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볼'의 붕괴 2009-05-31 505 인문학도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단순한 '자살'로 인식하셨다면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안가시는 게 당연합니다. 사람 하나 죽었는데, 제아무리 대통령이었다지만, 역사에 길이 남을만한 대업적을 남긴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조에게 죽임을 당한 사육신마냥 억울하게 타살을 당한 것도 아닐진대, (사실 어느 정도는 현 정권도 책임 회피는 어렵습니다. 표적수사 사실은 부인할 수 없죠.) 수많은 사람들이 거의 패닉 상태에 빠지다시피 할 정도로 애도의 물결이 흘러넘친다는 것은 자살이라는 '표면의 상황'만 보려고 하는, 혹은 그것만을 보고 '싶어하는' 이들에게는 도무지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그리고 개탄하지 아니할 수도 없는 상황일 겁니다. 하지만 '노무현'이라는 기표는 단순한 일개 전임 대통령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데 주의해야겠죠. 노무현은 일종의 '심볼', 즉 상징입니다. 오늘날 경제활동을 주축으로 자리잡고 있는 386세대가 과거 7~80년대 서울 시내에서 최루탄을 맞아가며 획득하고자 했던 가치, 즉 '민주주의'를 함축하는 가장 상징적인 인물이라는 것이죠. 87년 6월 항쟁의 주적이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과 그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했던 고 정주영 회장에게 일갈하던 젊은 변호사 출신 국회의원의 모습, 그것이 현재 노무현이 상징하는 바를 더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이미지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런 이미지는, 현재의 386세대가 가지고 있는 노스텔지어에 정확하게 부응하고 있지요. 그러한 측면이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을 탄생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했었던 건 이미 잘 알려진 점이구요. 과거 군사독재 정권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이라든가, 혹은 대통령 재임시 행했던 탈권위의 모습들, 설령 그러한 것들이 잘 꾸며진, 그야말로 '거침없는 포퓰리즘'의 산물이라고 폄하한다 할지라도 언젠가 6월 항쟁의 주력 세대가 꿈꾸었던, 그러나 3당 합당의 정치공작 앞에 허물어져버렸던 '민주주의'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맛보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노무현이라는 심볼은 막강해집니다. 게다가 이러한 심볼을 '잃어버린 10년'을 거침없이 외쳐대는, 소위 자칭 '보수'라는 이들이 앞장서서 뇌물 수수 명목으로 표적수사를 벌임으로써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해석까지 겹쳐지면서 노무현이라는 심볼이 지니고 있던 의미는 더욱 부각되어 버렸던 것이죠.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소위 '좌파정권'의 집권 아래에서 정치적으로는 별다른 격변 없이 어느새 경제주체로서 먹고 사는 문제에 침윤되었던 386세대가 최근의 정권교체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 틈바구니에서 한동안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던 노스텔지어를 다시금 현실 속으로 꺼내들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현 정권은 이러한 매커니즘 하에서 '악역'을 너무나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지요. 어찌보면 MB가 조금 불쌍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무슨 짓을 하더라도 결국 악역이 될 수밖에 없거든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멀리 와버리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이 현상을 좀 더 잘 이해하고 싶으시다면, '박정희'라는 심볼이 한국의 기존 보수 세력에게 어떠한 의미를 주었으며, 어떠한 '노스텔지어'를 불러일으키게 했는지 생각해보면 좋을 듯합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 개인의 공과 문제를 떠나서, 그 심볼이 지니는 의미는 한국의 보수 세력을 지탱하는 일종의 정신적 지주로서 기능해왔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 지주가 이미 30년을 넘게 버텼지요. 그리고 노무현이라는 '상징'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앞으로 몇십 년을 가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이제부터 MB정권은, 그리고 여기에 연합한 '보수' 세력들은 이 거대한 상징과 그에 따르는 수많은 '60%'에 대항하여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이들은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효과적인 전략을 구상하는 것은 고사하고 지금 자신들이 전략적으로 꽤나 곤란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한 듯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