든 탓이다. 박재현 인제대 교수가 계산한 바에 따르면 준설이 50% 됐을 때 유속이 2배 빨라지면서 강의 파괴력이 5배 늘어난다고 한다. 준설이 완성되면 파괴력이 크게는 10배까지 강해질 수 있다.
이 위원장은 공사가 시작된 뒤 익사한 사람이 어림잡아 10명은 된다고 했다. 과거 남한강의 깊이를 생각하고 강에 들어간 주민이 강이 깊어진 탓에 빠져 죽거나, 가물막이가 터지는 바람에 물 속에서 얼어죽은 인부도 있었다. 준설토 적치장에서 돌을 줍던 수집가가 떨어져 사망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상돈 = 강도 강이지만 당장 쌓아놓은 준설토도 큰 문제다. 준설토 적치에 따른 부작용은 없나.
이항진 = 여주의 준설토 총량은 2500만㎥다. 우리나라 골재 소모량을 감안하면 30~100년 동안 쓸 모래를 다 파낸 거다. 100년까지 늘어나는 이유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토건공사를 이미 다 했기 때문이다. 골재의 특성도 이해해야 한다. 골재는 이동거리가 30㎞를 넘어가면 운송비가 엄청나게 오르기 때문에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여주로부터 반경 30㎞ 이내에 2500만㎥를 쓸 수 있는 데가 어디 있겠는가. 주민들은 논 3.3㎡당 임대료 6000원을 받고 적치장으로 빌려줬다. 논 3.3㎡의 임대료는 보통 1500원이다. 정부가 돈으로 주민들을 설득한 셈이다.
이상돈 = 4대강 공사로 환경이 황폐해졌는데도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군수로 당선됐다. 지역 민심의 흐름을 어떻게 평가하나.
이항진 = 우리 지역의 구조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여주 인구는 10만7000명인데 노령화되어 있다. 어르신들은 언론매체라면 방송3사 외엔 접촉하는 게 없으며 이장이나 관(官)이 얘기하는 게 삶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60이 넘으신 어른들은 권위주의 정권을 겪으면서도 정부 정책에 따르는 것이 국가를 위하는 일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정부가 보 사업비 1조원이 지역에 고스란히 돌아올 것처럼 홍보하는 것도 문제다. 주민들에게 4대강 사업을 하면 재산이 2~3배 뛴다고 말하는 것이다. 자기 소유지가 거의 없는 주민들도 땅값이 오르면 팔아서 자식들에게 넘겨줄 생각부터 한다. 부동산 값이 오르기만 한다면 환경이라는 것도 남의 얘기인 것이다.
김호기 = ‘욕망의 정치’가 도시에선 아파트 가격으로 나타나고, 지역에선 땅값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4대강 사업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개발도 아니고 홍수 예방 효과도 없으며 생명을 부정하는 것인데도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땅값 상승이라는 욕망이 작동하는 것이다. 여주처럼 경제적 이익이 작동한 지역을 제외한다면 지난 지방선거에 4대강 사업에 대한 반대 여론이 반영됐다고 본다. 다가올 총선이나 대선에서 국민적 평가가 이뤄지지 않을까 싶다. 이제 구제역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정부의 초동 대응도 문제였고 후속 대처도 설익었다. 여주는 어떤가.
이항진 = 이천에서 36만마리, 여주에서 16만마리를 묻었다. 여주의 경우 소는 많지 않았고 돼지는 사육두수의 80% 이상을 묻었다. 문제는 침출수다. 침출수로 일단 지하수가 오염되고, 상수원까지 오염될 수도 있다. 매몰지역 주민들은 벌벌 떤다. 매몰지에서 직접 냄새를 맡지 않고는 상황을 이해 못한다. 사체를 깊이 묻지 않았다고 언론에 보도되니 공무원들이 포클레인으로 2m 이상 흙더미를 쌓아올렸지만 냄새가 난다. 구제역은 미래의 환경 영향을 알 수 없다는 게 더 무섭다. 전쟁에선 전투보다 역병으로 죽는 사람이 더 많다. 구제역과 살처분을 계기로 생태계에 내재해 있던 여러 가지 위험요소들이 폭발할 수 있다.
