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발공약으로 승리한 한나라당

작성일 : 2008-04-11 15:39조회 : 1,750

(첨단환경 2008년 5월호)

‘개발 공약’으로 승리한 한나라당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1. 4월 9일 총선 결과

4월 9일 총선은 환경과 개발의 시각에서 보더라도 매우 흥미로운 선거였다. 멋대로 공천을 한 덕분에 한나라당은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에서 고전했다. 한나라당을 살린 것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세력이 강했던 수도권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출신이고, 현재의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가 모두 한나라당인데 힘입은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번 총선의 하이라이트는 이명박 정부의 실세라는 이재오 의원의 낙선이다.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종교처럼 신봉했던 그는 몸소 자전거를 타고 운하 코스를 완주하기도 했다. 그런 이재오 씨를 상대로 ‘대운하 반대’를 내걸고 ‘은평 을’에 출마한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가 당당하게 승리한 것이다. 대선 자금을 환급 받지 못해 100억 대 재산을 날린 문국현 씨에게 국회의원 당선은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창조한국당은 비례대표도 2석을 확보했으니, 선거에선 공격 모드를 취해야 승리할 수 있다는 공식이 잘 들어맞은 셈이다.
이재오 씨 뿐만 아니라 이방호, 박승환 의원 등 한반도 대운하를 전도하는 데 앞장섰던 사람들이 보기 좋게 낙선했으니, ‘한반도 대운하’는 ‘국운(國運) 융성의 계기’가 아니라 ‘하늘이 내린 저주(咀呪)’인 셈이다. 그런 ‘저주’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유우익 대통령실장, 곽승준 수석, 이만의 환경부장관, 정종환 국토해양부장관 등이 건재하고 있는 한 이명박 정부는 운신(運身)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2. ‘뉴타운 열병(熱病)’

한나라당이 서울에서 선전(善戰)한데는 ‘뉴타운 열병’이 결정적이었다. 이번 총선에서 정몽준 대(對) 정동영의 대결로 많은 주목을 받은 ‘동작 을’도 그런 경우였다. ‘동작 을’은 바로 나의 직장 중앙대학교가 있는 곳이라서 자주 들르는 식당 커피 숍 등에서 민심 동향을 들을 수 있었다. 원래 ‘동작 을’은 호남 유권자가 많아서 전통적으로 민주당 세(勢)가 강한 곳이다. 노량진에서 동작동 현충원에 이르는 이 곳은 한강대교 남단 지역으로, 한강 남쪽에선 가장 오래된 ‘오리지날 강남’이다. 그런데도 이 지역은 내가 25년 전 학교에 처음 발을 디딘 후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만큼 낙후된 지역이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 들어서 강남 집 값이 폭등하자 이곳에도 재개발 바람이 불었다. 노무현 정부 말기에 흑석동 일대가 뉴타운 지역으로 지정되었다. 갑자기 동네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부동산 소개소마다 토지 지분이 몇 평인 빌라가 얼마라고 써 붙이는 등 붐 타운을 방불케 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 일찌감치 이곳에 자리잡은 한나라당 의원은 “집권당 의원을 당선시켜야 뉴타운 사업이 원만하게 이루어진다”라는 논리를 퍼뜨렸다. 이 전략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민주당이 정동영 씨를 ‘동작 을’에 전략 공천하자 한나라당은 정몽준 의원을 전략 공천했다. 주민들은 정몽준 같은 대기업 오너 실세 의원이 ‘뉴타운’을 확실하게 밀어붙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유권자들에게 특별하게 내어놓을 것이 없었던 정동영 씨는 민주당 고정표를 얻는데 그치고 말았다. 노무현 정권이 시작한 ‘뉴타운’이 호남과 민주당의 아성(牙城)이었던 ‘동작 을’을 한나라당으로 보내 버린 것이다.
비슷한 현상은 도봉, 강북, 중랑. 노원 등 전통적으로 민주당이 강했던 ‘강북 벨트’에도 생겼다. 여기에 출마한 한나라당 후보들은 저마다 뉴타운 공약을 쏟아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뉴타운 10곳을 추가로 지정하겠다”고 거들었다. 가뜩이나 대선에 패배한 후 이렇다할 만한 공약이 없었던 민주당 후보들은 수세에 몰렸다. 집값 상승에서 소외되었던 ‘오리지날 강남’과 강북 유권자들의 한풀이가 한나라당의 승리는 가져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3. ‘규제 풀어 개발하겠다’

