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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박근혜 정부가 거부한 ‘한국경제 개혁서’ (주간경향)
작성일 : 2015-07-29 23:13조회 : 2,101
2015.08.04ㅣ주간경향 1137호
[이상돈의 책을 통해 세상읽기]
박근혜 정부가 거부한 ‘한국경제 개혁서’
“저자는 우리 사회가 정치민주화는 달성했지만 경제민주화는 이루지 못해서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경제민주화는 양극화 등으로 경제·사회적 긴장이 고조돼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때 정부가 원용할 수 있는 안전장치라고 설명한다.”
2012년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도와 대선공약 수립 등 많은 역할을 한 김종인 박사가 그해 11월에 펴낸 이 책의 부제는 ‘한국 경제의 미래를 위하여’이다. 많은 경우에 책의 부제가 그 책의 성격을 보다 잘 설명하는데, 이 책도 그러하다.
역대 정부에서 국회의원과 경제수석 등을 역임한 김종인 박사는 2012년 한해를 필자와 함께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박근혜 경선후보 캠프, 그리고 박근혜 대선후보 선대위에서 보냈다. 박 대통령은 국민대통합, 경제민주화, 그리고 정치쇄신을 내걸고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승리로 이끌었으나 대선 후에는 경제민주화 공약을 개발한 김종인 박사와 결별하고 말았다. 보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박 대통령은 2012년 본선이 중반전에 접어든 그 해 10월 자신이 지켜왔던 원래의 포지션을 상실했다. 자신이 내걸었던 공약을 지킬 능력과 의지를 그 때 이미 상실했다는 말인데, 당시에 필자도 그런 조짐은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대선 전인 2012년 11월에 나왔지만 여러 곳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간에”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도 그 같은 사정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김종인 박사만큼 국정에 관한 경험과 학식을 겸비한 사람을 찾기는 어렵다. 그런 김 박사가 펴낸 이 책은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경제민주화 등 자신이 내건 공약을 지키기 어렵다는 판단이 깃들어 있다. 그렇기에 박근혜 정부의 실패가 기정사실화돼 있는 오늘날에 이 책은 한층 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대실패를 극복할 방안이 바로 이 책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오늘날의 세계경제 자체가 시장에만 맡겨 둘 수 없는 상황이며, 따라서 건전한 경제질서를 위해선 정부가 어느 정도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990년대 전 세계를 풍미했던 자유방임주의 시장경제가 오늘날 같은 사회 양극화를 초래했고, 우리나라는 1997년 경제위기를 성급하게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사회적 모순을 치유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심화시켰다. 1997년 경제위기도 정부가 근본적인 기업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 거시지표에만 안주해서 일어난 것이라면서, 정부 정책담당자의 자질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시장경제가 사회양극화’ 초래 지적
책은 단순히 경제정책에 대한 조언을 넘어서 정권 담당자들이 민심을 읽지 못하면 더 큰 일을 당한다는 경고를 담고 있다. 1958년 총선에서 자유당이 서울에서 단 1석만 얻었으며, 1971년 총선에서 공화당이 역시 서울에서 단 1석만 얻는 등 경고등이 켜졌음에도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은 민심을 반영하기보다는 독주를 계속해서 결국은 4·19 혁명과 10월 유신이 발발했음을 상기시킨다. 민도가 높고 여러 지역 출신 사람들이 섞여 살고 있는 서울 사람들의 판단이 민심의 향방이라는 것이다. 영남 민심에만 의존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가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장기 독재의 길을 택한 박정희 대통령이었지만 대중의 경제적 상황을 고려할 줄 알았던 그의 정치적 감각은 탁월했다고 저자는 회고한다. 유신 후에 박정희 대통령은 소득세 면세점을 일시에 대폭 인상해서 근로자의 85%가 소득세를 내지 않도록 했고, 근로자 재산형성저축과 의료보험을 실시해서 소득격차로 인한 계층갈등을 사전에 예방했다. 저자는 재산형성저축과 의료보험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했던 역할에 대해서도 적고 있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정치민주화는 달성했지만 경제민주화는 이루지 못해서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경제민주화는 양극화 등으로 경제·사회적 긴장이 고조돼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때 정부가 원용할 수 있는 안전장치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야권 일각에서 주장하는 재벌세 도입 같은 정책은 해결책이 아니라고 본다. 저자는 우리나라가 사실상 재벌의 영향 하에 있다면서, 언론은 재벌의 광고에 의존하고 교수 등 지식인 엘리트도 재벌의 영향권 아래 있다고 일침을 가한다. 그러면서도 경제민주화는 재벌을 해체하려는 것이 아니라 경제·사회적 균형을 맞추고, 특히 거대 경제세력이 나라 전체를 지배하지 않도록 하자는 주장이라고 정리한다.
저자는 요새 회자되고 있는 ‘제3의 길’도 그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권력이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신자유주의 경제이론을 예로 들면서 학자들의 교조적 이론을 국가정책이 따르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0년대 말에 부가가치세를 도입해서 시행하려 할 때 저자 자신은 시기상조라고 반대했는데, 결국은 이에 대한 비난여론이 비등해져서 10·26으로 가는 부마(釜馬) 사태를 유발한 하나의 원인이 됐다고 저자는 회고한다. 그러면서도 12·12 후에 들어선 국보위가 부가가치세를 폐지하려고 할 때 시행착오를 거쳐 자리 잡은 부가가치세를 폐지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대통령은 무엇을 할지 청사진이 있어야”
책은 경제민주화를 위해서 해야 할 바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장관, 금융위원회 위원장, 공정거래위원장을 어떤 인물로 임명하는가가 중요하며, 이들 부처가 본연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보장해 줘야 하고, 한국은행이 독립해야만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기 때문에 기획재정부 차관과 금융위 부위원장이 금융통화위원회에 참석해서 발언할 수 있는 제도를 철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비정규직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서 기업노조 체제를 고쳐야 하고, 교육과 보육은 복지로 봐서는 안 되며, 복지 예산을 위해선 현재의 정부 예산 가운데 10%를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재원을 사용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공공분야 구조조정에 완전히 실패한 박근혜 정부에 아픈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시장경제의 흐름을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정부가 외환시장에 인위적으로 개입해서는 안 되며, 부동산 정책이라고 이름 붙이는 정책을 일절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조세제도는 국가재정 운용의 큰 틀 안에서 기획재정부가 맡는 것이지 국토해양부가 정책수단으로 세금제도를 써서는 안 된다고 강변한다.
저자는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무엇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밑그림과 청사진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는데, 그것은 박근혜 대통령을 두고 한 이야기로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필자도 2012년 한 해 동안 박 대통령을 도우면서 느꼈던 바가 있었다. 박 대통령은 선거를 향한 전략은 있는데 도무지 대통령이 된 후에 대해선 밑그림이 없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어디서 그런 작업을 한다는 소문도 듣지를 못했으니 집권을 해도 제대로 굴러갈 것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김종인 박사가 있었기에 필자는 희망을 가졌다. 대통령이 경륜을 갖추고 있지 못해도 적어도 김종인 박사가 대통령을 도와서 정부를 이끌어 나가면 집권 5년간 우리 경제가 필요한 구조조정을 거쳐서 격변하는 환경에 적응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런 신뢰는 무너졌고 그 결과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정치도 없고 정책도 없으며, 위기관리도 못하면서 온갖 의혹만 양산하는 무능한 정권이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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