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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국형 로스쿨의 암울한 앞날 (월간조선 2008년 3월호)
작성일 : 2008-04-10 15:43조회 : 2,122
(월간조선 2008년 3월호)
‘지역균형발전’에 좌초한 한국형 로스쿨의 암울한 앞날
- ‘고시 浪人’ 대신 ‘로스쿨 浪人’ 量産, 상위 5-6개 로스쿨만 생존 가능 -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정부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예비인가 결정을 발표하자 신청을 했던 많은 대학들이 심한 허탈감을 느끼고 있다. 탈락된 대학은 물론이거니와 선정된 대학도 심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 사법시험 합격자를 거의 내지 못했지만 ‘지역균형발전’ 덕분에 선정된 몇몇 대학을 제외하곤 이번 결정에 대해 만족하는 대학은 없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이미 예고된 것이다.
로스쿨이 우리의 토양에 맞느냐 하는 궁극적인 문제는 일단 접어 두기로 한다. 연간 배출되는 변호사 숫자를 정해 놓은 상태에서 로스쿨을 도입하기 위해선 반드시 고려해야할 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 한꺼번에 신청을 받아 일거에 인가를 하기보다는 준비가 된 대학에 대해서 인가를 주는 점진적 접근을 했어야만 했다. 아무리 훌륭한 대학이라도 학부생을 가르치던 대학이 로스쿨이 되기 위해선 몇 년 정도의 준비기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모든 대학을 사대로 몇 달 만에 준비하라고 하고 심사를 해 치웠다.
둘째, 로스쿨 자체가 기능하기 위한 최소한 요건으로 교수가 30명, 한 학년 학생 정원이 120명은 돼야 하고, 이른바 국제 경쟁력을 갖은 로스쿨이 되기 위해선 교수가 60명, 학생이 240명 정도는 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했다.
법학은 학문의 특성상 학부제나 전공간의 교류 같은 것이 어려운데, 로스쿨의 경우는 더욱이 그러하다. 제대로 교수진을 갖추고 학교를 경영하기 위해선 한 학년 학생이 몇십 명에 불과한 로스쿨이란 있을 수 없다. 교육부는 이 같은 기본 상식을 무시하고 돈키호테처럼 대들었으니 만용도 이만저만 한 것이 아니다.
무모한 대학, 무책임한 정부
너나없이 로스쿨이 되겠다고 대든 대학들의 무모함도 큰 문제였다. 개교 후 수 십 년 동안 사법시험 합격자를 변변히 내지도 못한 법과대학이 로스쿨이 되겠다고 별안간 교수를 초빙하고 건물을 세우고 도서관에 책을 사들였다. “그 동안 학부 과정의 법학교육이라도 제대로 했나” 반성해야 할 대학들이 이런 대열에 줄줄이 가담했다. 그런 대학 중 몇몇은 결국 ‘지역균형발전’이란 노무현 정권의 명분에 힘입어 로스쿨 인가를 받아 냈다.
대학들이 엄청난 무리를 해서 로스쿨 인가를 받겠다고 나선 데는 교육부의 책임도 적지 않다. 교육부가 처음부터 사법시험 합격자 수 등 사회적 기여도를 로스쿨 인가기준으로 분명히 해 놓았더라면 상황은 조금 달랐을 것이다.
처음에 교육부는 교수 확보율과 학술업적, 시설, 교육목표 등을 평가기준으로 삼았다. 많은 대학들이 이 기준을 맞추기 위해 교수를 스카우트하고 새로 건물을 세우자 이런 기준으로는 평가를 할 수가 없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지역할당이 추가되었고, 여기에 과거의 사법시험 합격자 숫자를 평가기준에 포함시켰다.