한나라당은 경기도에서도 승리했다. 전통적으로 한나라당이 강세를 보여 온 수도권 북동부에서의 한나라당 승리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번처럼 한나라당 후보들이 노골적으로 “규제를 풀어 개발을 하겠다”고 나선 적은 없었다. 한강변 지역구의 한나라당 후보들은 대운하의 선착장이 자기 지역구에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어떤 후보는 아예 선거 공보에 선착장 조감도를 포함시켰다.
이런 분위기는 김문수 지사에 의해 고무(鼓舞)된 점도 있다. 김문수 지사는 취임 후 수도권 규제 완화에 거의 ‘올인’하다시피 하고 있다. 이제는 규제를 완화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규제를 없애야 한다는 말마저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규제를 확 풀어서 지역을 개발하겠다”는 말은 이제 친숙한 캐치 프레이스가 되었다.
김문수 지사는 대운하가 경기도 동북부 규제완화와 개발에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운하가 건설되면 팔당 취수원을 북한강 쪽으로 옮기며, 그러면 남한강 유역은 규제가 풀릴 것이라는 말마저 돌고 있다. 이런 추세에 편승해서 팔당 특별대책 지구에 속한 지자체 사이에 “수자원공사에 댐물 값을 내지 말자”는 논리가 퍼지고 있다. 팔당호와 한강에 접한 지자체는 팔당호와 한강의 물에 대해 ‘지역 수리권’을 갖고 있다는 황당한 주장마저 나오고 있다.
경기도 동북부에 출마한 민주당 후보들도 수도권 규제와 개발 문제에 대해선 한나라당 후보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 한나라당 후보가 대운하 선착장 조감도까지 제시했지만 이를 문제삼은 민주당 후보는 없었다. 준비된 후보가 없는 탓도 있겠지만, 지역 유권자들의 개발욕구가 너무 커서 섣불리 문제삼을 수 없는 것이다. 후보간 공약에 차별성은 사라지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구태여 야당인 민주당 후보를 찍을 이유가 없으니, 대통령과 지사가 속해 있는 정당의 후보가 유리하기 마련이다.
물론 수도권 규제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문제를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원만하게 해결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것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였다면 이미 오래 전에 해결을 보았을 것이다. 사실 오늘날의 수도권 정책의 뿌리는 한나라당이다. 노태우-김영삼 정권 시절에 지금의 수도권 정책이 골격을 갖춘 것이다. 그린벨트를 과감하게 풀어 젖힌 김대중 정부도 수도권 정책을 손보지는 못했다. 1997년 대통령 선거 때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는 규제를 풀겠다는 김대중 후보의 공약을 포퓰리즘이라고 몰아 붙이지 않았던가. 후보는 뻔한 거짓말을 하고, 유권자는 거기에 알고서도 넘어 가는 것이 우리의 선거다.

4. ‘공약 따로, 정책 따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됐을 때 서울 강남의 유권자들은 새 정권이 종부세를 화끈하게 낮추고 재건축도 활성화시킬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돌아가는 것을 보면, 종부세 저감과 재건축 활성을 위한 정책은 답보상태에 있는 것 같다. ‘공약 따로, 정책 따로’이니, 유권자들은 농락 당하고 있는 것이다.
‘뉴타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흑석동 같이 낙후된 지역은 ‘뉴타운’ 같은 계획 개발만이 지역을 살만한 곳으로 발전시킬 것이다. 중랑, 도봉 등도 비슷한 사정일 것이다. 그러나 ‘뉴타운’으로 지정된다고 해서 별안간 새 아파트가 들어서고 동네가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뉴타운’은 강남권과 비(非)강남권 사이의 격차를 없애기 위해서 노무현 정부가 내어놓은 정책이다. 그런 ‘뉴타운’이 한나라당의 승리를 위해 이용됐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5. ‘민심 따로, 정책 따로’

하지만 ‘한반도 대운하’만은 ‘민심 따로, 정책 따로’인 것으로 보인다. 이미 현대건설에선 조령을 관통하는 경부 운하 설계를 마쳤다고 하니, 이명박 정권은 무슨 대가를 치르고도 운하를 파겠다고 작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재오가 낙선하든, 이방호가 낙선하든, 그 무엇에도 개의치 않을 모양이다.
지난 10일 평소부터 운하에 대해 부정적 생각을 피력해 온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18대 국회 세력 관계가 한반도 대운하를 추진할 수 없게 돼 있지 않다”고 한 신문에 대해 말했다. 그러나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대운하는 정치적 이슈가 아니라면서 강행의 뜻을 밝혔다.
높은 곳의 속내는 이한구 의원과는 딴판인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총선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총리급 또는 부총리급 인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대운하 특위를 발족시켜서 한반도 대운하 논의를 본격적으로 이끌겠다고 밝혔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대운하 특위를 공청회가 끝난 후에 대운하청으로 격상시켜서 대운하 건설을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할 것이라 한다. 여론 수렴을 하겠다고 하나, 이미 결정해 놓고 밀어붙이겠다고 선전포고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는 ‘은평 을’ 선거 결과가 보여 준 ‘민의’는 안중(眼中)에도 없다. ‘대운하’는 이명박 정권의 ‘무덤’이 되겠지만, 그 과정에서 국가 전체가 잃는 것이 너무 많을 것 같아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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