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LEESANG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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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안
작성일 : 2015-10-12 22:22조회 : 1,895
2015년 10월 12일 새정치연합 민집모 토론회 발제문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제, 그리고
혁신위원회 '혁신안'에 대한 하나의 의견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1.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제
새정치민주연합의 갈 길을 두고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많은 논의가 있다. 지난 몇 달 동안 혁신위원회는 자체적으로 많은 논의를 한 후에 주로 당 기구와 공천 제도에 대해 손질을 해서 혁신안을 내어 놓았고 당내 절차를 거쳐서 혁신위 안은 최종적으로 채택됐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당과 선거를 관찰해 왔으며, 특히 2012년 4.11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에서 정치쇄신을 위한 룰을 책임졌던 필자는 혁신위 안이 현실성 측면에서 실제로 시행하는데 무리가 많다고 생각한다.
현재 새정치민주연합를 비롯한 야권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야당에 우호적인 언론마저 이러다간 2016년 총선은 물론이고 2017년 대선에서도 야당이 승리하기 어렵다는 관측을 하고 있다. 지난 번 남북대치 상황과 중국 전승절 방문으로 인해 저조하던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도는 45%를 상회하고 있고 새누리당의 지지도도 새정치연합의 그것보다 15% 이상 높은 상태에 있다. 하지만 이는 정부와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새정치연합이 국정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수권정당이라는 믿음을 주지 못해서 생긴 현상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8년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경제 지표도 좋지 않고 사회 양극화도 심화되어 가고 있으며, 공공 부채 증가폭은 가히 살인적이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심각하게 훼손되었으며, 국정 아젠다는 실종되어 버렸고 정부와 국민 간의 소통도 거의 없는 상황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민주화, 검찰개혁 등 많은 공약을 파기해서 유권자의 신뢰를 저버렸을 뿐더러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 비선 국정개입 의혹, 세월호 사건 등으로 국민의 신뢰를 많이 상실했다. 사정이 이런 데도 야당의 지지도가 여당의 반토막이라면 문제는 야당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면 어떤 이유에서 야당에 대한 지지가 이렇게 약한가 하는 문제가 있다. 첫째, 영남과 60대 이상 노년층이 탄탄하게 여당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노령연금 월 20만원은 노령 유권자가 새누리당을 지지하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다. 둘째, 호남에서 야당에 대한 지지가 흔들리고 있으며, 여당을 지지하지 않는 20-30대가 야당도 지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20-30대가 무당파 성향이거나 아예 정치에 대해 냉소하기 때문이다. 셋째, 박근혜 대통령에 실망한 중도성향 유권자들이 증가했지만 이들이 아직 야당을 지지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전에 없이 야당에게 이런 문제가 생긴 근본 원인은 일단 야당의 리더십에 있다고 해야 한다. 하지만 청와대가 도무지 야당을 국정의 상대방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도 이유가 된다. 야당은 현 정권 들어서 여러 이슈에 대해서 강경한 입장을 취했지만 그러다가도 대화에 응하는 등 협조적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야당을 도무지 파트너로 인정하지 있지 않아서 야당은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 버렸다. 청와대가 이런 자세를 갖고 있는 한 야당이 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제한되어 있으니 야당 무시 전략이 효과를 발휘한 셈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야당의 행동반경도 제한될 수밖에 없는데, 야당은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와 같은 지방선거와 재보선에서 연거푸 실패해서 오늘의 위기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
