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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이 70년대에는 잘(?) 살았다는데...
2014-10-30 18:55 3,789 유은선

주사파들이 북한체제를 옹호하는 전형적인 논리중 대표적인 것 하나가 ‘북한이 김일성 시절 특히 1960-70년대에는 잘 살았으며, 경제적으로 남한보다 앞섰다’는 점이다. 헌데 이 부분만큼은 우리 정부당국도 어느정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부분인지, 냉전시대에는 대체로 쉬쉬하는 이야기였는지 몰라도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동구 공산권이 붕괴된 이후인 90년대 초,중반 이후에는 주로 경제문제를 다룬 서책등에서도 공식적으로 이 부분을 인정,언급하기 시작했고 방송에 나오는 북한 전문가나 정부 당국자들도 이를 사실상 인정하는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하긴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경제성장이 이루어진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 계획’이 성공하고 새마을운동이 시작된 60년대 후반 - 70년대 초반 정도를 지난 이후의 일이니 그런대로 납득이 가는 주장이기도 하다. 더욱이 6.25 이전인 해방정국 시절엔 심지어 북한이 전기공급을 끊어버려 남한의 전기사정이 무척이나 열악해졌던 때도 있었다고 하니 적어도 70년대 이전까지는 북한이 경제적으로 남한보다 앞섰다는 주장은 그런대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야기인것만은 분명하다.

 종편 ‘채널A’에서 방영하는 ‘이제 만나러 갑니다(약칭 ‘이만갑’)’란 프로가 있다. 주로 북한의 식량난이 극심해진 직후인 90년대 후반 - 2천년대 초반경 북한을 탈출 한국에 입국한 젊은 탈북여성들이 출연 매주 한가지 테마씩 북한에 관한 이야기를 펼치는 탈북 여성버전 ‘미녀들의 수다’다. 한때는 주로 젊은 탈북여성 위주로만 출연 북한의 실상을 증언하곤 하던 이 프로는 언젠가부터는 출연대상을 다소 확대 다소 나이가 많은 탈북자나 고위층 출신 탈북자들도 종종 출연 전체적으로 토크 주제를 보다 확대,다양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헌데 이 프로가 지난 10월 19일 방영한 148회에선 바로 소위 ‘북한이 70년대엔 잘 살았다’는 설(說)에 관하여 다루었었다. 방송내용은 주로 70년대 북한방송 자료화면등을 보여주며 특히 이날은 북한의 70년대를 기억할만한 40대 이상 북한에서 중산층 이상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도 추가로 게스트로 섭외 남한보다 잘 살았다는 ‘북한의 70년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솔직히 처음엔 호기심도 갔었는데, 방송을 계속 지켜보면서 불편한 심기가 이는것을 숨기기 힘들었다. 설사 북한이 70년대 초,중반까지는 경제지표상으로 남한에 다소 앞서 있었는지 몰라도, 방송내용만을 놓고보면 그 시절(60-70년대 김일성 시대)의 북한은 대단히 잘 나가는 선진국가 내지는 그런대로 성공한 편에 드는 ‘사회주의 국가’쯤 되는 인상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일단 객관적인 경제수치만으로는 확실히 60년대부터 70년대 초반경까지는 북한의 경제사정이 우리보다 나았다는것이 사실인것 같다. 실제 우리 정부당국도 60-70년대 당시에는 쉬쉬했을 지언정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한 이후인 90년대 초,중반 이후부터는 대체적으로 저와같은 사실을 인정하는 분위기였으니까.

