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순사가 되는 이유는 따로 있다. 2009-06-22 484 인문학도 이광수의 수필 중에 <대구에서>라는 작품이 있다. 사실 말이 수필이지, 그 내용을 볼작시면 신흥 친일파 지식인(?)으로서 총독부에 조선통치에 대한 나름대로의 건의사항을 적은 글이다. 이 글에서 이광수가 취하고 있는 논리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이렇다. 1. 최근 불령선인(?)들에 의한 일련의 사건들은 불만 많은 청년들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다. 2. 이 청년들은 일본 유학을 다녀온 인텔리들이나 '생활'을 얻지 못한 룸펜들이다. 3. 이들에게 일자리를 주어 자력갱생하도록 돕는다면 위와 같은 일들은 더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어디서 많이 보던 논리다. 멀리 볼 것 없다. 바로 윗글이 주장하고 있는 게 이와 비슷한 논법 아닌가. 소위 '좌파'라고 하는 것, 혹은 '정부비판'이라고 하는 것이 그저 '돈이 없기 때문'에, 이광수 식대로 말한다면 '생활이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는 셈이다. 그야말로 소박한, 아니 소박하다 못해 순진한 발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애석하게도, 혹은 안타깝게도, 이러한 발상이 수많은 사람들을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사회의 갈등과 충돌을 '돈'의 문제로 치환하여 가진 자에 대한 못가진 자의 질투로 바라보는 논리는 일제에 의한 식민통치마저도 간단하게 정당화시켜버리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는 조선보다 더 잘 살았고, 그렇기 때문에 조선은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었으며, 그 구조 속에서 일제에 대한 저항운동을 벌이는 건 결국 '잘살지 못하는 자들'의 몸부림일 뿐이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어디까지나 '일제보다 잘 사는 것' 뿐이라는 분석은 36년의 식민통치 기간동안 수많은 지식인들을 '변절'하게 만들었던 논리이기도 하다. 이러한 논리가 내선일치를 가능하게 만들었고, 수많은 조선인들을 징용보내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원래 일본인 고등계 형사보다 조선인 순사가 더 악랄하다는 말처럼, 이런 식의 '돈 문제로 치환하기'를 잘 써먹는 사람 치고 '부유한 사람'은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오히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이런 논리를 들이대면서 다른 사람을 도맷금하고는 한다. '나도 잘 살 수 있다'라는 colonialist의 논리를 온몸으로 받아들인 까닭에, 자신 역시 언젠가는 저 '통치자'들만큼 잘 살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고 있는 까닭에 그러한 믿음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사람들을 탄압하고 억누름으로써 자신은 좀 더 '통치자'에 가까워지리라는 헛된 열망, 마치 유리천정 아래에 들러붙어 천정 너머의 세상만 바라보며 꿈꾸는 날벌레처럼 제 아래 다른 이들을 짓밟고 올라섬으로써 자기도 천정 너머의 세상으로 갈 수 있으리라 믿는 존재, 지금의 무한경쟁 시대가 만들어낸 빈곤한 영혼에 불과할 따름이다. 하긴, 이런 논리가 횡행하는 세상이고 보니, 36년의 일제 식민통치를 두고서 한국의 근대화에 도움을 주었다고 말하는 '학자'들이 버젓이 돌아다닐 수도 있는 것이긴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