이유야 어떠하든 현재 야당은 심각한 리더십의 위기를 겪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기회는 있다고 본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대통합, 경제민주화 같은 공약을 모두 파기했기 때문에 여당은 총선과 대선에서 우리 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고 있는 이 같은 아젠다를 다시는 이야기할 수 없다. 여당이 색깔론에 집중하는 것도 달리 내세울 것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야당이 심기일전해서 이 같은 시대적 과제에 대해 해답을 제시할 수 있다면 야당에 마음을 주고 있지 않는 표심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이 갖고 있는 계파 같은 문제에 대해선 의원 여러분들께서 더 잘 아시리라 생각되고, 제가 무어라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다만 제가 지켜본 바는 새정치연합이 작년과 금년에 있었던 선거에서 보여 준 몇 개의 실패가 결정적이었다. 지방선거에서 광주시장 선거, 보궐선거에서 동작을 공천이 그러했고, 무기력하게 치른 지난 4월 재보선이 그러했다. 선거 실패와 그로 인한 책임론 논쟁이 당을 무력화시켰고, 그러다 보니 "야당은 될 수가 없어" 하는 식으로 고착화된 통념이 생겼다. 따라서 이 같은 고착관념을 불식시키는 것이 시급하다. 돌이켜 보면 노무현 정권 당시에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이끌던 야당이 재보선에서 승리했고, 이명박 정권 당시에는 정세균 손학규 대표가 이끌던 야당이 지방선거와 재보선에서 승리했다. 반면에 새정치민주연합이 세월호 국면 이후에 보여준 선거 결과는 실망스럽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진보"에 묶여 있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기력한 이미지를 주는 '중도'를 내세워도 안 된다고 하겠다.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선 '변화와 개혁'을 내세우고 구체적인 대안을 내어 놓아야 한다. 수권정당이 되기 위해선 경제 문제, 외교와 국방 등에서 당당한 이력을 가진 인물을 기용해야 한다. 근거없는 색깔론은 병적 현상이지만 불필요하게 그런 시비를 야기할 소지를 없애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2.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안
2012년 4.11 총선을 통해서 나름대로 얻은 경험을 토대로 지난 번 혁신위원회가 마련한 안에 대해 의견을 피력해 보고자 한다. 제 의견은 정당과 선거에 관한 개혁에 관한 것으로 어느 정당이든 참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특히 새정치연합의 혁신안이 4.11 총선 때 새누리당이 실시했던 현역 의원 평가와 컷 오프를 담고 있어서 제가 실제로 겪었던 경험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흔히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고 한다. 또한 정치는 '이상 반, 현실 반'이라고 한다. 하지만 혁신위 최종 혁신안은 이 같은 정치 현실에서 적용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의사결정 과정을 복잡하게 만들었고, 많은 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관료화를 초래하고 있다. 정당은 정치를 하는 기구이며, 정치인은 관료가 아니다. 정치는 룰을 존중해야 하지만 때로는 룰을 벗어나서 타협할 줄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정당은 자율성에 기초해서 기능하는 결사체이기 때문에 그 과정을 지나치게 틀에 맞추려 하면 원만하게 기능하지 않을 수가 있다. 말하자면, 침대는 과학일 수 있지만, 정치는 과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정치는 오히려 예술에 가깝다고 보아야 한다. 하나의 답이 있는 것이 아니며, 결과적으로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1) 당 대표와 대표위원회
우리나라 정당은 당 총재 또는 당 대표가 이끌었던 권위주의적 리더십에서 민주적 리더십으로 급속하게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제왕적 총재가 정당을 이끌었지만 지금은 여당 야당 모두가 최고위원회라는 기구를 통해서 이끌어 가고 있는 데, 혁신안은 이런 구조에 매우 과격한 변화를 가져 왔다.
혁신안에 의하면, 최고위원회 대신에 대표위원회를 두며 대표위원회는 당 대표, 원내대표, 권역 대표 5인, 부문 대표 5인으로 구성하도록 했다. 이러한 구조는 매우 파격적이다. 하지만 이런 대표위원회라면 결국 당 대표와 원내대표가 이끌어 가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정당은 의원들이 움직이는 게 원칙인데, 최고 의사결정기구가 이렇게 구성되면 위원회 자체의 권위와 무게감이 상실돼버릴 것이며 중요한 의사 결정은 비공식 채널을 통해 합의를 보게 될 것이다. 의원이 아닌 당원도 당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기회를 확장시키기 위한 의도인지 모르겠으나 현실감이 떨어지는 발상이다.
새정치연합의 현행 최고위원회도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별도로 선출하기 때문에 최고위원들의 대표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 반면에 새누리당은 대표 선거에서 2위에서 5위까지 한 사람을 선출직 최고위원으로 두고 있어서 요새 같이 어색한 장면을 초래하기도 하지만 최고위원회가 당내 세력 분포를 반영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현재의 새정치연합 최고위원도 비중감이 떨어져서 출입기자들은 당 중진이라고 부르는 다선 의원들을 보다 중요한 플레이어로 보는데, 혁신안에 의한 대표위원회가 생기면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해 질 것이다. 정당의 최고 의결기구라면 무게감이 있어야 하고 참여자들이 정치적 판단력과 전략적 식견을 갖추어야 하는데, 부분별 및 지역별로 선출된 대표들에게 그런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생각된다.
