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나는 왼손잡이이다
2010-08-18 03:58 1,890 소년elf

나는 왼손잡이이다 (소년elf)

나는 왼손잡이이다.
채 10살도 되기전, 당시 국민학교라는 교육기관에서 숱한 폭력과 모욕적인 언사를 감내하며
겨우 필기만 오른손으로 바꾼 순도 99%짜리 왼손잡이이다. 10살도 되지 않은아이는 등교할때마다 왼손을 묶어놓고 펜글씨를 썼다.

오른손잡이들은 너무 어릴때의 일이라 주위에 그런 친구가 있었다는걸 기억조차 못하는 일이 대부분이겠지만
이세상의 왼손잡이들은 그런 폭력을 감내하기에는 너무 어린나이에 엄청난 육체적/정신적 폭력에 노출되어 지내왔다.
왼손잡이로 살다보면 별별사람을 다 만난다. 물론 많은수는 이해하지만 가끔가다 나랑 상관도 없는 사람에게 듣는
"짝배기".."악마의 자식"같은 소리는 정말 들어도 들어도 적응이 안된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끼리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도 왼손잡이는 왼손잡이를 보면 그렇게 반가울수가 없다. 오른손 잡이들은 전혀 모르는 그 아픔을 겪어왔음을 알수 있는 그 왼손잡이들...

왼손으로 밥먹다가 왼편의 사람과 팔이 부딪히는 일이 부지기수라 항상 테이블 왼쪽에 앉으려한다. 근데 그나마도 그자리에 높은사람이 앉아있으면 어쩔수 없다. 대충 앉아서 팔꿈치를 몸에 딱붙이고 무슨 장애인마냥 밥을 먹어야 한다.

군복무시절 K-2소총을 왼손으로 쏘았다. 다행히 K-2는 탄피가 전방으로 튀기 때문에 얼굴에 맞을걱정을 그다지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팔에 맞을까봐 신경쓰여서 팔꿈치를 바짝 조아놓고 쏘았다. 덕택에 명중률은 꽤 좋았다. 연대장이 왼손으로 총 쏜다고 신기해하던건 뭐 그러려니 하고 신경쓰지 않을수 있었다. 그런데 방독면 사격때는 정말 고역이었다. 필터에 걸려서 당최 총을 쏠수가 있어야지. 부대에 단 1개 밖에 없는 왼손잡이용 방독면은 왼손잡이 두달 고참이 쓰고 있어서...다행히 일병때 대대 군수과에서 왼손잡이용 방독면을 좀 대량으로 신청해서 상병때부터는 제대로 사격할수가 있었다. 뭐 그럴일은 없었지만. 만약 그때 전쟁이 나서 방독면을 써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도 가위질은 영 서툴다. 오른손은 영 '삐꾸'라서 섬세한 작업이 불가능할뿐더러. 그나마 왼손으로 오른손잡이용 가위를 능숙하게(?) 다루는 법은 터득했지만 그래봤자 오른손잡이용은 오른손잡이용이다.
 
 내가 왼손을 쓰는것을 별로 반대하지는 않는 어머님이지만 지금도 칼질할때는 영 어색해보이고 불안해 보이신단다. 하지만 난 오른손잡이용 칼을 쓰는법도 배웠다. 칼날을 넣는 각도가 다르고. 과일깎을때는 남들이 당겨깎을때 나는 밀어깎는다.

내가 검도를 배우려 했다가 관둔 가장 큰 이유는 검도자세는 전통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멍청한 소리를 하면서 왼손잡이용 자세를 잡는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왼손에 힘이 더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왼손잡이가 유리하다는 어처구니가 없는 궤변과 함께 말이다. 물론 근력이 중요할지도 모르나. 실제로 미세콘트롤은 하는것은 오른손이다. 왼손잡이가 왼손잡이인 이유는 힘이 좋은것보다. 왼손만이 미세하고 섬세한 작업을 할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에서 메이지유신이후 패도령이 걸리기전에는 왼손잡이 검객이 있었다. 그들이 칼을 반대로 잡았던 이유는 단순하다. 그게 편하기도 하거니와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무거운 진검을 들고 있을때는 섬세한 컨트롤이 없으면 제대로 베어내거나 찌르지 못했으리라. 스포츠화 되면서 희한하게도 더더욱 왼손잡이를 차별하고 있는것이 검도다. 현대검도에서 왼손잡이가 유리하다는것은 다만 이제는 베는것이 아니라 막대기로 때리는 스포츠로 변했기 때문일뿐...

30년 가까운 세월을 살아오면서 내가 왼손이어서 좋았던적은 지금도 취미로 하고 있는 야구할때빼고는 그다지 없었던것 같다.

물론 소소한 불편함을 가지고 짜증스러웠던적은 별로 없다.
나이가 들면서 왼손잡이를 신기해 하는 시선에도 익숙해졌다. 하지만 지금도 왼손잡이를 잘못된것 취급하는 시선이나 말들을 들을때면 정말 스트레스가 잔뜩 몰려온다.

왼손잡이는 평균수명이 오른손잡이에 비해 9년정도 짧다. 아. 뭔가 유전자가 열악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절대 아니다. 왼손잡이는 태어날때부터 필연적으로 훨씬 많은 폭력과 스트레스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알콜과 니코틴에 대한 의존성이 높아지고, 성격이 신경질적이고 예민해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왜냐하면 유전적인것이 아니라 폭력과 스트레스 때문에. 왼손중에 돌아이가 많은이유는 다른게 아니다. 단지 세상의 다수인 오른손잡이들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왼손잡이를 억압하기 때문이다.