 하지만 객관적인 경제수치는 어떨지 몰라도 과연 60-70년대 북한이 경제적으로 남한에 비해 ‘매우 우월하게’ 잘 사는 나라였을지는 여전히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부분이다. 이만갑 148회 방영분만을 놓고보면 마치 70년대의 북한은 모든 것이 풍족한 그야말로 남한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잘 살았던것같은 생각이 든다. 정말 만약 70년대에 남한의 하층민들이 저와같은 실상(?)을 알았다면 대놓고 ‘김일성 만세 !’ 부르지나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정말 그럴까 ? 70년대 북한은 진짜 남한보다 모든면에서 월등하게 앞서가는 나라였을까 ? 또는 경제적인 면은 그렇다치더라도 ‘삶의 질’이란 측면에선 또 어땠을까 ?

 70년대 초반 태생인 필자의 기억만을 놓고 대충 생각해봐도 아무래도 고개가 갸웃거려지고 의구심이 드는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첫째. 요즘이야 탈북자들이 대개는 북한의 함경도,양강도 지역등지에 살다가 중국과 제3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한해 평균 천명-2천명 수준이지만, 냉전시대 남북간의 모든 정보가 피차 철저히 통제되었던 그 시절에는 기껏해야 휴전선을 통해 넘어오는 인민군 출신 ‘귀순자’들이 대다수였다. 그리고 그와같은 인민군 출신 귀순자를 우린 ‘귀순용사’라 대대적으로 환영했었고 그러한 귀순사례는 1년에 많아야 한 4-5건 이상을 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였던것이 70,80년대였다.

 하지만 그럴지언정 7,80년대 귀순자들이 남한에 와서 놀라는것이 크게 두가지가 있었다. 그 하나는 백화점에 물건이 산더미처럼 쌓여져있고, 그와같은 물건들을 누구나 자유롭게 사갖고 가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서울에 왜 이렇게 차가 많으냐 ?’며 눈이 휘둥그래지곤 하던것이 7,80년대 귀순자들의 한결같은 모습이었다.

 둘째로 이른바 북송교포들이 막상 북한으로 들어가서는 일본에서 가져온 가전제품이나 사치품들을 당간부들에게 전부 압수당하고 ‘여기 사람살곳 아니라 !!!’며 아우성 치는 소리가 일본에 있는 조총련 친척들에게 전해지곤 하던것이 이미 70년대부터의 일이었다. 한마디로 ‘북한은 사람살곳 아니다 !’라는 소리는 이미 70년대부터 나오던 이야기다.

 셋째로 80년대 꽤 유명했던 가족단위 탈북자 김만철씨의 수기를 보면 60,70년대의 청진만 해도 주거,가정환경,철도,전기등 모든 것이 열악해 고생했다는 내용이 여기저기 나온다. 사실 김만철씨 탈북당시 우린 북한에서의 김씨의 신분이 의사(단속선 선의)였다는 점에 ‘아니, 의사라면 꽤나 대우받는 직업일텐데 왜 사람이 저렇게 늙고 바짝 말랐단 말인가 ?’하고 충격을 받았지만, 요즘 들어오는 탈북자중 의사,한의사 출신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북한에서 의사는 ‘김일성 장수연구소’쯤에서 일하는 의사라면 모를까 일반 의사는 사회적으로 그렇게 대접받는 직업이 아니다. 하지만 어찌되었거나 87년에 귀순한 김씨의 증언에 의하면 6,70년대 북한도 그렇게 풍족한 사회는 분명 아니었다. 그리고 그 삶이 80년대에 들어도 별반 나아지는것이 없고 오히려 갈수록 열악해져가니까 그곳에서 아이도 무려 다섯이나 되는데 더 이상 살기가 힘들어 ‘차라리 어디 동남아 지방 같은데 섬이라도 찾아가 농사라도 지으며 살자’고 가족단위 탈북을 기획했던게 김만철씨의 탈북동기 아니었던가. 어찌되었거나 이와같은 사례들을 종합해봐도 60-70년대 북한이 남한보다 경제나 삶의질의 측면에서 우월하게 잘 살았다는 이야기는 납득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70년대에 북한이 잘살았다는 설을 무조건 부인하기도 힘든것은 이만갑에 출연하는 젊은 탈북 여성들이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 때문이다. 여하튼 90년대 중반 극심한 북한 식량난을 겪은뒤 한국에 정착한 젊은 탈북자들이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는것 아닌가. ‘(북한에 있을때) 부모님이나 어른들로부터 종종 들은 이야기가 있는데 예전엔 그래도 먹고살만 했다는데 요즘은 왜 이 지경까지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헌데 사실 이런 이야기는 80-90년대 넘어온 귀순자중에도 말하는 사람이 더러 있었다. ‘어른들 이야기가 예전엔 그래도 잘 살았는데 요즘은 더 못산다’고. 그리고 그 당시 정부당국자나 방송당국자들은 이와같은 (예전에 잘 살았다는 시절) 귀순자들의 이야기를 아마 ‘일제시대’로 말하는 것으로 추정했는지 80-90년대 방영되었던 반공드라마중엔 그와같은 ‘북한주민들이 예전에는 잘 살았다’고 지목하는 시대를 ‘일제시대’인 것으로 묘사한 프로도 간혹 있었다.