교육부가 내건 기준 중에서 제일 문제라고 보는 것은 교수 확보율이다. 어느 경우에나 전임교수가 20명이 되어야 하며, 교수 1인 당 학생 12명 이내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소기준을 충족하기 위해선 교수 20명에 정원 80명을 배정 받으면 되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전문대학원을 운영하기 위한 한 학년 학생 수를 120명을 잡으면 교수가 30명이 되어야 한다. 이 정도라면 운영에는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학은 120명 이상을 신청하면서 전임교수를 35명 이상 확보했다. 정원 40명을 확보한 대학도 전임교수가 35명을 갖고 있으니, 교수 대(對) 학생의 비율이 1대3.5에 이르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미국 보다 더 엄격한 교수확보 기준
우리나라의 로스쿨 교수확보 기준이 얼마나 우스운 것인가는 미국의 경우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미국에서 교수 대(對) 학생이 비율이 가장 낮은 로스쿨은 예일 대학이다. 예일대 로스쿨은 전체 학생 600명에 교수가 약 70명으로 교수 대 학생 비율이 1대 8이다. 하지만 예일대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이다.
명문 로스쿨인 버지니아 대학 로스쿨과 조지타운 대학 로스쿨은 전체 학생이 각각 120명과 1600명 수준이고 전임교수는 각각 80명과 120명으로, 교수 대 학생의 비율은 1대 15와 1대 13이다. 버지니아 대학과 조지타운 대학의 경우와 비교해서 볼 때 우리나라 로스쿨은 정원 자체는 너무 영세하고 교수 대 학생 비율은 지나치게 엄격하다.
미국의 경우도 로스쿨의 전임교수가 이렇데 많아진 것은 1980년대부터이다. 그 때부터 로스쿨 학비도 급속하게 올라갔다. 미국 로스쿨 학비는 너무나 비싸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융자를 받아서 학교를 다닌다. 졸업 후 안정된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신용불량자가 될 수 있다. 로스쿨은 학부가 아니고 순수학문을 하는 곳도 아니기 때문에 학교가 장학금을 줄 이유는 없다.
우리나라 로스쿨 인가 조건에는 “전체 학생의 20%에 대해 장학금을 주라”고 되어 있고, 대학들은 그런 황당한 조건을 말없이 받아 들였다. 로스쿨 인가를 위해서는 극약도 마시겠다는 것이 우리 대학들의 자세였다.
정원 40-60명을 배정 받은 로스쿨은 당장 경영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전임교수 35명에 50명 정원을 배정 받은 대학은 로스쿨 운영에 연간 40-50억 원의 적자를 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학 재정에도 문제가 발생할 것이고 대학 구성원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생길 것이다.
고비용 저효율 교육이 될 판국
이런 비싼 대가를 치르고 로스쿨이 개원해서 법학교육이 획기적으로 나아진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지는 알 수 없다.
현재 관련 법규에 의하면 로스쿨 총정원은 2000명이지만 변호사 시험 합격자는 정원의 70%인 1400명으로 제한하기로 되어 있다. 또한 응시 회수는 3회로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첫해는 전체 정원의 70%가 합격할 것이며, 그 다음해에는 전해에 떨어진 30%가 다시 응시해서 합격률은 53%, 그리고 그 다음 해는 합격률은 40%대가 된다.
만일에 3회 응시 제한이 위헌이라는 법원 판결이 나오면 합격률은 갈수록 내려갈 것이다. 이럴 경우 서울대 고려대 등 상위권 로스쿨의 변호사 시험 합격률은 90% 수준을 유지하겠지만 명성이 떨어지는 수도권의 하위권 로스쿨과 지방 로스쿨의 합격률은 20%대가 될 것이며, 지방에선 합격자를 전혀 내지 못해 스스로 폐교하는 로스쿨이 나올 것이다.
물론 이런 결과가 자유 경쟁에 의한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국가 정책은 이런 점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정부는 건물 새로 짓고 교수 많이 채용하면 로스쿨이 된다고 했지만, 결국에는 고비용 저효율의 미니 로스쿨을 남발해서 폐교의 함정에 빠뜨리고 말았다.
