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미국 대법원, 온실가스 규제를 명하다
2008-02-20 01:37 1,619 관리자

미국 대법원, 온실가스 규제를 명하다

(첨단환경 2007년 6월)

1. 2007년 4월 3일자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

2007년 4월 3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5대4의 판결로 환경보호처(EPA)가 온난화를 야기하는 가스를 규제하기를 거부함으로써 대기정화법(The Clean Air Act)을 위반했다고 판결했다. 부시 행정부는 교토 의정서 가입을 거절했을 뿐더러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강제적 규제를 시행하기를 거부해 왔는데, 연방대법원은 이 같은 부시 행정부의 정책이 환경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2. 사건의 배경

클린턴 대통령이 교토 의정서에 서명하고 난 후 1년이 약간 지난 1999년 가을, 그린피스, 지구의 친구들, 자연자원방어협의회(NRDC), 시에라 클럽 등 19개 환경단체가 환경보호처에 대해 자동차가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규제하는 규칙을 제정해 달라고 청원했다. 그러나 캐롤 브라우너 환경보호처장은 이 청원을 접수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클린턴 대통령이 교토 의정서에 서명하고 나서도 의회에 비준 동의를 구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브라우너 처장은 방관으로 일관했다. 
앨 고어의 추천으로 환경보호처장이 되어 클린턴 임기 8년 동안 재임한 캐롤 브라우너 처장이 자동차가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규제하지 않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클린턴 대통령이 온실가스를 규제할 의지가 없음을 알고 있었던 그녀는 앨 고어가 대통령에 당선될 것을 기대하고 기다렸던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하지만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앨 고어는 조지 부시에게 패배했다.
부시 대통령은 취임 초기에 교토 의정서에서 이탈할 것을 선언했다. 그럼에도 지구 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해선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크리스티 휘트먼 처장이 이끄는 환경보호처는 환경단체들이 제기한 청원을 심리하는 절차를 계속했다. 교토 의정서를 두고 백악관과 불협화음을 일으켜온 휘트먼 처장은 2003년 6월에 처장직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2003년 9월, 환경보호처는 자신들이 자동차가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규제할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고 최종적으로 판단해서 청원을 기각했다.
환경보호처의 결정에 대해 환경단체들은 반발했다. 매사추세츠, 캘리포니아, 코네티컷, 뉴욕, 일리노이, 뉴저지, 오리건, 워싱턴 등 12개 주, 뉴욕시, 워싱턴 DC, 볼티모어 시 등 3개 시, 그리고 미국령(領) 사모아가 환경단체들에 가담해서 연방법원에 환경보호처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에 대해 미국 자동차회사 협회, 미국 자동차 딜러 협회, 엔진 제작회사 협회, 트럭 제조회사 협회 등 업계와 미시건, 알래스카, 아이다호, 캔자스, 네브라스카, 노스 다코다, 사우스 다코다, 오하이오, 텍사스, 그리고 유타 주가 환경보호처 측에 참가했다. 환경보호처와 이들은 원고들이 소송을 제기한 당사자 적격(適格)이 없다고 주장했다. 자동차 업계와 자동차 산업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주의 정부는 온실가스 규제가 자동차 업계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을 우려한 것이다. 이들은 미국이 배출하는 전체 온실가스 중 비중이 가장 큰 부분은 화력발전으로 40%에 달하고, 자동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3. 법적 쟁점과 연방항소법원의 판결

소송의 법적 쟁점은 대기정화법에 의미하는 ‘대기오염물질(air pollutants)’에 이산화탄소 같은 온실가스가 포함되느냐 하는 것이다. 즉 SOx 등 인간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통상적 오염물질 외에도 탄산가스 같은 온실가스도 환경보호처가 규제해야 할 오염물질인가 하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매사추세츠 주 등 원고들이 이런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자격이 있나 하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서 매사추세츠 주는 온난화로 인해 해수면이 30 센티미터가 상승하면 매사추세츠 주는 긴 해안선을 따라 폭 4.5 미터의 땅을 상실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2005년 7월 워싱턴 DC를 관할하는 연방항소법원는 환경보호처를 지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항소법원은 원고들이 소송을 통해서 피해를 구제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했다고 판시했다. 랜돌프 판사가 판결문을 썼고, 테이틀 판사는 이에 반대했다. 센텔 판사가 랜돌프 판사의 의견에 결론적으로 동조해서 2대1의 판결로 환경보호처가 승소한 것이다.

