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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이 10.26 사태가 있은지 35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시점이라 다소 늦은감이 있으나,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한번 좀 해보고 싶어져서 글을 쓰게 되었다.
10.26 사태는 무엇보다 18년간 장기집권을 하며 경제발전과 독재라는 뚜렷한 명암을 남긴 박정희 대통령 시대를 마감하는 사건이 되었다는 점에서 사건 당시에 거의 대다수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무엇보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논란과 그 시절 추억과 향수의 여운은 아직까지도 진행되고 있는지라, 해마다 10.26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심정은 적어도 그 시절을 비록 어린시절이었을지언정 어렴풋이 기억하는 세대 그 이상의 윗세대들에겐 착잡한 감회가 이는 날이 아닐수가 없을것이다.
10.26 사태는 그 사건와 관련된 몇가지 말이 이후 유행처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만들기도 했는데, 그 대표적인것이 김재규가 차지철을 쏘면서 했다는 ‘이 버러지같은 X’이란 말과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한 직후 김계원 비서실장에게 했다는 ‘나는 한다면 합니다’라는 말이다. 허나 ‘나는 한다면 합니다’란 말을 김재규는 나중에 법정에서 ‘그런말은 내가 평상시 쓰지 않는 표현’이라며 부인하기도 했고, 시간이 좀 더 흐른뒤 궁정동 현장의 여인이었던 가수 심수봉씨는 ‘버러지같은...’이란 말을 들은바 없고 김재규가 차지철을 향해 ‘건방져 !’라고 했다고 하기도 해, 10.26 당시 현장에서의 일은 현장에 있던 당사자들 사이에서도 미세한 증언의 차이가 나기도 한다.
10.26 현장에 있었던 말(!)중 또 하나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이지 않을수 없는것은 역시 박정희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김재규의 총을 맞은 직후 궁정동 현장에서 술시중을 한 두 여인(심수봉,신재순)이 대통령을 부축하며 ‘각하 괜찮습니까 ?’라고 묻자 ‘난 괜찮아...’라고 했다는 말. ‘난 괜찮아...’ 그것은 결과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 마지막으로 남긴말이 되었다. 난 괜찮아.....
종종 박정희 독재외 김일성 독재를 비교하며 ‘박정회와 김일성이 대체 다를게 뭐냐 ?’는 식으로 말하는 이도 있지만, 그런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것은 아니고 다만 그렇다면 김일성은 어떻게 죽어갔을지 그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잠시 그런 의문을 가져보았다.
탈북자들이 워낙 많아져 어느덧 국내에 입국한 탈북자가 2만7천여명에 이른다고 하고, 또 근래에는 종편에 탈북여성들이 단골로 출연 토크쇼를 벌이는 프로도 있고 또 종편의 시사토크쇼등에 고정 출연하는 몇몇 탈북자들이 북한실상과 현 남북관계 정세분석과 관련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하지만 탈북자들이 워낙 많아지다보니 이들중엔 자신이 겪었던 일이나 북한에서의 경력을 다소 과장하는 경우도 있고, 남한사회가 정치적,종교적 목적으로 일부 탈북자들의 증언에 거품을 넣는 경우도 더러 볼수있다. 따라서 이젠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무조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것보다는 이들의 증언에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과장된것인지 이 정도는 판단하여 걸러서 받아들이는 지혜도 필요하다.
북한인권운동과 탈북자를 돕는 활동을 하는 단체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개인적 노하우를 다소 전수하자면, 그 첫째는 저 사람이 북한에서 언제 탈북해 한국에 온 사람이고 또 북한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던 사람인지 판단해보는 문제다. 가령 북한에서 기껏 중,하위급 당원으로 있다가 그것도 국내에 들어온지 이미 20년이 넘는 사람이 증언하는 북한실상이라면 그것은 2014년 현재 북한의 이야기와는 분명 상당한 거리가 있는 이야기다. 또는 탈북자인지 조선족인지 가리는 노하우로 가령 자신이 살았다고 주장하는 북한 지역내 학교명이나 혁명사적지 같은것을 당연히 북한에서 나고 자란 주민이라면 상식으로 알고 있을만한 문제를 자주 틀리게 말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도 확실히 의심해볼만한 일이다. 북한인권단체등에서 탈북자를 돕는 활동을 오랫동안 해온 사람들에겐 탈북자인지 연변교포인지를 가리는 이외에도 몇가지 노하우가 있다. 하지만 이전에는 이런것들은 그와같은 특수한 활동에 종사하는 사람들끼리만 알아두었던 정보이지만, 이제 일상에서도 탈북자를 접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고 또 연변교포가 탈북자라며 사기를 치는 경우도 있으니 일반인들도 이 정도의 판단기준은 가져볼 필요가 있을것 같아 이와같은 노하우를 공개하는 것이다.