혁신안은 당 대표를 선출함에 있어서 당원 비당원 구분이 없이 전원 선거인단으로 구성하도록 하고 있는데, 전당대회 때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하는 투표도 하지 못하는 당원이라면 과연 당원을 할 필요가 있는지 모를 일이다. 당원이 정당의 주인임을 느끼는 경우는 전당대회에서 한 표를 행사할 때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새누리당처럼 당원 대의원 50%, 선거인단 여론조사 50%로 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 이렇게 해도 여론조사 응답하는 응답자의 가치가 투표장에 직접 가는 당원 보다 가치가 높다는 문제가 있다.
과거에 새누리당 쇄신파 의원들(남경필, 김세연 등)은 전당대회를 통해서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고비용이고 파벌을 조장할 우려가 있으며, 그렇게 당 대표와 최고위원이 되어도 선거에서 한번 패배하면 그대로 물러나는 등 임기를 제대로 채우기 어렵기 때문에 미국처럼 당 대표와 최고위원회를 없애고 원내정당화를 하자는 제안을 한 적이 있었다. 이렇게 되면 중앙당은 당원 확충과 당원과의 소통, 정책 개발과 대국민 홍보 같은 일을 주로 맡게 된다. 말하자면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처럼 중앙당을 전국위원회처럼 만들자는 것이다. 우리가 미국처럼 오픈 프라이머리로 후보를 선출하게 되면 당 지도부가 공천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구태여 거창한 당 대표와 최고위원회를 둘 필요가 없다.
(2) 당원
정당의 기간은 당원이다. 정당은 기본적으로 당원들이 구성한 결사체이다. 그러나 정당은 유권자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우리나라 정당은 재정과 인력 등 많은 부분에서 취약하다. 당원이 되지 못하는 국민들이 많다는 것도 문제이며, 당원이 되기를 기피하는 경향이 강하다. 각 정당에 자문을 하고 드나드는 교수 중에도 당적을 갖고 있는 경우는 드문 것이 현실이다. 공무원, 교사 등 법에 의해 당원이 될 수 없는 직업군이 많고, 정당에 가입을 했다고 하면 직장에서 이상한 눈초리로 보는 현상마저 있다.
현실적으로 당원은 지역구 의원, 지역위원장이나 당협위원장이 확충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당원이라고 하면 상향식 공천에 있어서 세력화하는 수단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 실제로 현역의원이나 위원장이 바뀌면 당원이 대거 바뀌기도 한다. 한국의 정당은 이 같은 '당원 문제'를 안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선거를 치르기 위해선 당원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선거는 조직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당원을 많이 확충하는 의원이 유능한 의원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혁신안은 당원의 역할을 대폭 축소했다. 당 대표와 대표위원을 선출하는데도 대의원 권리당원 70%, 일반국민 30%라는 비율을 없애고 이 같은 비율을 고려하지 않은 채로 구성된 선거인단이 선출하도록 했다. 이렇게 되면 당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대표위원회는 누구를 대표하는지가 모호해 진다.
공천에 관해서도 혁신안은 당원의 역할을 축소했다. 국회의원 후보 등 공천에 있어서는 권리당원 30%, 일반유권자 30%로 구성하는 국민참여경선을 거치도록 하고, 여야 합의가 되면 안심번호에 의한 국민공천단 공천제도에 의하도록 했다. 국민공천단이 공천을 하게 되면 당원은 후보 추천권을 상실하게 된다. 미국의 오픈프라이머리는 일반 유권자가 경선투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지만 프라이머리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집단이 당원임을 고려한다면 후보자 공천에 있어서 이처럼 당원을 배제하는 제도가 정당의 본질에 부합하는지는 의문이다.
당 대표 선출의 경우와 달리 당원 30%, 일반국민 70%로 되어 있는 국민참여경선의 경우에도 당원의 역할이 너무 작다는 생각이다.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슬로건은 "국민이 공천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의미로 해석해야지, 당원은 후보 공천에 있어 아무런 역할이 없다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곤란하다.
그러면서도 혁신안은 당원소환제를 도입했다. 당원은 선출직 당직자의 소환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당 대표 같은 선출직 당직자의 선출에는 큰 역할을 하지 못하는 당원들이 당직자 소환은 할 수 있게 되는 일종의 모순이 발생한다.