 하지만 연령대나 세대로 짐작했을때 요즘 들어오는 20-30대 탈북자의 부모세대들이 ‘일제때 더 잘 살았다’는 소리를 한다고 보기는 무리인것 같고, 적어도 60-70년대 북한의 사정이 적어도 혹독한 식량난을 겪은 90년대 중반 이후 정도는 아니었던것만은 어느정도 사실인듯 하다.

 사실 일반적으로 인간문명이야 시간이 갈수록 진화,발전하기 마련이라 가령 ‘우리땐 먹을것도 없었는데 요즘 애들은 참 풍족하게 사는구나’, ‘우리땐 이런건 꿈도 못 꾸었는데 요즘은 이런 신비한 (첨단기기 등) 것들도 있구나.’ 이런식의 이야기가 어른들로부터 나오는게 가장 정상적인 현상일 것이다. 헌데 북한의 경우는 되려 나이든 사람들이 젊은 애들한테 ‘예전엔 잘 살았는데...’라는 소리를 한다면 북한은 확실히 ‘시간이 거꾸로 가는’ ‘참 이상한 나라’인 것만은 분명한것 같다.

 여하튼 그렇다면 대체 60,70년대엔 그런대로 먹고살만 했다는 북한이 지금은 왜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이만갑 148회차에서는 그 부분을 ‘김정일의 사치향락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렸다. 사실 ‘북한이 김일성때는 잘 살았다’는것이 가장 전형적인 주사파들의 북한옹호 논리인데, 일반적으로 그 논리가 이와같이 이어진다. ‘① 김일성때는 북한이 더 잘 살았고 ② 김정일때 식량난은 미국의 경제봉쇄 때문이며 ③ 김정은이 3대 세습을 한것도 다 그만한 능력일 인정받았기 때문’이라고. 헌데 요즘 세상에 아마 아주 넋나간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②,③의 주장을 수긍하는 사람은 없을것이고, 그나마 먹혀드는 북한옹호 논리가 ‘① 김일성때는 잘 살았다’이다.

 헌데 이 논리가 이만갑에선 ‘① 김일성 시절인 60,70년대엔 그나마 먹고살만 했는데 ② 김정일이 실권을 잡으면서 북한의 정책이 선군(先軍) 정책으로 변화하고 김정일이 워낙 사치,향락을 일삼으면서’ 북한체제가 몰락했다는 논리가 되어버린 셈인데 사실 이것도 웬지 궁색해보이고 허점이 보인다.

 솔직히 아무리 김정일이 사치,향락을 일삼는다 하더라도 제놈도 인간일진대 하루에 독한 고급양주를 수백,수천명씩 매일 퍼마실 재주가 있는것도 아닐테고, 무슨 비싼 고급 의상을 수천,수만벌씩 구입해서 하루에 열 번도 더 갈아입으며 사는것도 아닐것 아닌가. - 더욱이 김정일의 생전 의상이야말로 달랑 ‘인민복’ 한 벌이었다. 술과 엽색행각은 어땠을지 몰라도 적어도 옷에 있어서는 김정일은 검소한(?) 편이었다.

