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보수가 없어서 나타나는 위기 2008-08-16 527 마리 마리님의 글 ------------------------------------ 저도 지난 정부 시절엔 탄핵문제와 한미FTA문제가 불거질 때 외엔 먹고사는 문제나 신경썼지 정치는 방관했던 사람입니다만, 지금은 시간만 나면 인터넷을 뒤적이고 온갖 매체와 기사, 칼럼, 토론방을 들락거리며 삽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나라는 생각에 한숨 반, 울화통 반 그렇습니다. 저는 제가 한나라당을 한번도 지지해본적 없다는 의미에선 좌파겠지만 스스로는 보수개혁을 지지하는 중도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대선땐 노무현을 이번 대선엔 문국현을 선택했지만(지금은 지지철회했습니다) 이명박보다는 이회창 씨가 대통령이 되었더라면 과연 이정도까지 왔을까 생각하는 정도의 물러터진 서울서민일 뿐이죠. 저는 민주당도 지금이야 야당노릇하느라 궁색해졌지만 충분히 보수화되었다고 보고, 민노당이나 진보신당은 정책을 들여다보면 맘에 드는 부분이 많지만 가까이 가보면 내부이념논쟁에 너무 치우쳐 있어 한나라당만큼 수구적 기득권 계층의 몰염치한 이미지는 아니지만 일반서민의 접근성은 역시 떨어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김상조 교수나 송기호 변호사 같은 좌파 지식인 계층의 의미있는 행보에는 호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황석영씨가 그랬던가요, 개혁이 합리적 보수가 늘어나는 것이라는 말에 저는 적극 동의합니다. 지난 정권에 대해 비판하던 이념적 좌편향이야 좀 수정하던지 말던지(솔직히 어떻게 수정하겠다는건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만-저 이념적 회색분자 맞습니다) 소외감에 시달리는 서민과 노동자 계층, 민주주의에 대한 좌파의 건강한 문제제기를 보수가 기득권계층을 설득하고 합리적으로 수용하는 정책을 마련하여 펼치는 것, 이게 제가 보수정권에 바랬던 ＇합리적 보수＇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안하무인으로 몰아붙이는 보수집권세력의 뻔뻔함은 민주화세대들이 이루어온 민주주의의 파괴라는 위기감에 충분히 공감하게 합니다. 저는 정말 우리 사회가 이렇게 극한으로 치닫는 거 싫습니다. 지금이라면 몸은 움직이고 있지 않습니다만 하루에도 몇번씩 좌파쪽이 밀리지 않도록 뭘 좀 해야하는거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이 정부 진짜 해도해도 너무 합니다, 거기다 더 무서운 건 홍준표 원내대표에 대한 한나라당 내부비판에서 볼 수 있듯이 여당 내에서 제동장치를 스스로 파괴하는 데에 있습니다. 홍준표 의원 개인적으로 호감은 없지만 임태희 정책위 의장과 함께 그나마 배포가 있고 야당을 아우를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촛불집회 초기에 그나마 진화 기미가 처음 보인 것이 이들의 청와대 비판 행보였다고 기억합니다) 내부비판으로 꼬리내리는 모습보고 급실망했습니다. 이대로라면 부진한 좌파세력이지만 정면대결국면에서 그들을 지지하는 게 제 양심과 정치적 균형감각에 맞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전에 우리 나라와 사회가 진짜 발전해 나가려면 이번에야말로 보수가 자기들을 스스로 구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좌파에 주도권을 주지 않으려면 내부비판의 목소리를 모아 젊고 깨끗한 보수세력을 모으고 여론을 내부수렴해서 정부비판을 제대로 담당하고 오히려 야당을 무력화(야당에겐 입지가 좁아지는 일이겠지만 ㅠ.ㅠ)하는 구도를 만들어야 거대공룡여당이지만 대의민주주의 자체를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국민들을 안심시키고 국정이 제대로 돌아간다는 신뢰감(이라고 쓰고 환상이라고 읽습니다)을 주지 않겠습니까? sbs토론인가에 전원책 변호사 나오셨을 때 하도 호통을 시원스럽게 치셔서 좌파가 할 말 잃고 입다물고 앉아있었던 장면이 그 예랄 수 있겠군요. 이렇게라도 해야 대의 민주주의의 진짜 위기를 초래하지 않을 거 같은데 한나라당 내부에선 이런 위기감도 없이 전여옥식 막말하기나 들리고 홍준표는 두드려서 다시 야당 윽박지르기나 하라고 내보내고... 특히 좌파가 위수김동이나 종북주사파의 망령을 쫓아내야하는 것 만큼이나 보수는 조갑제씨라는 살아있는 선동망령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발전하지 못한다고 봅니다. 보수라는 이름으로 행세하려면 조갑제식 검열을 통과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져야만 하는 이 사회의 노령보수현실을 볼 때 세대교체라는 그나마 현실적 대안외에 합리적 보수의 입지는 너무나 좁고 온건하고 산발적이어서 목소리의 존재자체가 희미하기 짝이 없습니다. 조갑제씨 개인의 열정과 확고한 반공의식이야 보수에겐 하나의 이정표일지 몰라도 그 극우적 선동방식과 보수의 도덕적 무장해제 옹호는 정말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보수의 아이콘일 뿐입니다. 이분과의 정치적 결별선언없이 그리고 그 방식의 위험성에 대한 충분한 비판없이는 합리적 보수는 끊임없이 희롱당하고 좌파로 몰리고 사상적 배신자로 매도당할 험난한 정치적 여정이 놓여있으니 누구도 용기있게 나서지 않고 눈치만보는 형국입니다. 좌도 우도 이념을 바탕으로 할 때 끊임없이 더 우에 더 좌에 서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더욱 악순환에 빠져들구요. 저는 그래서 끊임없이 자신들의 이념적 순수성을 부르짖는 좌, 우 근본주의자들이나 종교적 근본주의자들 모두를 가장 경계해야할, 아니 해를 끼치는 세력으로 봅니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덤블도어 교장의 말을 장하준 교수가 언급한 게 있습니다. ＇선택은 (선과 악이 아니라) 옳은 것과 쉬운 것 사이의 선택이다.＇ 모든 것을 이념으로 치환하려는 흑백논리는 여기서 절대 옳은 것이 아니라 쉬운 것이라는 것을 아는 ＇합리적 보수＇가 어렵지만 옳은 행보를 만들어나가지 못한다면 위기는 진짜가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