(3) 선출직 공직자 평가제도
혁신안은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를 설치하고 이 위원회가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를 평가해서 일정 비율을 공천에서 배제하도록 했다. 내년 총선에서는 그 비율을 20%로 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역의원 컷 오프는 2012년 4.11 총선 때 새누리당에서 처음으로 사용했던 기법인데, 새정치연합의 혁신안은 임기 중간평가와 임기말 최종평가로 두 번에 거쳐 하고 중간평가는 직무평가, 다면평가 등 근무평정 방식을 택하였고 최종평가는 공약이행평가와 지지도평가로 하도록 했다. 2016년 총선에 대비해선 어떻게 할지는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은 임기가 정해져 있고 유권자가 선거로 선출한 대표이기 때문에 정당 외부 인사로 구성된 평가위원회가 의원들을 지수로 평가해서 공천에서 배제하는 발상은 이론적으로 좋지 않다. 회사 직원처럼 업적을 정량 분석하는 것은 더욱이 그러하다. 다만 여론조사는 어차피 당이 선거에 대비해서 해 보는 것이기에 그것을 참조하는 것은 가능하고 바람직하다. 그러나 여론조사는 어디까지나 참조하는 데 그치는 것이 원칙이다. 최종평가에서 공약이행을 평가기준으로 삼은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야당 의원이 공약을 이행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모든 경우에 공약이 타당한지도 의문이다. 국가재정을 어렵게 한 국제대회, 지방공항 등도 모두 공약 사항이었다.
2012년 4.11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이 시행했던 방식에서 교훈을 얻을 수가 있다. 당시 이 제도는 비상대책위원회 정치쇄신분과에서 마련했는데, 여기에 참여했던 교수들은 의원들의 국회 본회의 출석률, 법안발의 건수와 입법화 건수, 당직 수행 등을 점수화하고 여기에 여론조사를 병행하는 방안을 선호했다. 분과에 참여했던 의원들은 우세지구(대구 경남북, 서울 강남 3구와 분당) 3선 금지, 비례대표 의원 우세지구 공천 금지를 주장했다. 여러 가지를 고려하고 의견을 참작한 결과 비례대표 의원의 우세지구 공천 금지와 지역구 현역의원 평가를 시행하기로 했다. 현역의원 평가에 있어서 국회 본회의 출석률 등은 의미가 없다고 보고 단지 여론조사로 하위 25%를 탈락시키기로 했다.
여론조사는 후보 지지도와 정당 지지도를 조사해서 차이가 큰 순서로 25%를 탈락시키는 방식과 단순히 후보 지지도를 물어서 하위 25%를 탈락시키는 방식이 있는데 비상대책위원회는 후자로 택하기로 했다. 전자방식으로 하면 새누리당 지지도가 높은 대구 경북에서 탈락자가 많이 나오고, 후자 방식으로 하면 새누리당 지지도가 낮은 수도권에서 탈락하는 의원이 많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당헌당규상으로 비상대책위원회가 채택하면 이 제도를 실시할 수 있지만 의원들의 신분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별도로 의원총회를 열어서 인준을 받기로 했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의원총회가 열렸고, 무려 5시간에 걸친 난상토론 끝에 의원들이 이를 받아들이기로 해서 시행을 하게 됐다. 의원들이 총의로서 수용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하지만 총선까지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여론조사는 단 한번만 했고 비용문제로 신뢰성 있는 기관에 맡기지 못해서 커트라인 주변에서 탈락된 의원들이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여론조사를 2회에 거쳐 했다면 50억 원 이상이 소요됐을 것이다. 결과를 열어보니 뜻밖에도 부산에서 탈락자가 많이 나왔다. 대표적인 경우가 김무성 의원이었다. 아마도 당시 근거 없이 떠돌았던 부산 저축은행 부도 사태에 부산지역 의원들이 연루돼 있다는 소문이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본다. 반면에 서울 지역에선 (탈락을 기대했던) 친이계 의원들이 대부분 컷 오프를 통과했고, 공천관리위원회는 전략공천지역으로 지정하는 방법으로 이들 중 상당수를 탈락시켜 버렸다.
