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남성연대와 창극 '메디아' 사이에서
2013-09-20 01:41 815 유은선

국립창극단이 석달전에 꽤나 의미있고 눈길가는 공연을 하나 가졌다. ‘메디아’라는 그리스 비극에 등장하는 여자주인공을 소재로 새로운 창극을 개발 공연을 했던것이다. 창극이라면 으레 춘향전이니 심청전이니 하는 예부터 전해내려오는 작자미상의 우리나라 고전소설이나 전설 같은것을 가지고 하는줄만 알았던 우리네들에게 서양 비극을 과감하게 창극에 도입 공연을 가졌다는것은 꽤나 충격적이고 파격적이라는 느낌을 줄 만큼의 과감한 실험이고 시도였다.
 
 필자도 문창과를 나온 사람으로서 원론적으로 모든 창작장르에서의 실험정신과 도전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은 창극이든 오페라든 뮤지컬이든 연극이든 소설이든 드라마든 영화든 발레든 모든 장르에 동일하게 해당되는 것이다. 꽤 오래전부터 ‘고정관념을 바꾸자’느니 ‘아이디어를 바꿔야 세상이 바뀐다’는 말이 있어왔던것을 생각해본다면, 확실히 문화,예술계의 창작의 장르에서 기존의 고정관념이나 통념을 깨는 파격적인 시도는 문화예술 장르를 보다 풍족하고 충만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더욱 권장되어야 할 사안이다.

 한편 국립창극단이 새로운 창극소재로 삼았던 ‘메디아’란 여인은 실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악녀(惡女)다. 메디아는 콜키스의 왕 아이에데스의 딸이지만, 이아손과 사랑에 빠진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릎쓰고 이들의 사랑을 막으려는 동생을 죽인뒤 콜키스를 탈출 두 사람만의 행복한 생활을 누리게 된다. 하지만 이후 이아손이 메디아를 배신하고 코린트 국왕의 딸과 결혼을 하려하자 여기에 분개한 메디아는 이아손과의 사이에 낳은 딸 둘을 죽이게 된다. 사랑하던 사람과의 사이에 낳은 자기 두 딸을 자기손으로 죽인 잔혹한 어머니이니 참 변명의 여지가 없어보이는 악녀인것만은 틀림없다. 그리고 이 메디아의 전설을 갖고 그리스 3대 비극작가인 에우리피데스가 ‘메데이아’란 연극을, 로마제정 시절의 철학자이자 극작가인 세네카가 ‘메데아’라는 연극을 지어냈다.

 헌데 이렇게 만들어진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이자 악녀 ‘메디아’를 국립창극단에선 새로운 각도에서 재조명했다. 한마디로 ‘메디아도 오죽했으면 그랬겠느냐 ?’라는 것이 창극 ‘메디아’를 만들어낸 작가와 연출의 항변인 셈이다. 실상 메디아도 남성중심의 권력사회가 만들어낸 희생양일 뿐이다. 서양 비극을 우리 창극에 차용 새로운 형태의 메디아를 탄생시킨 국립창극단 작가와 연출자의 ‘기획의도’인 셈이다.

 어찌보면 상당히 급진적인 페미니즘적 메시지가 담긴 창극이기도 하다. 국립창극단의 ‘메디아’는 그리스 비극의 악녀 메디아를 철저하게 남성중심 권력사회에서 희생된 희생양으로 재조명했다. ‘죄를 지은것은 남자인데 벌을 받는것은 여자’다. 창극 ‘메디아’에 등장하는 주된 코러스이자 주제다. 하긴 처음부터 이아손이 메디아를 배신하지만 않았다면 메디아가 이아손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기 아이를 죽이는 그런일은 발생하지 않았을것 아닌가 하는점을 생각한다면 이와같은 창극 ‘메디아’의 주제는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

 헌데 이와같은 창극 ‘메디아’의 주제는 어떻게보면 급진주의적 페미니즘의 극단을 보여주는것 같아 좀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하다. 우리가 흔히 페미니즘을 다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기 쉬운데 페미니즘도 알고보면 ‘자유주의적 페미니즘’과 ‘급진주의(사민주의)적 페미니즘’으로 갈린다. 간단하게 요약 설명하자면 ‘자유주의적 페미니즘’은 대체로 여성들의 정치,사회 진출을 허용하라는 방향이 주 목적이지만 ‘급진주의적 페미니즘’은 남성과 여성의 역사 자체를 착취와 억압의 역사로 보고 있다. 한마디로 사회주의 이념 그 자체가 그대로 대입된 ‘페미니즘’인 셈인데, 따라서 어떻게 보면 남성들 전체를 여성들이 ‘타도해야할 대상’으로 보는것 같은 뉘앙스마저 느껴져 다소 위험한 부분이 있는것이 사실이다.

