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아니죠. 2009-06-27 444 인문학도 일제시대라는 것은 이미 지나간 과거이고, 일제시대라는 것은 당시의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으며, 독립운동은 어디까지나 소수의 움직임에 불과했고, 그 시대 속에서 신학문 신기술을 배워서 일제시대 이후 대한민국이 발전하는 데 기여했으므로 그 때의 일은 과거로 접어둬야 한다, 이런 식의 주장은 일제시대에 일본에 협력한 것은 친일행각이므로 모두 숙청되어야 한다, 라는 논리와 그 지향점만 다를 뿐 기본적인 작동 구조는 하나도 다를 바가 없는 소리입니다. 똑같이 일본에 협력한 경력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박정희와 백선엽과 이완용이 똑같을 순 없습니다. 우리가 '친일'이라고 간단하게 규정해버리는 용어 속에 함축된 의미가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해본다면, 한 사람이 일본에 대해 협력을 하게 된 원인과 배경, 그리고 그 작동 방식을 꼼꼼히 따져보지 않고서는 희생양을 삼는 행위든, 면죄부를 뒤집어씌우는 행위든, 둘 다 헛짓거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일단 일제시대라는 것이 당대의 사람들에게는 '양날의 검'이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선 일제에 협력했다, 혹은 일제가 만들어놓은 질서에 순응했다는 건 그 이유가 어찌되었든 식민통치의 역사를 극복해야 하는 우리의 입장으로서는 비판하지 않고 넘어가기 힘든 부분입니다. 그러나 또한, 일제가 만들어놓은 질서를 순응하지 않고서는 바깥 세상으로 진출할 수 없는, 즉 일제에 협력하거나 그 질서를 따르는 것이 뻗어나가기 위한 유일한 출구였음 또한 인정해야겠죠. 어떤 사람이 附倭者인지, 아니면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자였는지를 따지려면 저러한 사항들을 꼼꼼히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가 이런 문제에 대해 흔히 범하기 쉬운 오류는, '일제에 대한 협력'이라는 하나의 factor만으로 수많은 수의 사람들을 헤쳐모여 식으로 분류한 뒤에 일괄적으로 처리하려는 태도입니다. 그것이 일제 협력자들에 대한 전면적인 숙청이든, 혹은 전면적인 사면이든 간에 양쪽 모두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고 아직까지 씻겨지지 않은 상처들을 덧나게 한다는 점에선 동일합니다. 6.25때 그 어느 한국군 장성보다도 용맹하게 싸웠던 백선엽 장군을 협력 사실 하나만으로 폄훼하는 이나, 그러한 폄훼를 던지는 사람에게 '너나 잘해'라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이나 결국 오십보 백보인 셈이죠. 무엇 때문에 이 복잡한 문제를 '싸잡아서' 한묶음으로 해결하려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백선엽이든, 박정희든, 이근석이든, 혹은 다른 어떤 사람이든, 일제 협력 문제와 연관된 사람은 각각의 경우를 따로이 따져가면서 판단해야 합니다. 그때는 이랬으니 다들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식의 논리로는 문제 해결도 불가능할뿐더러, 우리의 후손에게도 부끄러울 짓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