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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2월 1일 신년 방송 좌담회에서 자신이 대통령 후보시절 공약한 충청권 국제 과학 비즈니스 벨트 입지 선정을 백지 상태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충청권 정치인들과 주민들은 대통령의 대국민 신뢰확보를 위해 대선공약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배신감 울분을 토로하고 있고 반면 타 지역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유치 추진위원회를 가동하고 활발한 대내외 활동에 들어갔다.
국제과학 비즈니스 벨트는 2015년까지 총 사업비 3조 5천억을 투자하여 세계적인 기초과학 연구단지와 비즈니스가 결합된 복합 국가성장 네트워크가 되고 2029년까지 213조의 생산유발효과와 136만개의 일자리 창출이 기대되는 거대 국책사업이다.
이번 대통령의 약속 뒤집기는 세계적인 연구단지와 거대기업이 연계되어 국제적으로 경쟁력을 갖춘 비즈니스 벨트를 만들겠다는 당초 취지와는 달리 국내에서 지방 자치단체들끼리 서로 밀고 당기는 이전투구의 양상을 불러 일으켜 오히려 분란을 야기하게 만들었을 뿐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흔히들 명분도 없고 실리도 없는 싸움을 개싸움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다른 동물들은 먹이다툼이나 영역확보 또는 짝짓기에서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서 싸움을 하는 반면 개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싸움을 하기 때문이다. 이번 유치전이 마치 개싸움과 비슷한 양상을 띠어 국론을 분열시키고 상호 불신을 조장하여 국제 경쟁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지 않을까 심히 염려된다.
선거 공약이란 ‘구성원들의 지지에 기초한 선출직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정당이나 입후보자가 유권자들에게 제시하는 공적인 약속, 즉 일반적으로 당선 후에 실천하겠다는 시책에 관한 것’이다. 유권자들은 선출직 공무원이 내세운 공약, 즉 장래의 희망과 비젼을 보고 특정 후보자를 선택하고 선택된 후에도 세금이라는 막대한 투자금까지 지원해서 국가를 잘 경영하고 결국 나라가 부강해지고 그 결과 구성원들의 삶도 윤택해 지길 바라면서 지지를 보내는 것이다. 그 저변에는 당초 후보자가 내세운 공약을 이행하라는 묵시적 의무부과와 이행 할 것이라는 신뢰가 깔려 있는 것이다. 그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때 국민들은 지지를 철회하고 분노하는 법이다. 물론 선출직 공무원이 장래 약속한 시책을 100% 이행할 수도 없고 100% 이행하리라고 믿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정으로 인해서 공약 이행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거나 이행 했을 경우 국가 전체적으로 명백히 손해가 발생 할 경우 등을 제외하고는 약속을 실천하는 것이 선거라는 과정을 통하여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국가를 경영하는 대통령의 책무일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특별히 공약을 이행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새해 벽두에 공약을 철회해서 그렇지 않아도 세종시 문제로 뿔난 충청도 지역 민심에 기름을 쏟아 붓는 회견을 하고 말았다. 한 술 더 떠서 공약철회 이유도 기상천외한 사유였다. 대통령 선거 당시에 충청도 표를 의식해서 말했을 뿐 공약집에도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공약이 아니라는 궤변에 가까운 설명이었다. 그리고는 과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입지 선정을 잘해 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정부 공무원들이 미주알 고주알 이래라 저래라 결정하고 심지어는 걸어 다니는 방향까지 정부에서 지정해 주는 것이 우리나라 현실이었는데 언제부터 우리 정부가 해당 전문가들한테 큰 결정권한을 부여했단 말인가? 과학 비즈니스 벨트기 때문에 과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입지 선정을 해달라고 한다면 지금 가축 살처분에 대해서 말이 많은데 구제역 방역대책은 축산 농가들한테 결정권을 줬어야지 300만 마리 가까운 가축을 죽이는 결정은 왜 일방적으로 정부에서 했단 말인가? 지금 영남 5개 지방자치 단체들은 영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 때문에 그야 말로 혈투를 벌이고 있다. 그럼 신공항 위치 선정은 조종사들한테 맡겨야 한단 말인가? 고속도로 건설은 운전기사들한테 철도부설은 기관사들한테 노선 결정권을 줄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선거 공약집에 없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자면 공약이 아니다 하는 것은 문서화 된 내용이 아니라는 이야기 인데 어불성설도 이 정도면 기네스북에 오를 감이다. 정치인들의 말 바꾸기가 얼마나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심지어는 그것이 화근이 되어 차기 선거에서 낙선하는 경우를 우리는 수도 없이 봐왔다. 그만큼 말에 대한 신뢰가 중요한 것이다. 사실 우리정치 현실에서 선거 시 공약집 차근차근 다 읽어 보는 사람들 보다는 선거 유세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주요한 내용(후보자의 말)을 듣고 투표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인 점을 감안한다면 말이든 글이든 상관없이 약속은 약속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이명박 대통령의 좌담회 내용은 그 공약 실천 여부를 떠나서 국민들로 하여금 다시 한번 정치 전반에 대한 불신의 깊이를 더해주는 촉매제가 됐다는 점에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명박 대통령 논리대로라면 앞으로 대통령이 현지 시찰시 지시한 내용은 문서화 되지 않은 이상 아무도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자승자박의 결과를 가져 올 뿐이다. 국민들은 미생지신의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 아니다. 지킬 수 있는 약속을 지켜 주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