 그렇다면 북한의 선군정책으로의 전환, 김정일의 사치,향락 그 외에 북한체제의 몰락원인은 또 어디서 찾아봐야 하는것일까. 일단 꼽아볼수 있는것은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이다. 적어도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국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던 시절의 북한은 그들과 교류를 하며 물자적으로는 별다른 어려움을 겪을일이 그리 많지 않았을것이다. 그러나 동구권 국가들의 몰락은 80년대 후반 - 90년대 초반의 일이니 이것만으로는 이미 70년대부터 기울기 시작한 북한의 경제와 갈수록 고달파지기만 한 민생문제에 대한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체 6,70년대엔 그나마 밥은 굶지 않았던 북한이 90년대 들어서는 300만이 굶어죽은 소위 ‘고난의 행군’이라는 최악의 식량난을 겪고, 그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친지도 어느덧 20년 가까이가 다 되어가는데도 내부 사정이 별로 나아진것이 없어보이는 이 근본적인 원인은 대체 어디서 찾아봐야 하는것일까 ?

 재미있는I(!) 북한 영화 한편을 소개해볼까 한다. 북한에서 1960년대 김일성에게서 ‘노력영웅’ 칭호를 받았다는 정춘실이란 여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정춘실은 본래 북한 자강도 지역 ‘상점기업소’ 복무원으로 일하다 기업소 소장 자리에까지 오른 여성이라고 한다. ‘상점 기업소’란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에서 일반 주민들이 정기적으로 돈을 지불하고 자신에게 필요한 생필품이나 의복등을 공급받는 자본주의 사회로 치면 마트나 백화점 비슷한 기능을 하는곳이다. 그리고 정춘실은 원래 상점기업소 복무원으로 일하다 소장이 된 여인이라 하니 남한등 자본주의 사회로 치면 일반 백화점 여직원에서 나중에 사장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 여인인 셈이다.

 ‘정춘실’이란 영화는 한마디로 김일성이 ‘노력영웅’ 칭호를 내린 이 정춘실이란 여자가 상점기업소에서 얼마나 열성을 다해 인민을 위해 일했는가를 보여주는 일종의 체제선전 영화다. 헌데 북한이 이 영화를 제작한 의도는 그랬을지언정 필자는 정작 이 영화를 보고는 코웃음이 나왔다. 북한이 애초에 이 영화를 제작한 의도는 체제선전용이었을지언정 막상 이 영화를 보니 (그것도 1960년대의) 북한체제 구조적 모순이 그대로 다 드러난 영화가 아닌가.

 영화의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정춘실이란 여자는 자강도의 한 지역 ‘상점기업소’ 복무원(일반 점원)으로 일한다. 헌데 북한에서 자강도는 일반적으로도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손꼽힌다. 그래서인지 정춘실은 상점기업소에 물품이 늘상 부족해 지역주민들이 원하는 생필품을 제때 지급해주지 못해 늘 애를 먹는다. 헌데 정춘실은 어떻게든 필요한 물품을 지급하기 위해 때론 먼거리의 기업소나 공장까지 달려가보기도 하고, 나중엔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자신이 직접 ‘상점기업소’ 인근에 텃밭을 일구거나 간이 수공업 시설까지 만들어 한마디로 ‘상점기업소’에서 직접 제품을 생산해 주민들에게 공급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는것이다.

