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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치권, 특히 여권 수뇌부를 중심으로 잊어버릴 때쯤 되면 튀어 나왔다가 정치권과 여론의 눈치를 보고 들어갔다가 또 잊어버릴 때쯤 되면 다시 얼굴을 내미는 것이 개헌논의이다.
헌법이란 한 나라의 통치조직과 그 작용, 법적 기본질서를 총칭하는 가장 기본적 규범이자 최고의 규범이이며 수권법(授權法)이다. 따라서 다른 모든 법의 존립과 내용, 효력의 보장 등은 헌법에 그 근거를 두고 있고 헌법은 일반 법률에 의해서는 폐기 또는 변경될 수 없고 어떠한 법 규정이나 국가 행위도 헌법을 위반할 수 없으며, 모든 국가 권력(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를 망라한) 구속된다. 때문에 헌법은 개정 절차도 일반 법률과는 달리 개정절차가 까다롭고 최종적으로는 주권자인 국민투표로 결정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 헌법을 지금 일부 정치권 인사들이 개정을 하자고 논의를 하는 모양이다.
헌법을 포함한 모든 법규범은 당위의 법칙으로 사회규범이다. 즉, 법이란 국가 내에서 질서를 유지하고 정의를 실현함을 직접 목적으로 사회를 규율하는 규범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회를 둘러싼 환경이 변하면 당연히 그를 규율하는 법도 변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다고 해서 환경 변화에 따른 잦은 법규범의 개정은 구체적 타당성은 확보할지는 모르지만 오히려 법적 안정성을 헤칠 우려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법이나 과학기술과 관련된 법처럼 사회 환경변화에 신속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는 부분은 그 시급성에 맞추어 개정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어야 하지만 헌법처럼 국가 질서 전반에 걸친 총체적 규범은 가급적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신중하고 다양한 논의를 걸치는 것이 이치에 맞다고 본다.
우리나라 헌법 개정사를 살펴보면 1948년 7월 17일 제정된 이래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 개정된 현행 헌법을 포함해서 총 9회의 개정이 있었다. 그 중 4회(1, 2, 6, 7)는 정권 연장을 위한 개헌이었고 나머지 5회(3, 4, 5, 8, 9)는 정치적 변혁에 다른 개정이었다. 물론 각각의 개정 때마다 기본권의 확장, 경제 질서의 변화 등이 포함되어 있어 지금까지의 헌법개정을 정권연장목적이냐 정치적 변혁이냐로 지나치게 단순화 했다고 볼 수는 있지만 헌법개정의 주 목적이 기본권의 확장, 경제 질서의 변화 등이 아니었으므로 이해를 돕기 위해서 편의상 단순화 했다. 좌우튼 헌법제정 후 62년 동안 총 9회의 개정이 있었다는 것은 산술적으로 본다면 각각의 헌법 생명이 7년에 불과하다는 결과이다.
그러나 1987년 6월 항쟁을 통하여 국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강렬한 욕구에 따라 개정된 현행 헌법은 무려 23년이라는 초 장수를 누리고 있다. 한나라당이 1997년 11월에 창당을 했으니 한나라당보다 10살이 많은 실정이다. 그리고 정작 주권자인 대부분의 국민들은 현행 헌법이 대한민국의 기본조직이나 질서를 규율하는데 불편을 느끼지 않고 있다. 정작 주권자들은 가만히 있는데 정치권에서 그것도 집권 여당의 주요 핵심인사들이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는 관심이 없고 권력의 지배구조만 바꾸려는 개헌논의에 불을 붙이려는 의도를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다. 물론 한라라당 역사 보다 10년이나 더 긴 23년이란 긴 세월을 이어온 9차 개정 헌법이 시대 상황과 맞지 않으니 개정하자는 반박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1787년에 제정되어 본질적인 내용의 변화 없이 기본권 확장에 중점을 두고 27차례 증보(Amendment, 학자들에 따라서는 ‘수정헌법’이라고 하는데 사실 미국 헌법 개정은 기존 내용을 바꾸는 것이 아닌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는 것이어서 ‘증보’라고 표현했음))를 거듭하며 지금까지 220년의 생명을 유지해온 미국 헌법을 한번 보라고 말하고 싶다. 따라서 현행 헌법은 민중항쟁의 결과이고 그 찬란한 역사적 상징성과 의미를 오래 간직하기 위해서라도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적 저의를 가진 개정논의는 그만 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첨언하자면 우리와 체제를 달리하고 강력한 권력을 가졌던 러시아의 푸틴을 본받으라고 권하고 싶다. 푸틴은 러시아 헌법에 3연임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 규정을 존중하여 지난 대선에 출마하지 않고 현 메드베데프 대통령에게 권좌를 물려줬다. 물론 섭정이나 다름없는 상왕노릇을 하고는 있지만 최소한 헌법이 가지고 있는 형식은 존중한 것이다. 만일 지금 개헌 논의에 불을 붙이려는 여권일각의 인사들이 푸틴과 같은 입장에 있었다면 개헌을 해서라도 재집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을 해 본다.
교각살우(矯角殺牛)라고 소뿔을 고치려고 소를 잡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정치적인 노림수를 가진 개헌논의는 그만 두는 것이 역사의 순리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