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시카고 운하

작성일 : 2008-04-04 09:25조회 : 2,704

<첨단환경 2008년 4월호>

시카고 운하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1. 운하가 상수원 규제를 해결한다 ?

이명박 정권의 한반도 대운하 건설 계획은 동키호테 같은 발상이다. 21세기에, 고속도로와 철도가 거미줄처럼 처 있는 이 좁은 국토에 내륙운송 운하를 건설하겠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머지않아 그것이 국민을 우롱하는 ‘사기극’임이 밝혀 질 것이고, 정권은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운하 건설과 관련해서 팔당호 유역의 몇몇 지자체는 색다른 기대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운하가 건설되면 상수원 특별대책지역인 경기도 광주시, 용인시, 양평군, 이천시 등에 적용되던 상수원 규제가 풀리게 된다는 것이다. 운하가 건설되면 하수를 처리한 방류수를 팔당호가 아닌 운하에 배출할 수 있게 되어서, 상수원 규제가 필요없게 된다는 말이다.

‘한반도 대운하’라는 구상은 워낙 황당해서 심각하게 논의할 가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처리된 하수를 인공 수로(水路)나 관로(管路)를 통해 팔당호 아래 한강으로 방류하는 구상은 충분히 검토해 볼 만하다고 생각된다. 특히 경기도 광주시와 용인시 모현면 등 경안천 유역의 지자체는 ‘한반도 대운하’와는 별도로 이런 구상을 해 봄직하다. 여기서 모델로 삼을 만한 것이 1900년에 건설된 시카고 운하이다.

2. 1885년 시카고 폭우

처리한 하수를 인공수로를 통해 다른 곳으로 배출하는 경우로 유명한 사례는 시카고 시(市)이다. 19세기 말까지 시카고는 도시 하수를 오대호의 하나인 미시간호(湖)에 직접 배수하거나 미시건호(湖)로 흘러 들어가는 시카고 강(Chicago River)에 방류했다. 시카고 시는 미시건 호에서 물을 뽑아 수돗물로 공급하고 하수는 다시 미시건 호로 방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하수가 다시 수돗물 취수정(取水井)으로 유입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많았다.

1885년에 엄청난 폭우가 쏟아 져서 시카고의 하수가 처리되지 않은 채 그대로 호수로 흘러 들어가는 일이 발생했다. 그 해 시카고에서 수인성 전염병인 콜레라와 장티프스가 만연해서 9만 명이 사망했다는 구전(口傳)이 있을 정도였다. (이것은 물론 과장이다. 9만 명은 당시 시카고 인구의 12%에 해당하는 엄청난 숫자이다.) 이는 물론 터무니없는 과장이지만, 실제로 1880년대 10년 동안 시카고에서 약 1000명이 장티프스로 사망했음은 기록으로 확인되고 있다. 1860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링컨과 맞섰던 스티픈 더글러스도 1861년에 장티프스로 시카고에서 사망했다.

여하튼 1885년 대홍수로 인해 시카고 시민들은 비슷한 규모의 홍수가 발생하면 그들의 식수 공급이 위협받을 것임을 알게 됐다. 하지만 시카고는 미시간 호 외에는 상수원이 없었다. 그렇다면 하수를 다른 곳으로 흘려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3. 시카고 배수(排水) 운하 건설

1887년 이샴 올리브라는 엔지니어는 미시건 호수에서 불과 12마일 떨어진 곳에 미시시피 강 상류 지류가 있음을 지적하면서, 시카고 강의 흐름을 역류시키는 방안을 제시했다. 시카고 강의 흐름을 역류시키면 시카고 시에서 나온 하수가 호수 반대 방향을 흘러가서 미시시피 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이다.

산을 관통하는 운하를 만들어서 도시 하수를 데 플레인 강(Des Plaines Rivers)으로 흘려 보내는 계획이 수립됐다. 1889년에 일리노이 주(州) 의회는 시카고 위생구역(The Chicago Sanitary District)을 설치하고 이 공사를 추진하도록 했다. 1990년에 록포트 시(市)까지 공사가 완공되었고, 1903-1907년에는 운하 구간이 연장되었다. 록포트에는 전력으로 물을 서쪽으로 흘러 보내는 대형 펌프 시설이 건설됐다. 1910년과 1922년에는 노스 쇼어 채널과 칼러멧 채널이 추가로 건설되어 다른 지역의 하수도 이 운하로 흘러 들어가게 됐다.

이 운하는 ‘시카고 위생 - 선박 운하(The Chicago Sanitary and Ship Canal)’라고 명뎡되었다. 이 공사는 당시로서는 규모가 땅을 가장 많이 팠던 역사(役事)였다. 초기에는 작은 배가 다녔지만 미국의 많은 다른 운하와 마찬가지로 얼마 후 육상교통수단이 발전함에 따라 선박운송 기능은 의미를 상실했다.

운하에 미시건 호의 물을 흘려 보내서 하수를 희석시키고 선박이 운항할 수 있게 했다. 1901년에 시카고 시는 연방정부로부터 호수로부터 매초 4,167 입방 피트를 취수해서 운하로 흘려 보낼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았다. 시카고 시는 보다 많은 물을 흘려 보내려고 해서 연방정부와 분쟁이 발생했다. 일리노이 주 정부와 연방정부와의 분쟁은 연방대법원의 전속관할인 관계로 연방대법원이 개입하게 됐다. 연방대법원은 일리노이 주와 시카고 시에 대해 오대호로부터의 취수량을 점진적으로 줄이도록 했다. 1967년에 연방대법원은 취수량을 초당 3200 입방피트로 제한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4. 팔당 특별지역에 적용 ?

시카고 시의 이러한 경험은 팔당 상류 지역에 적용해 볼 수 있다고 생각된다. 우선적으로 고려해 볼 수 있는 것은 인공 수로를 건설해서 경안천을 탄천으로 잇는 방안이다.

거의 건천화(乾川化)되어 있는 경안천의 지류를 깊이 파서 경안천을 경기도 광주시 경안동에서 경충국도(3번 국도)와 평행되는 방향으로 역류시켜, 성남시 분당 야탑동에서 탄천으로 잇는 방안이다. 나지막한 산자락을 두고 동쪽은 경안천의 지류가, 그리고 서쪽은 탄천의 지류가 흐르고 있어 이것을 이어서 경안천의 물을 탄천으로 돌리는 것이다. 도로를 터널로 건설하듯이 배수 수로도 터널로 건설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런 구상이 실현되면 현재 광주시 오포읍, 용인시 모현면과 포곡읍이 상수원 특별대책지구에서 풀리게 된다. 그러면 자연환경이 좋은 경기도 남동부에 분당 같은 위성 도시가 몇 개가 생겨나는 등 엄청난 개발이 가능해 진다. 또한 팔당호 오염에 있어 가장 책임이 큰 경안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

한편 짚어 볼 문제도 적지 않다. 우선 경안천 하류의 유수량이 줄어들어 생태계에 변화가 발생할 것이다. 탄천 하류의 성남시와 서울 송파구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알 수 없다. 대운하 건설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인공수로 건설에도 비용이 적지 않게 들 것이다. 추가로 건설될 아파트 단지가 상당액을 부담해야 할 것이지만 경기도와 중앙정부가 적잖은 부분을 분담해야 할 것이다. 홍수가 발생하는 경우에 인공수로가 제대로 기능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주의해야 할 것이다.

물론 제일 좋은 방법은 수도권 인구가 성장을 멈추어서 경기도가 수도권 규제완화를 주장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시카고 시의 경우를 참고로 해서 이런 구상을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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