 창극 ‘메디아’의 메시지를 곱씹어보다 문득 좀 엉뚱하게도 얼마전에 투신한 ‘남성연대’ 대표 성재기씨가 떠올랐다. 사실 성씨의 투신으로 ‘남성연대’란 단체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꽤 많은 사람들이 “남성연대 ? 아니, 세상에 그런 단체도 있었어 ? 허허허...아니, 그리고 그 사람 지가 남성연대 대표면 대표였지 난데없이 투신자살은 왜 했대 ?” 이렇게 생각했을련지 모르겠지만, 인터넷 활동을 꽤 오래해온 필자같은 사람들이 볼때는 ‘남성주의 운동’의 태동은 이미 꽤 오래전부터 예고된 일이기도 했다.

 한 90년대 후반 - 2천년대 초반경부터 특히 ‘병역가산점’이나 ‘호주제 폐지’같은 남성들에게 상대적으로 불리한 이슈가 터져나올때마다 인터넷에서 남성들의 의견이 결집되어오곤 했었다. 그리고 이런 이슈에 대한 젊은 남성들의 반대여론이 들끓게 되면 꼭 나오는 이야기가 있었다. ‘도저히 꼴페미들 등쌀에 못 살겠다. 차라리 우리도 남성들 권익을 보호하는 단체라도 하나 만들어야겠다’는.

 사실 필자같은 경우에는 일단 ‘호주제 논란’은 논외로 치더라도 ‘병역가산점 폐지’는 대체로 동의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남성운동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별로 동의하지 않았고 심지어 탐탁찮게 여기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근 몇 년전부터는 나 역시 이른바 ‘급진주의형 페미니스트’들의 주장과 경향이 좀 심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때가 많아져 자연스럽게 ‘남성연대’ 같은 단체의 주장에도 조금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사실 남성연대 혹은 남성주의 운동의 출발은 ‘병역가산점’이나 ‘호주제 폐지’같은 논란이 불거져 나왔을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봐야하겠지만, 근래에는 경제문제나 성에 관한 문제로까지 그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가령 모 개그프로에서 젊은 남성들의 반향을 꽤나 불러일으켰던 구호. “니 생일엔 명품가방 ! 내 생일엔 십자수냐 !” 실제 한 근 10여년전 이내로 여성들의 결혼관이나 남성들을 보는 눈이 매우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런 사회분위기에서 연애나 결혼의 문제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것은 저소득,저학력층의 남성이 될수밖에 없다.

 가령 결혼정보센터나 소개팅 자리에 나가보면 상대 여성이 일단 소개팅 상대남의키부터 따져보고 한달 월급이나 차 기종,아파트 평수부터 물어보기 시작한지가 꽤 오래되었다던가. 문제는 이렇게 키나 경제력 기타등등 상대 남자의 조건과 기준을 까다롭게 따지는 여자는 학력과 지위,나이를 불문하고 존재한다는 것이다. 학력이나 경제력을 따지다보면 결국 상대적으로 저소득,저학력층 남성이 연애나 결혼문제에서 소외되는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건만, 상대남자의 학력,사회적 지위,경제력을 따지는 여성은 키,나이,학력,사회적지위,경제력을 불문하고 거의 모든 여성계층에 존재하는 불합리한 사회구조가 형성되어가고 있는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주의 담론은 이제 확실히 자유주의의 단계에서 급진주의 단계로 넘어간듯 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여성들의 남성에게 바라는 기대치는 갈수록 높아만 가는 추세다. 이와같은 사회현상은 아무래도 한자녀 낳기 세대가 되면서 집안에서 공주처럼 자란 여자아이들이 결혼 적령기가 되면서 두드러진것 같다. 한마디로 집안에서 받던 공주대접 사회에 나와서도 계속 받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여성들의 기대치를 충족시켜줄수 있는 남자는 외형은 물론 학력,재력등 모든 면에서 상당한 우월함을 갖추어야하고 그렇지 못한 남자는 젊은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하고파하고 목말라하는 연애와 결혼의 영역에서 소외되거나 밀려나게 될수밖에 없다.