박정희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탈북자 이야기가 나와 다소 어리둥절해졌을것 같은데, 실은 좀 이채로운 탈북자 수기의 내용 하나를 공개하려다보니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소위 ‘김일성 장수연구소’로 알려져있는 ‘청암산 연구소’ 연구사로 있다가 2005년 한국에 들어온 이윤걸씨란 분의 수기다.
‘김정일의 유서와 김정은의 미래(비전원.2012년 11월 발행)’라는 제목으로 되어있는 이 책에는 놀랍게도 1994년 김일성 사망당시의 일이 소개되어 있다. 지은이는 바로 김일성 사망당시 ‘청암산 연구소’에 재직중이었으며 김일성 부검을 담당했던 전문의사로부터 김일성 사망 당시의 일을 직접 전해들었다는것이다. 다소 긴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북한정권이 80년대 들어서는 사실상 모든 실권이 김정일에게 넘어갔고 김일성은 굳이 비유하자면 재벌계의 ‘명예회장’처럼 군림만 하는 위치에 있었다는것이 북한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중론이다. 한마디로 80년대부터 북한의 대남테러나 대내적인 경제,국방정책등은 모두 김정일의 집행하에 결정이 되었으며 김일성은 상징적인 존재로만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여하튼 그런 가운데 90년대 들어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잇달아 몰락하고, 북한은 북한대로 그 이전부터의 내부적 모순으로 배급체계가 차츰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다. 헌데 그와같은 사실을 김일성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것이다. 그러다 우연(...이란 표현은 좀 그렇지만...)히 주민들에게 식량배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김일성은 ‘경제관계부문 일꾼 연속회의’를 묘향산 별장에서 긴급 소집한다. 그것이 1994년 7월7일 오전 10시. 간부들은 작심한듯 지금 북한내부 식량사정 및 경제사정이 보통 엉망이 아니라는것을 김일성에게 보고하고, 김일성은 기가막힌듯 ‘내가 왜놈들과 싸울때도 이 지경은 아니었는데, 대체 일을 어찌했기에 이 지경이 되었냐 ?’며 노발대발하여 간부들을 질책한다. 그러다 가슴이 답답해진 김일성은 휴회를 선언하고 ‘답답하다...창문좀 활짝 열어봐...’라는 말을 하고는 잠시 휴식을 취하려 한다. 그러나...‘답답하다...창문좀 활짝 열어봐...’라는 말을 남기고 휴식을 취하려 한 김일성은...그리고 영원히 깨어나지 못했다.
1994년 7월의 대한민국으로 돌아가보면 북한 평양중앙방송이 전하는 김일성 사망 소식을 남한의 언론들이 긴급속보로 전한것이 토요일이었던 9일 정오를 조금 넘긴 무렵. 그리고 북한당국의 공식 발표로는 김일성 사망 시간은 ‘7월 8일 새벽 2시’라고 했다. 하지만 이윤걸씨 수기의 증언에 의하면 실제 김일성 사망 날짜와 시간은 이보다 하루전인 7일 오전 열시경 긴급 경제관료(?)회의를 소집하고 북한 내부의 충격적인 경제상황을 보고받은뒤 가슴이 답답해져 ‘창문을 열라’고 한뒤 휴식에 들어간 7일 정오를 조금 넘긴 무렵으로 봐야할것이다.
북한이 워낙 폐쇄사회인데다가 북한정권의 이미지 자체가 한국사람 대다수의 뇌리엔 ‘악랄한 독재정권’이라서인지 특히 ‘김일성 사망’과 관련해서는 김정일의 음모설,배후설등 별의별 루머가 다 돌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김일성 장수연구소(청암산 연구소) 연구사로 재직한 바 있는 이윤걸씨가 당시 부검을 맡은 선배 의사로부터 들은 김일성 사망 당시의 전말과 정황은 이와같다는 것이다.
이윤걸씨 수기에 대한 신뢰도는 공연한 이야기 주절주절 늘어놓을것 없이 다년간 북한인권 관련 단체에서 활동하며 적지않은 탈북자를 만나본 개인적 노하우와 감으로 ‘믿을만한 증언’이라 자신있게 말하고자 한다. 내용을 축약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표현방식과 단어선택, 상황묘사에서 약간의 어긋남은 있었을 지언정 전체적인 상황 자체는 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좌파들은 흔히 박정희와 김일성을 똑같이 독재자라고 말하곤 한다. 그 부분에 대한 논쟁을 하자면 할말은 낙동강 모래알 숫자만큼이나 많긴 하지만, 그 논란은 일단 생략하고 다만 저 증언을 신뢰한다고 보았을때 김일성이 이 세상을 떠나기전 마지막 남긴말은 ‘답답하다...창문좀 열여봐...’가 된다.