4. 연방대법원의 판결

연방대법원은 9명의 대법관이 5대4로 나누어진 판결로, 환경보호처에 패배를 안겨주었다. 대법원을 대표한 폴 스티븐스 대법관은 온실가스를 규제할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한 환경보호처의 결정은 “자의적이고 법에 합치되지 않는다(arbitrary, capricious, and not in accordance with law)”고 했다. 스티븐스 대법관은 환경보호처가 자동차 배기가스가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또 그렇게 판단하는 합리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 한 규제를 거부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스티븐스 대법관의 의견에는 스티픈 브라이어, 루스 긴스버그, 그리고 데이비드 수터 대법관이 동조했다. 이들은 연방대법원의 진보파(liberal wing)인데, 중도 성향의 안토니 케네디 대법관이 진보 진영에 결과적으로 찬성해서 대법원의 다수 의견을 형성했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과 앤토닌 스칼리아, 클라렌스 토머스, 그리고 새무엘 얼리토 대법관은 반대의견을 제출했다. 이들은 지구온난화가 위기일 수는 있지만, 이 문제는 의회와 행정부가 판단할 사안이지 사법부가 개입할 문제는 아니라고 했다. 스칼리아 대법관 등 연방대법원의 보수파(conservative wing) 4명이 모두 반대한 것이다. 로버츠와 얼리토는 부시 대통령에 의해 대법원장과 대법관에 각각 임명되었고, 스칼리아는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그리고 토머스는 부시(41대) 대통령에 의하여 임명된 대법관이다. 보수 진보 중도가 4대4대1로 나누어진 연방대법원의 성향이 판결에 그대로 나타난 것이다.

5. 판결에 대한 반응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자 환경단체와 일제히 환영하면서 부시 행정부를 다시 한번 비난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선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과 바락 오바마 상원의원도 부시 행정부를 비난하고 대법원 판결을 치켜세우는 말을 쏟아냈다.
스티븐스 대법관은 판결의 모두(冒頭)에서 온난화에 대한 과학적 합의가 있다고 언급해서 환경단체에 힘을 실어 주었다. 법적 관점에서 볼 때 이 판결은 매사추세츠 주 등 원고들이 환경보호처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당사자 적격이 있으며, 환경보호처가 자동차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를 규제하기를 거부한 것이 위법이라고 한 것이다. 판결이 부시 행정부에 정치적 심리적 패배를 안겨 준 것은 분명하다.

6. 전망

이 판결과 관계없이 의회의 민주당 의원들은 지구 온난화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기 위한 작업을 해 왔다. 2006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 양원의 다수석을 차지해서 이런 법안이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커졌는데, 대법원 마저 민주당 편을 들어 준 것이다.
하지만 뉴욕 대학의 데이비드 쉔브로드 교수는 4월5일자 월스트리트 저널  칼럼에서 연방대법원의 이 판결은 실질적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쉔브로드 교수는 환경보호처는 통상적 오염물질을 규제하는데도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1970년에 제정된 대기정화법은 환경보호처로 하여금 1977년까지 미국 전역의 대기 중 오염물질을 인간의 건강이 영향을 받지 않는 수준으로 향상시키라고 명하였다. 그러나 환경보호처는 그 임무를 달성하지 못했다. 1987년까지도 1억 명 이상의 미국인이 나쁜 공기를 마시고 있었고, 법이 제정된 지 40년이 되어가도 많은 지역이 환경기준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온실가스를 규제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쉔브로드 교수는 의회가 온난화에 관한 법을 제정하는 경우에 그것은 캘리포니아 주가 제정한 '지구온난화 해결법(The Global Warming Solution Act of 2006)’과 유사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법은 캘리포니아 주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2020년까지 1990년 수준으로 감축하도록 주 정부기관이 규칙을 제정하도록 하고 있다. 말하자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 해야하는 희망적 사항을 열거하라는 것이다. 쉔브로드 교수는 캘리포니아 주의 법률은 ‘지구온난화 희망사항 리스트 법(The Global Warming Wishlist Act)’으로 부르는 것이 정확하다고 비꼬았다.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환경보호처가 규칙을 제정해 보았자 결국 실속 없는 ‘말의 성찬(盛饌)’이고 되고 말 것이라는 쉔브로드 교수의 관측이다. 사실 법률을 제정해서 온난화를 막을 수 있다면 지구 온난화 문제는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4대강 '토론'을 하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