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그리고 절제에 대해 2009-05-28 456 조익수 교수님 홈피에 자주 오는 사람인데 한번 글을 남겨보겠습니다. 전, 노무현을 진정한 보수주의자로 꼽는 사람입니다. 한번 설명해보겠습니다. 다른 여러 요인들이 다 중요하겠지만 보수주의자의 핵심 가치가 뭐냐 그러면 전 딱 하나 꼽겠습니다. "절제" 진보주의자라는 사람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는 명분 아래 뭔가 바꾸고 뒤집고 헤집는다면 보수주의자는 그러한 명분 때문에 현존하는 절차와 제도를 훼손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자유시장 원리도 절제입니다 괜히 아는 척 나대지 말고 여럿이 공정히(중요한 것은 공정하다는 겁니다.) 참가한 시장의 뜻에 맡기자. 이게 절제입니다. 법치도 절제입니다. 맘에 안드는 놈 하나 검찰 경찰 동원하고 법원장에게 메일 돌리게 해서 크게 혼내주고 싶지만 할 수 있는 것은 법과 절차에 따른 것일 뿐이라는 절제. 아무리 마음에 안들더라도 지켜줄 것은 지켜주는 것 그게 바로 절제이자 보수의 요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기준에 따르자면, 이승만은 봉건적 대한제국의 유산에 불과했고 박정희는 일제국주의의 한국판 변형이었습니다. 물론, 일제는 지들을 위해 일했기에 반민족적이었지만 박정희는 우리 한번 잘 살아보자고 나섰기 때문에 그가 아무리 일본군 장교 출신이어도 저는 민족주의적이 측면이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극우주의자라 해도 좋고, 때에 따라서는 스탈린식 사회주의자라고도 생각합니다. 극과 극은 통하니까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에 온 국민이 애도하고 있습니다. 다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들 합니다. 왜 그럴까요. 예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절제를 알게 되어서 입니다. 대통령은 만능이 아니라는 말을 알게 되어서 입니다. 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국정원 검찰 국세청 동원해서 길게는 3~4년, 짧게는 1~2년 만능 해결사 역할을 할 수 있지만 하지 않겠다는 것,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라는 것, 그것을 나중에 변명하는 차원이 아니라 실제 행동에서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지지자들 입장에서는 답답할 노릇이죠 총선에서 과반 몰아줬는데 뭐하느냐 화끈하게 한판 벌려야 하지 않느냐. 그래서 진보도 노무현 대통령을 버렸습니다. 법률가로서, 체질적으로 보수적일 수 밖에 없는 사람이 한국적 특수성 때문에 거리에 나앉는 인권변호사가 되었던 것과 같은 이치라고 봅니다. 그런데 MB가 들어와서 절제가 없는 권력이 무엇인지 여실하게 보여줬습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깨달은 겁니다. 아무런 힘도 없어뵈던 대통령이고 무능하고 나약하게만 보였던 대통령이었는데 가끔가다 이상한 형이상학적 궤변이나 늘어놓는 대통령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참고 참고 또 절제하는, 보수주의의 가치에 충실한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을. 그래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이 나오는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