로스쿨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 “국제화 시대에 전문 변호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사법시험으로는 안 되고 로스쿨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로스쿨에서 민법 형법 등 기본 과목 외에도 지적재산권법, 국제통상법 등 시대가 요청하는 전문 과목을 공부하게 된다면 더 이상 바랄 나위가 없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로스쿨 낭인’의 엄청난 폐해
로스쿨을 나왔다고 모두 변호사가 되는 것이 아니다. 변호사 시험에 붙어야 변호사가 비로소 변호사가 된다. 앞서 지적한 대로 변호사 시험의 합격률은 의외로 낮다. 더구나 대학 학부도 아니고 로스쿨까지 나와서 변호사가 되지 못한 사람에 대한 주변의 시각이 어떨지는 충분히 상상이 갈 것이다.
로스쿨 재학생들의 관심은 당연히 변호사 시험 합격이 될 것이며, 변호사 시험의 필수과목과 득점이 쉬운 선택과목에만 공부를 집중할 것이다. 로스쿨에서 영어로 국제계약법을 가르친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당치도 않는 환상일 따름이다.
중위권 이하의 로스쿨은 영화에 나오는 하버드 로스쿨이 아니라 신림동 고시학원을 연상시키게 할 것이다. 로스쿨 나와서 결국은 변호사가 되지 못하고 자살을 하는 사람도 나올 것이다. ‘고시 낭인(浪人)’이 ‘로스쿨 낭인’으로 바뀌는 셈인데, 로스쿨 낭인이 야기하는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학부 법학과는 기초학문으로 법학을 가르치기 때문에 대학을 졸업한 학생이 고시학원을 전전하면서 고시를 준비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지 제도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로스쿨을 나온 사람이 낭인이 된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한 것이다. 로스쿨 도입을 논의할 때부터 이런 현실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로스쿨 도입하면 법률서비스 개선 ?
또 한 가지 생각할 점은 과연 우리나라 로스쿨이 3년 만에 변호사를 길러낼 수 있나 하는 문제다. 지금은 사법시험을 붙은 합격생이 2년 간 사법연수원에서 훈련을 받는다. 연수원 2년을 거쳐서 비로소 실무를 익히고 현장에 나가는 것이다. 믿을 만한 변호사는 사법연수원을 졸업하고 판사나 검사를 지냈거나 큰 로펌에서 훈련을 받은 변호사인 것임은 엄연한 현실이다. 로스쿨은 사법연수원이 해왔던 정도의 실무 교육과 훈련을 할 수는 없다. 변호사 시험 준비에 급급하게 될 중하위권 로스쿨의 경우는 더욱이 그러하다.
로스쿨 도입을 논의할 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로스쿨을 들먹거렸다. 미국은 로스쿨을 졸업하면 대부분 변호사가 되어 사회 각 부분에서 일한다는 이야기다. 미국에는 미국 변호사 협회의 인증을 받은 로스쿨이 약 180개가 있다. 그중 상위 50위에 드는 로스쿨은 변호사 시험 합격률이 거의 100%에 달한다. 하지만 하위권 로스쿨의 경우 합격률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미국 변호사 협회의 인증을 얻지 못한 로스쿨의 합격률은 절반 이하이다.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들이 로펌 등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외에 다른 분야에서도 많은 일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로스쿨 졸업생은 로펌에서 일하고 싶어 한다. 적당한 로펌 직장을 구하지 못하니까 기업체, 행정부 등에서 일하는 것이다. 1970년 대 이전만 해도 우수한 변호사는 로스쿨 교수로 가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로스쿨 교수를 희망하는 변호사들이 늘었다. 변호사가 정상적 수요를 훨씬 넘을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미국은 변호사가 많은 나라이다. 그럼에도 보통 사람들에게 법률 서비스는 비싸기 이를 데 없다. 가난한 범죄인이 자기가 고용한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난한 형사피고인은 정부가 고용한 공익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뿐이다.
반면 쓸데없는 소송을 남발하는 악덕 변호사는 널려 있다. 변호사 숫자가 늘면 국민들이 보다 저렴하게 법률 서비스를 향유할 수 있다는 주장은 허황된 것이다. 로스쿨만 도입하면 법률 서비스가 획기적으로 좋아진다는 주장은 미국 로스쿨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식”으로 하는 이야기이다.