현역의원이 배제된 곳에 여론조사 평가 대상이 아닌 비례대표 의원이 공천을 받기도 했으니 그것은 취지에 어긋난 일이었다. 컷 오프에 걸려서 현역의원이 나가지 못한 지역구에 뒤늦게 공천된 신인이 선거법을 잘 몰라서 당선 무효에 해당하는 유죄 판결을 받은 곳도 있었다. 커트 라인 주변에 모여 있는 의원들에게는 결과적으로 '팔자 소관'이 되고 말았다. 의원에 대한 여론조사 평가는 참조사항에 머물러야 하며 이것이 강제적 기준이 되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돌이켜 보면 '25% 컷 오프'가 쇄신공천의 상징이 되어서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이렇게 탈락한 의원들은 씻을 수 없는 치욕감을 맛보았다. 최하위로 판정된 상당수 의원들은 존재감 자체가 부족했던 의원들이었지만 그런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오차범위 내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당사자들이 차라리 전략공천으로 탈락했다면 계파 때문이라고 핑계나 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얼마나 더 좋은 의원들이 국회에 들어갔는지는 상상에 맡기고자 한다.
새정치연합이 이 제도를 시행한다면 지역에 따라 편차가 크기 때문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상할 수 없다고 본다. 전국적 지명도가 있는 의원들을 제외하고는 무슨 결과가 나올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지역구가 없는 비례대표 의원은 여론조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컷 오프 여론조사를 거치지 않은 비례의원이 지역구에 출마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누구는 예비고사를 보고 본고사를 보는데, 누구는 예비고사 없이 본고사를 직접 보는 격이기 때문이다.
(4) 전략공천, 비례대표 공천
전략공천과 비례대표 공천에 관한 혁신위 안은 지나치게 기계적 중립성과 투명성을 강조하고 있다. 전략공천과 비례대표 공천은 당 지도부와 선대본부의 정책적 판단을 반영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선거에서 절차적 중립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물이란 결과물이다. 유권자는 결과를 보지 거기에 이른 내부 절차를 보지는 않는다.
전략공천위원회의 논의와 결정과정 같은 '비밀'을 보장하기 위해서 누설자를 형사고발하도록 되어 있는데, 검찰이 이 같은 정당의 은밀한 내부 문제를 고소 사건으로 들여다본다면 그 정당은 전체가 망가지게 된다. 공천심사 같은 과정에 외부인이 간여하게 되면 비밀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5) 여성 청년 가산점, 신인 가산점 등
공천심사에 있어서 여성 청년 신인에게 가산점을 주는 장치도 역시 너무나 경직적이고 기계적인 기준을 적용하고 있어 정작 시행해 보면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가산점 제도로 인해 본선에 패배할 후보가 공천될 가능성이 커진다. 본선에서 이길 수 있는 후보가 가장 좋은 후보이며, 선거에선 어떠한 명분 보다 승리라는 결과가 중요하다. 정치신인의 기준은 너무나 모호하기 때문에 적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본다. 여성 청년 신인이란 범주로 중복 가산점이 가능한지는 불확실하지만 이렇게 되면 경선 상대방이 누구이든 이길 수 있게 된다. 가산점에 힘입어 우세지구에서 공천이 되어 국회의원이 되면 과연 제대로 국회의원 노릇을 잘 하는지는 의문이다. 성추문을 일으킨 심아무개 의원은 이공계 가산점으로 경선에서 승리해서 국회에 진입했다.
3. 맺는 말
선거에선 변화를 추구하는 역동감이 있는 정당이 유리하고 또한 눈에 띄는 새 인물을 많이 기용하는 정당이 승리한다. 강제적 인물교체는 과거 같은 제왕적 당 총재가 있을 때나 가능했다. 하지만 유권자는 항상 변화를 요구한다.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키기 위해선 물러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자발적으로 그리고 아름답게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것이 잘 안 되기 때문에 컷 오프와 전략공천을 동원하는 것인데, 물러날 때가 된 사람들이 스스로 물러나야만 국민에게 감동을 주고 당내에서 새로운 리더십이 물 흐르듯이 생겨난다고 본다.
2012년 4.11 총선 때 컷 오프에서 탈락한 김무성 대표는 백의종군을 선언해서 새누리당에 힘을 실어 주었고, 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한 한광옥 한화갑 전 의원은 정통민주당을 창당해서 수도권에서 새누리당에 최소한 4석을 어부지리로 제공했다. 쇄신 못지않게 통합이 중요함을 보여주는 사례이며, 바로 이런 이유에서 정당은 리더십이 제도적 장치보다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 제도 보다 리더십이 중요함은 정당 뿐 아니라 CEO가 이끄는 기업이나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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