박정희의 ‘난 괜찮아’와 김일성의 ‘답답하다’. 남북의 상황과 그리고 남과 북의 현대사에서 박정희와 김일성이 각기 갖는 의미를 생각한다면 우연치고는 참으로 절묘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말이다. 남한을 18년간 통치한 장기집권자는 궁정동 만찬장에서 ‘난 괜찮아’란 말을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났고, 북한의 40년 철권통치자는 묘향산 별장에서 ‘답답하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박정희 서거 이후의 대한민국, 김일성 사망 이후의 북한. 그 둘의 상황을 저 한마디 만큼이나 절묘하게 압축시킬수 있는 말이 또 있을수 있을까 ? 박정희의 18년 장기집권은 10.26 사태와 함께 막을 내렸지만, 이후의 대한민국은 박정희 시절의 경제발전이 밑거름이 되어 지금까지 눈부시게 발전,성장해 왔다. 박정희가 없어도 아무 문제 없이 대한민국은 번영과 자유를 누리며 무탈하게 잘 유지되어왔다. 하지만 김일성 이후의 북한은 대내적으로나 대외적으로나 그야말로 ‘답답하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지금껏 계속되어오고 있다. ‘답답하다...창문 좀 활짝 열어봐...’ 그 북한을 40년 철권통치한 독재자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우리가 현대사에서 박정희를 만난것은 참으로 행운이었다. 그가 60-70년대 대한민국의 정책기조와 방향을 제대로 잡았기에 대한민국이 지금껏 이어올수 있었음을 생각해본다면, 비록 독재와 민주주의 유보라는 그늘이 있었을지언정 박정희는 참으로 ‘괜찮은’ 지도자였다. 하지만 김일성은...그야말로 그 존재가 북한체제와 2천만 주민 전체를 답답하게 만든 그 자체가 아닌가.
어쩌면 저 세상에서 박정희와 김일성은 후대가 자신들에게 내리는 평가를 놓고도 그와같이 말하고 있지 않을까. 독재와 민주주의 유보라는 그늘이 있었을지언정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된 대통령. 그야말로 ‘괜찮은’ 평가지만 김일성은 후대가 자신들에게 내리는 평가를 보고도 귀신이 되어 이와같이 말하고 있으리라. ‘답답하다...’
이 세상에 영혼이나 신 혹은 운명같은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 물론 그것을 증명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또한 미래를 제대로 예측할수 있거나 사후의 일을 알수있는 이도 이 세상엔 그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박정희와 김일성. 남북한의 현대사에 각기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저 두 인물의 마지막 남긴 그 한마디는 남과북의 상황 그리고 그 자신 그리고 그 이후의 일까지를 너무나 절묘하게 축약하고 있지 않은가.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의 흉탄에 생을 마감한 박정희는 심수봉과 신재순의 부축을 받으며 ‘난 괜찮아’란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고, 김일성은 1994년 7월 7일 묘향산 별장에서 경제악화로 배급이 끊겨 북한 내부사정이 엉망이라는 경제관료들의 보고를 받고는 ‘답답하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일개 탈북자의 증언을 너무 신뢰하는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을것 같지만, 적어도 김일성 장수연구소 연구사 출신인 이윤걸씨의 수기는 면밀히 검토해본 결과 믿을만한 증언이란 결론을 내릴수 있었다. 그리고 이윤걸씨가 그리 잘 알려진 탈북자도 아니고 그의 수기인 ‘김정일의 유언과 김정은의 미래’도 그리 많이 팔려진 책이 아니니 저 책에 쓰여진 김일성 사망 당시의 일을 아는 사람도 그리 많지는 않을것이다. 따라서 저 책에 쓰여진 내용을 이와같이 인터넷에 공개하는것도 나름 유용하고 의미있는 정보공개가 되리라고 본다. (따라서 외람되나마 보다 많은이들이 인터넷 곳곳에 이 글을 퍼가주셨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
1979년 10월 26일 저녁. 박정희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남긴 말은 ‘난 괜찮아’. 1994년 7월 7일 오후경 김일성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 남긴 마지막 말은 ‘답답하다’. 어떤이들은 박정희나 김일성이나 둘 다 똑같은 독재자라 비난하기도 하지만, 저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남긴말은 아무리 곱씹어봐도 저 둘이 남과북의 현대사에서 갖는 의미와 평가 그리고 무엇보다 박정희 서거 이후의 남한의 상황과 김일성 사망 이후의 북한의 상황이 어찌 돌아갔는지를 생각해보면, 곱씹어보면 곱씹어볼수록 너무나 절묘하고 기가막힌 말이다. 박정희의 ‘난 괜찮아’와 김일성의 ‘답답하다’. 남과북의 현재상황을 이보다 더 간단명료하게 축약한 말이 또 있을수가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