 또 한가지 언제부터인가 두드러진 현상 하나를 지적하고 싶은것은 방송에서 ‘좋은 아버지’를 찾기가 힘들어졌다는 점이다. 드라마의 경우엔 시청률을 올리려다 보니 ‘막장 드라마’가 판을치는 세상이 된 점도 어느정도 기인한걸로 봐야 하겠지만, 정말이지 언제부터인가 드라마에서 ‘좋은 아버지’를 보는게 굉장히 어려워졌다. 드라마에서 가난한 집 아버지들은 대개 술이나 노름 또는 일정한 직업도 없이 엉뚱한 짓만 하며 떠돌아다녀 처자식을 힘들게 하기 일쑤고, 아주 가끔씩 등장하는 부잣집의 ‘좋은 아버지’도 꼭 끝에 가서는 바람을 피거나 두집살림을 한것이 들통이 나 가족들의 뒷통수를 친다. 정말이지 드라마를 보다보면 세상에는 온통 ‘나쁜 아버지’만 존재하는것 아닌가 하는 착각이 다 들 지경이다.

 또 한가지 예를 들자면 모 방송사의 평일 심야 시간대에 이른바 그 무슨 ‘고민상담’ 같은것을 받아주는 형태의 예능프로가 있는데, 이 예능프로에도 대개 아버지나 남편 때문에 속상해하는 아내나 딸의 사례가 자주 등장한다. 헌데 쭉 살펴보다보면 마찬가지로 세상에 ‘좋은 아버지’나 ‘좋은 남편’은 정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이 예능프로에 나오는 아버지나 남편에 대한 고민 사례들을 보면 가령 아버지(또는 남편)가 가정에 너무 소홀한 집은 그것 때문에 불만이고, 반대로 집안에서 너무 잔소리가 심한 집안은 그것 때문에 불만이다. 남편이 너무 회사일에만 열중해서 가정에 신경을 안 쓰면 그것은 그것대로 불만거리가 되고, 남편이 일정한 직업도 없이 엉뚱한 짓만 하고 돌아다닌다던가 다른 어떤 특정한 취미생활이나 수집활동에 미쳐있는 경우라면 그것 때문에 또 가족에게 민폐를 끼친다고 불만이다. 정말이지 아버지(또는 남편)가 일에 너무 열심인 집안은 그것대로 불만, 반대로 일정한 직업도 없이 엉뚱한 짓만 하고 돌아다니면 그건 또 그것대로 불만, 돈 많은 집안은 많은 대로 불만, 가난한 집안은 가난한 대로 불만. 정말이지 한 가정을 책임지고 사는 아버지나 남편의 입장에선 이 예능프로를 애청하다 보면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 ?’는 볼멘소리가 나오지나 않을까 싶다.

 하지만 드라마든 예능이든 교양프로든 좋은 아버지나 좋은 남성상은 늘 안 나오고 가족이나 주변에 민폐만 끼치는 남자만 늘 등장하는 방송이 많은것은 어떤 ‘음모’가 있다기 보담은 방송,연예나 문화,예술 전반에 ‘급진주의형 페미니즘’이 주류사조의 하나로 자리잡으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패턴의 변화가 생긴 것으로 판단하는게 합리적일것이다.

 창극 ‘메디아’에선 ‘죄를 지은것은 남자인데, 벌을 받는것은 항상 여자’라며 남성권력 중심사회에서 희생된 한 여성에 대한 항변을 그와같이 했지만, 정작 현실의 한국사회에선 오죽하면 ‘남성연대’같은 단체가 다 생겼고 심지어 그 단체를 이끄는 대표라는 사람이 투신소동을 벌여 결국 실제 사망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을까. 그 현상이 다 이해될 지경이다.

 남성연대 성재기 대표가 결국 사망했다는 소식이 접해지자 생각보다 꽤 많은 젊은 남자들이 빈소를 찾아 고인의 죽음을 안타까와했고 애도했다는 소식을 여러 인터넷 웹진을 통해 접한바 있다. 인터넷을 모르는 노년층에선 혹 어느날 갑자기 방송뉴스를 통해 성 뭐라는 이름조차 처음 듣는 이상한(?)단체 대표라는 사람이 투신소동을 벌였고 끝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헛~! 세상에 별 할짓없는 X이 다 있네. 저런것도 지 에미가 낳았을때 아들이라고 미역국 먹었으려나... ” 하면서 혀나 한번 끌끌차고 말았을련지 모르지만, 인터넷을 하는 젊은 세대중엔 성대표의 죽음을 안타까와하고 애석해하는 남자들이 꽤 많았다는것은 결국 알게모르게 남성연대와 성대표의 주장에 동조해온 젊은 남성이 그만큼이나 많았다는 증거다.