대화를 나누는 도중 이 위원장의 휴대폰이 울렸다. 이날은 매몰지 침출수 사태가 불거진 후 처음으로 전국에 비가 내린 날이었다. 기자들이 이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여주의 가축 매몰지를 안내해달라고 요청해왔다. 지난해 4대강 공사 현장을 찾아다녔던 이 위원장은 지금 구제역 현장을 드나들고 있었다. 조선시대 지리서 <택리지>가 전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땅으로 꼽았던 여주는 환경 문제의 중심지가 됐다.
김호기 = 국제수역사무국과 유럽연합은 동물이 죽을 때까지 복지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고, 가축전염병예방법 ‘구제역 긴급 행동지침’도 고통을 최소화한 인도적 살처분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가축을 생매장했다. 생명을 그렇게 다룰 권리가 인간에게 있는 것인가. 살처분에 참여한 수의사들은 며칠 동안 눈물도 흘리고 잠도 제대로 못잤다고 한다.
이항진 = 농장주 얘기를 들어보면, 살처분은 전쟁 중에 사람을 죽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한다. 인도(人道)라는 게 도대체 뭔가. 사람이라면 다른 생명을 돌아볼 수 있는 도덕적 감수성을 가져야 한다.
이 위원장은 과거엔 공무원 조직이 주민들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을 줄 알았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후에는 듣지 않을뿐더러 아예 말을 하지 못하도록 억누른다고 했다. 이 때문에 이 위원장은 구제역과 같은 위기상황에서 공무원 조직만으로는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항진 = 가축 매몰지에 대해 공무원 실명제를 한다는 건 문제가 발생하면 공무원 개인에게 책임을 지우겠다는 발상이다. 국민들이 몸통인 중앙정부에 책임을 묻지 않도록 하겠다는 비열한 의도가 있는 것이다. 지금 공무원들은 매일 구제역 현장에 나가 있어 전화도 못 받는다. 공무원들에게 과부하가 걸리면 다른 문제들이 간과되거나 제2, 제3의 구제역이 터지는 것을 방지하는 일이 어려워진다.
김호기 = 우리 사회는 거버넌스가 작동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 집단과 정부 조직, 비정부기구(NGO)를 포함한 공익적 시민단체 간의 거버넌스가 작동돼야 하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 거버넌스가 많이 후퇴한 것 같다. 연구자로서, 지식 내지 과학의 독립성·자율성에 관해서도 말하고 싶다. 학문이 기본적으로 탐구하는 게 과학과 진리다. 이건 이념적 입장을 넘어서서 독립성·자율성이 보장돼야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과학과 진리가 정치 권력에 예속되면서 경우에 따라 타율적·자발적으로 침묵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대단히 우려스럽다. 지식사회의 위기다.
이상돈 = 전문가라고 하는 학자들은 물론이고 사실을 사실대로 보도해야 할 언론의 직무유기이고 방조다. 여주는 이곳에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불편한 진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땅값이 오를 것이다, 맛있는 고기를 먹겠다는 인간의 탐욕이 여주를 이렇게 만들었다. 시민들이 여주에 와서 현장을 본다면 선거 때 주권을 어떻게 행사해야 할지 성찰할 수 있을 것 같다.
김호기 = 4대강과 구제역은 이념을 넘어서는 주제다. 보수와 진보가 함께할 수 있는 자연에 대한 새로운 성찰과 위험사회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를 요구한다. 예를 들면, 1980년 우리나라 1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은 11.3㎏이었는데 2009년 36.8㎏으로 증가했다. 우리의 생활습관이 자연과 공존하기 어려운 지점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생활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보수와 진보가 함께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의도하지 않게 국민들에게 생태학적 계몽을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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