 아마 정춘실은 그렇게 가상하게 ‘상점기업소’를 운영한 공을 인정받아 김일성으로부터 ‘영웅칭호’를 받았나보다. 헌데 생각해보자. 근본적으로 상점은 ‘물건을 파는곳’이지 물건을 만드는곳이 아니다. 간단하게 남한사회를 예로 든다면 마트나 백화점에서 기업이나 업체에서 들어와야할 물자 유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아예 해당 마트등에서 직접 논밭을 일구거나 공장까지 만들어 제품을 생산,판매할 지경에 이른다면 그게 말이 되는가 ? - 아마 남한의 웬만한 농촌 구판장에서조차도 그런 황당한 짓을 벌이진 않을것이다. -

 자강도가 아무리 북한에서 가장 낙후되고 교통이 불편한곳이라 할지라도 - 더욱이 60,70년대가 어쨌든 북한이 풍족한 시대였다면 - 물자공급이 제대로 되지않아 ‘상점기업소’에서 주민들에게 제대로 생필품등을 지급할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았다면 마땅히 그 문제가 된 유통구조를 개선해야 하는것이다. 오죽 답답했으면 정춘실이 직접 상점기업소 근처에 텃밭을 일구고 수공업 시설까지 만드는등 오만 난리를 폈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미 북한의 60년대가 사회 시스템 자체가 그렇게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는 증거다. 낙후된 지역에는 이미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이 제대로 들어가지도 않고, 주민들은 주민들대로 열악하게 살아갈수밖에 없는.

 영화를 계속 보다보면 당간부들이 공장에서 ‘상점’으로 지급되어야 하는 물품들을 중간에 미리 다 떼어먹는 모습, 심지어 정춘실과 같은 시기에 복무원으로 일한 여성이 나중에 다른 상점 기업소 소장이 되어 자신도 오만 떼어먹을 물품 다 떼어먹고 뇌물까지 받아 떵떵거리며 잘 사는 모습까지 나온다. 이쯤되면 대체 이게 북한 체제선전용 영화인가, 아니면 북한을 까는 영화인가 헷갈릴 지경이다.

 김일성이나 북한 노동당 고위 당간부들은 ‘정춘실’이 힘들고 열악한 과정에서도 주민들에게 제대로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기 위해 열성을 다하는 모습에는 감동했는지 몰라도, 어쩌다 그 지경으로 공장에서 생산되는 물품이 각 지역 상점까지 제대로 공급이 안 되는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그 문제를 보지 못했나보다. 김일성은 ‘정춘실’에게 노력영웅 칭호는 내렸을지언정 60년대에 이미 자신의 나라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다는 점을 깨닫지 못한 모양이다.

 사실 정춘실은 대단한 여성임에 틀림없다. 만약 남한에서 태어나 6,70년대를 살았어도 아마 ‘새마을운동 우수 지도자 여성부문상’ 정도는 수상하지 않았을까 싶은 열혈여성이다. 하지만 그랬을지언정 중요한것은 6,70년대에 이미 북한은 국가가 운영하는 공장등에서 생산되는 물품이 각 지역의 인민들에게 골고루 제대로 공급되어야 하는 그 중요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그대로 드러낸것이 아 ‘정춘실’ 영화다.

 북한의 사회 시스템이 6,70년대에 이미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는 증거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가 또하나 있다. 80년대에 국내에 출간되고 나중에 드라마로 만들어지기까지 한 북송교포의 친척인 재일교포가 북한에 들어가 그곳의 실상을 목격하고 쓴 ‘동토의 왕국’이란 책이다. 그 책에서 한 등장인물은 북한체제의 구조적 모순을 이와같이 말하고 있다.

