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와 북풍
2010-06-04 480 인문학도

아마 2008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굳이 '좌'와 '우'의 문제를 나눠서 생각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그걸 비율로 측정했을 때 나타나는 수치는 대략 2:6:2 정도가 아니겠는가, 라고 말이죠. 그리고 선거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왼쪽의 2도, 오른쪽의 2도 아닌 가운데의 6에게 얼마만큼 어필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라는 게 당시의 제 생각이었고, 이번 선거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고 봅니다.

사실 천안함으로 인한 북풍은 이번 선거에서 그다지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고 봅니다. 예전 같았으면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두려움을 느끼거나 혹은 분통을 터뜨리거나 하는 것이 '6'의 반응이었겠지만, 이미 94년의 영변 사태나 09년의 핵미사일 사태 등을 겪으면서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해 둔감해진 편이니까요. 물론 여기에는 전두환 정권이 평화의 댐을 가지고 국민 상대로 야바위를 친 것이나, 현 정권이 북한의 도발 때마다 말로는 강경대응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력한 모습을 보여온 것 등에 대한 불신도 상당부분 섞여있을 거라고 봅니다. 어쨌든 한나라당의 기대와는 달리 북쪽에서 불어온 바람은 미풍에 불과했고, 그 북풍에 어마 뜨셔라 하면서 부랴부랴 노풍을 일으키려고 했던 민주당 역시 헛된 수고를 한 셈이죠.

결국 가운데의 '6'을 움직인 것은 현실적인 문제들입니다. 충청권에서는 무엇보다도 세종시 문제가 가장 큰 이슈가 되었겠고, 기타 광역/기초단체장 선거에서는 MB정부가 자신들이 떠들던 것과는 달리 그다지 뭔가 이뤄놓은 게 없다는 걸 사람들이 실감했기 때문입니다. 처음 대통령을 뽑아줄 때에는 747공약이니 뭐니 하면서 경제불황을 탈출하고 다들 잘 살게 될 것 같은 기대에 부풀었지만, 막상 뽑아놓고 보니 잘못된 외환정책으로 환율 말아먹고, 여기에 미국발 경제불황까지 겹치면서 '검은 10월'을 겪어버렸으니 말이죠. 언론에서 제아무리 관건홍보용으로 핥아주는 기사 날려대도 실제 생활에서 체감하는 경기가 엉망인 이상 사람들이 박수를 쳐줄 리가 만무했던 거지요.

어차피 왼쪽의 2나 오른쪽의 2는 무슨 일이 벌어지든 자기 성향도 바꾸지 않고, 투표도 꾸준히 합니다. 천안함이 터졌다고 왼쪽의 2가 한나라당에 표를 줄리 만무하고, 교육감이 뇌물 받아먹고 구속됐다고 해서 오른쪽의 2가 민주당이나 다른 야당에게 표를 주지는 않지요. 결국 움직이는 건 가운데의 6이고, 이 가운데의 6을 움직일 수 있는 동력은 이념이나 인기몰이가 아닌 '돈'입니다. 살기 편하게 만들었다는 걸 피부로 느끼게 해줘야 표를 들고 움직인다는 거지요.

그러나 한나라당은 가운데 '6'의 관점에서 봤을 때 그다지 편리하게 만들어준 점도 없고, 오히려 천안함 운운하면서 사람들 마음만 불안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요즘 세상에 '전쟁을 일으켜서라도 북한을 응징하자'라고 생각하는 '6'은 거의 없으니까요. 한나라당은 이러한 판세를 제대로 읽지 못했고, 자기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들려주는 관제 언론의 여론조사 놀음에 걸려들어서 민심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던 겁니다. 그저 북풍만 열심히 부채질하면 지지도가 오를 줄로 알았던 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