 하지만 한편으론 또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물론 ‘급진주의형 여성주의’적 목소리가 점점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해가면서 특히 상대적으로 젊은 남성들의 사회적 지위나 활동반경이 많이 위축되고 축소된것은 분명 사실이다. 무엇보다 과거 남성이 권력을 가졌던 시절을 비교해 생각해본다면, 요즘 젊은 남성들이 가질법한 상대적 박탈감이나 상실감,허탈감 역시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사회에 여성에 대한 차별이 완전히 존재하지 않는다고 자신있게 말할수 있는가 ? 가령 예를 들자면 직장에서 정리해고등을 할때 남성과 여성중 어느쪽이 상대적으로 더 피해를 입게 되는가 ? 또는 결혼,임신,출산,육아등의 이유로 직장에서 퇴직압력을 받거나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는쪽이 남성인가, 여성인가. 또한 가족문화에서 여성의 지위에서도 여전히 그쪽이 불이익을 받는쪽 없다고 말하긴 어렵다.

 남성연대는 ‘자신들은 여성을 적대시 하는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남녀간의 평등을 구축하고 여성들을 존중하기 위해’ 이런 단체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페미니스트들도 자유주의형이건 급진주의형이건 다 그런소리 한다. ‘우리야말로 이땅에 진정한 양성평등을 구가하기 위해 이런 활동을 하는것’이라고. 생각해보면 남성운동이나 여성운동이나 결국 자신들의 눈높이나 욕구(?)를 충족시켜줄수 있는 이성(異性)만을 존중하고, 자신들의 정서나 가치관에 맞지 않는 이성에 한해서만 배타적으로 나오는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남성운동이건 여성운동이건 그런 운동이 존재한다는것 자체가 결국 해당(性)에 해당하는 이들이 상대적으로 사회에서 불이익을 받는다는 의식의 공감대하에 그런 운동이 발생할수 있게된 것이다. 따라서 이런 단체들에게 상대방에 대한 이해나 공존,소통같은 것을 요구하는것은 근본적으로 좀 걸맞지 않는 이야기가 될 듯 하다. 하지만 어찌되었거나 이제 ‘남성연대’같은 단체까지 생기고 그 수장에 해당되는 인사의 투신 퍼포먼스에까지 오히려 옹호나 동조의 여론이 일고, 심지어 그 죽음을 애석해하고 안타까와 하는 젊은이들이 적잖이 모여든 사회현상을 생각해본다면, 확실히 ‘급진주의적 여성운동’이 그동안 뭔가 문제가 많았음을 자각할 필요가 있을것 같다. - 흔히 ‘꼴페미’라고 하지만 전문용어(!)를 사용한다면 ‘급진주의형 여성운동’ 혹은 ‘급진주의형 여성운동가’로 부르는게 가장 적절한것 같다.

 잠시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을 좀 뒤로 젖히고, 혹은 흥분되었던 감정을 가라앉히고. 한번 종교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물론 요즘은 종교를 믿지 않은 사람들도 많지만. 신이 사람을 창조하면서 남자와 여자를 만든것은 결국 둘이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라는 뜻이지 어느 한쪽을 차별하거나 혹은 적대시하라고 만든것은 분명 아닐것이다. 아마 여성들중에 상당수는 아직은 ‘죄를 지은것은 남잔데, 벌을 받는것은 여성’이라는 창극 ‘메디아’의 메시지에 공감하고 있을련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히려 현실에선 ‘남성연대’ 운동을 하던 대표의 투신 퍼포먼스와 죽음에 애석하고 안타까와하는 젊은 남성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는것. ‘급진주의형 여성운동’의 무한질주가 이제 잠시 좀 멈추고 스스로를 좀 돌아볼때가 되었다는 경고메세지가 분명 아닐까.

여전히 뒷말 많은 박근혜 인사 (내일신문)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은 소식이 전해졌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