로스쿨에는 나름대로 장점도 있다. 학부에서 경제학, 경영학, 정치학, 행정학 등을 공부한 사람들이 다시 법률을 공부해서 변호사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학부에서 화학, 생물학, 공학을 공부하고 로스쿨에 진학하면 지적 재산권 같은 분야에서 유리할 수 있지만 법률 공부 자체가 이공계와는 너무 다르기 때문에 공부 자체는 쉽지 않을 것이다.
어떠한 경우이든 변호사는 법률 이외에 다른 전공을 학부에서 공부한 사람임으로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법률 외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무식한 변호사’는 사라질 것으로 생각된다.
로스쿨 나온다고 전문변호사 되나 ?
로스쿨이 완전한 법률가를 길러 낼 것이라는 기대는 금물이다. “로스쿨을 나오면 영미권 법률에도 해박한 국제적 법률 전문가가 된다”는 주장도 코미디일 따름이다. 국내의 로스쿨은 변호사 시험을 위주로 한 교육이 될 수밖에 없기에, 국제법률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여전히 미국의 로스쿨로 유학을 가야 한다. 우리나라 로스쿨은 결코 미국 로스쿨 유학을 대체할 수 없다.
로스쿨을 나오면 어느 전문분야에 특화된 변호사가 된다는 주장도 허구이기는 마찬가지다. 미국의 경우에도 로스쿨 3년만 졸업한 변호사가 어느 분야를 특화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로펌에서 변호사 업무를 하면서 자연히 어느 분야에 특화할 따름이다. 미국의 큰 로스쿨은 세법, 국제법 등 전문분야의 교과목을 집중적으로 개설하기도 한다. 세법은 뉴욕대학이, 그리고 국제법은 조지타운대학이 그러하다. 하지만 이런 특화된 과목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학생은 로스쿨 기본과정(J.D.) 재학생이 아니라 로스쿨을 졸업하고 다시 어떤 특화된 분야를 공부하기 위해 전문석사학위(LL.M.) 과정에 등록한 학생들이다.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 1년 간 공부를 더하는 것이지, 결코 로스쿨 재학시에 어떤 분야를 특화하는 것은 아니다. 교육부가 로스쿨 인가신청의 요건으로 특성화를 규정한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상위 5-6개 로스쿨만 경쟁력 가질 것
필자가 거의 30년 전에 미국의 로스쿨에 유학 가서 무엇보다 부러웠던 것은 건물과 도서관 등 시설이었다. ‘로스쿨 광풍(狂風)’ 덕분에 요즘 우리나라 법과대학 시설은 갑자기 초현대식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묵묵히 비싼 등록금 내고 다닌 법대 학부생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자기들이 교육환경을 개선해 달라고 요구했을 때는 꿈적도 않던 대학당국이 로스쿨 인가 신청한답시고 자기들이 낸 등록금으로 막대한 시설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 학부생들한테 무어라 할 말이 없는 것이 요즘의 심정이다.
만일에 우리 대학들이 지금의 학부 법학교육에 로스쿨 인가신청에 드린 투자의 1/3만이라도 들였다면 로스쿨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온 나라의 대학이 벌인 로스쿨 광풍은 우리나라의 대학이 얼마나 비(非)교육적인가는 역설적으로 보여 주었다.
로스쿨 도입에 앞장섰던 대학은 우리나라 법학교육을 주도해 온 서울대나 고려대가 아니었다. 오히려 중하위권 대학들이 ‘로스쿨 정원 3000명’을 내걸고 투쟁을 했었다. 그런데 그런 투쟁을 주도한 대학은 이번에 대부분 탈락했다. 아마도 그들은 한국형 로스쿨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잘 몰랐던 것 같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로스쿨은 어떻게 될 것인가 ? 서울대 고려대 등 상위 5-6개 로스쿨만이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들의 갖고 있는 정원은 대략 700명 정도이고 그중 절반 정도인 350-400명만 품위 있는 변호사가 될 것이다. 이들 중에 미국 유학을 거친 엘리트가 결국 우리나라의 법조 엘리트가 되는 셈이니, 사법시험을 두고 있는 지금의 상황과 크게 달라 질 것이 없다. 다만 노무현 대통령 같은 ‘고졸(高卒) 변호사’는 다시는 탄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가장 큰 변화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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