 모든 왼손잡이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다수의 왼손잡이는 천성적으로 좌파나 소수파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왼손잡이는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이다. 성공한 왼손잡이가 그렇게 많은데 무슨 헛소리냐라고 한다면. 그것은 완벽한 환상이다. 왼손잡이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평균수명을 10년식 깎아먹으면서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고 밥을 먹거나. 아니면 또한 같은 스트레스로 10년을 깎아먹고 내 하고 싶은대로 하는것뿐이다.그나마도 오른손을 쓰면 악필이되고 뭘 먹다가 잘 흘린다. 상대적으로..

 왼손잡이는 이유도 모른채 사회 통념에 의해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를 각종 폭력과 억압속에 지내온다. 자괴감에 빠지거나 아니면. "내가 왜?"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겠지. 천성적으로 사회의 보수적인 통념에 반대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왼손잡이에 대한 배려가 없는 이나라에서는...오른손잡이들이 별 의미 없이 내뱉는 말들은 종종 날 분노하게 만든다. 뭐가 절대적인지 항구적이었는지. 과거부터 이어온 그것이 과연 옳은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자연스레 피어오르게 되는것이다.

 그리고 가장 먼저 마주치는 가치. "오른손이 편하고 좋은것이다."를 깨어버리면서 과연 항구적인 가치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고찰이 시작되는것이다. 물론 그것이 꼭 좌파가 되는것은 아니겠지만. 아마 확률적으로는 높을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솔직히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보수적인 가치따위는 약자를 위한것은 절대로 아니라고. 실제로 정치적으로 보수인것과는 조금 별개로, 일상생활에서 "나는 보수적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을 솔직히 말하면 조금은 경멸한다. 왜냐하면 나의 유년시절 청소년 시절은 "나는 보수적이야"라고 말하는 무지한 사람들의 편견에 의해 상당부분이 무참이 찢어발겨지고 상처입었으므로... 나의 잘못도 아닌 나의 타고난 조금 다른 특징때문에 말이다.
 
 물론 나이 서른을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지금와서 왼손으로 밥을 먹는다고해서 바꾸라는등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소릴 해봤자 씨알도 안먹힐 것은 그사람도 알고 있을테니.. 다만 "아 왼손잡이네... 집에서 뭐라고 안했나봐요?.." 그러면 난 대답을 한다. "아 예..어찌어찌해서 글씨는 고쳤지만. 밥먹는건 왼손이 편해서 왼손으로 한다고... 오른손으로 젓가락질하면 자꾸 흘려대서..." 하지만 그리고 그들은 말한다. "그래도 글씨는 오른손으로 쓰는게 편하죠."

 나도 이 명제에 빠져서 착각하고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단언컨데 이것또한 명백한 "환상" 이다. 난 20년이상 오른손으로 글씨를 써왔다. 하지만 지금역시 왼손으로 글씨를 쓰면 훨씬 글자가 예쁘고 바르다. 숙련에 의한 필기속도때문에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고 있지만 20년간 왼손으로 글씨를 썼다면 적어도 지금처럼 지렁이 기어가는 글씨를 쓰고 있지는 않았겠지...

 물론 이것을 정치적 보수와 연관짓는것이 성급하고 그릇된 결정일수 있다. 하지만 난 나의 가치관이 정립되던 나의 어린시절 스스로를 "보수적"이라 칭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내가 왼손을 쓴다는 이유로 나에게 적의를 드러내었다. 물론 지금은 그것과 이것이 다르다는 것은 안다.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사람이라고 전부 왼손잡이를 배척하지는 않는다는것을 더더욱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보수적'인사람들에 대해 호의를 가지는 일은 없을것 같다. 내가 적의를 품기 이전에... 아니 적의를 품는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질풍노도의 시기가 채 다가오기도 전에 매우 어린나를 적 또는 갱생시켜야 할 녀석으로 규정하고 언어적, 물리적 폭력을 가하고 억압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상돈 교수님을 싫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보수라는 가치관은 내가 보고 느낀 가치관과는 상관없이 이전의 가치관을 강제로 주입시키려 드는 나에게 명백한 적의를 품고 있는 이데올로기이다. 물론 생각해보고 옳은것은 받아들인다. 하지만 나에게는 역시 보수라는 가치관을 받아들이기에는 지나치게 논리적으로 빈약한 경우가 대부분인것이 사실이다.

 보수라는 가치는 분명히 필요한것이라고 생각한다. 사고와 가치간의 다양성은 분명히 사회발전에 도움이 되지만. 지나친 다양성은 조직의 붕괴를 가지고 올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 다양성을 하나로 묶을수 있는 가치가 전 시대를 통틀어서 항상 옳은것인가에 대해서는 좀더 생각을 해보아야 할 사안인것 같다.

 나는 왼손잡이이고, 좌파라고 흔히 불리우는 진보성향이다. 예전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분명히 말할수 있다. 나는 왼손잡이이기 때문에 진보가 되었다고. 그리고 그것은 보수가 나에게 이유없는 린치를 가했기 때문이라고...

(c) 소년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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