 “ 가령 그해 공장의 생산량 목표가 100이었다 칩시다. 헌데 A라는 기업이 90밖
  에 생산을 해내지 못했다면 행여 그로인해 당으로부터 질책을 받을까봐 100을
  초과한 110의 생산량을 냈다고 ‘허위보고’를 합니다. 그럼 이번엔 80밖에 생산
  하지 못한 B라는 기업도 마찬가지로 질책을 받을까봐 A보다 많은 120이나 130
  을 생산했다고 역시 ‘허위보고’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또다른 목표생산량 미달
  인 C나 D란 기업도 역시 100이나 120보다 많은 140이나 150을 생산했다고
  허위보고를 하는. 한마디로 행여 당으로부터 목표생산량을 초과하지 못했다는
  질책을 받을까봐 서로 목표생산량을 초과했다고 ‘허위보고(!)’를 하는 그런 경
  쟁(?)이 일어나고 있는곳이 이곳 북한체제란 말이오 !!! ”

 북한이 1960-70년대에 단순한 경제수치상으로는 남한보다 다소 앞서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최악의 식량난을 겪은 90년대 보다는 그래도 사정은 나아 적어도 중산층 이상은 ‘밥은 굶지 않고 사는’ 나라였을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근본적으로 북한은 이미 60-70년대에 ‘국가가 책임을 지고 공장에서 생산되는 물자등을 골고루 지급해야하는’ 그 근본적인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었던것이다.

 결국 60,70년대에는 어느정도 밥은 굶지 않았던 북한이 그와같이 몰락한것은 사회주의 체제 자체의 근본적인 모순, 거기에 김일성의 뒤를 이어 실권자로 부상한 김정일의 전횡의 시작, 거기에 동구 공산권국가의 몰락으로 더 이상 협력하고 지원을 받은 국가들이 사라진 점등. 그 모든 것이 복합되어 오늘날과 같은 북한체제의 몰락을 가져온것이라 봐야할것이다.

 이만갑 148회(10.19 방영분) 본방을 보았을때는 솔직히 떨떠름한 감정을 감추기 힘들었다. 헌데 날짜가 좀 지난뒤 재방으로 다시 살펴보니 ‘북한이 60-70년대엔 잘 살았다는데...’라고 말하는 젊은 탈북여성들에게서 웬지모를 처량함,서글픔,측은함이 밀려들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마치 한때 좀 잘나가던 중견 기업이 하나 있었는데, 그 회사가 몰락해서 그 회사 사장 가족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해왔는데, 그 집 아이들이 거지꼴을 하고 다니는것을 보고 새로 이사온 동네 아이들이 ‘쟤네집 거지야 !!!’하며 놀리니까 그집 꼬마아이들이 “ 아냐 !!! 우리집도 옛날엔 잘 살았어 !!! 우리 아빠가...우리 할아버지가 그러는데...우리집도 옛날엔 너네집보다 잘 살았대... ” 이렇게 울며 항변하는것 같은 그런 처량함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북한이 60-70년대에 잘 살았다더라...이 환상(!)을 요즘 한국으로 들어오는 젊은 탈북자들이 갖고 있다면 그 환상이 굳이 깨지게 만들게 하고 싶지는 않다. 어차피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 대해 기왕이면 좋은말을 듣고 싶어하지 나쁜말을 듣고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테니까. 따라서 그네들이 갖는 1960-70년대에 대한 막연한 환상만큼은 그대로 소중하게 간직할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싶다.

 하지만 적어도 대한민국 땅에서 나고 자란 젊은 형제,자매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북한이 몰락한것은 그 근본을 따지고보면 결국 사회주의 체제의 근본적 모순에 있었던 것이지 단지 김정일이 그렇게 사치와 향락,부패만을 일삼아 그리된것이 아니라는것을. 북한이 멸망한것은 사회주의 체제의 근본적 모순에 세습독재로 이어지면서 생겨난 김정일의 전횡, 그 외 동구 사회주의 몰락으로 인한 국제적 고립. 그 모든 것이 복합되어 오늘날처럼 무너진 북한사회가 된 것이지 1960-70년대 김일성 시절이라고 해서 절대 대한민국보다 월등하게 잘 살았던것은 아니라는것을. 그것만은 분명히 알아두었으면 좋겠다.

"진보정치 새길 모색해야 "(한국일보) 
박정희의 '난 괜찮아'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