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와 민족주의 2008-07-31 1142 인문학도 해방 이후 김구의 행적 때문에 김구나 임시정부에 대해서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각들이 있는 듯합니다. 그분들로서는 용납하기 힘든 존재인 김일성에게 대화를 시도하고 마지막까지 남북 공동 노선을 꾀했다는 점에서는 아무래도 공격에 노출되기 쉬울 수밖에 없겠지요. 허나 조금만 면밀하게 들여다보면, 이러한 시선은 전형적인 이념 추수주의의 오류에 빠져있음을 엿보게 됩니다. 김구에 대한 평가는 더도 덜도 없이 '민족주의자'라는 한 마디로 요약됩니다. 역사에서는 김구를 민족 지도자 내지는 일생을 헌신한 독립 운동가로 추앙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김구라는 인물이 뛰어난 식견과 인품을 지닌 인물이었다고 추측하는 것은 또한 사실과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일단 김구는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운동가에 가까운 성품을 지닌 사람이었고, 때로는 행동이 도를 지나쳐서 과격한 노선을 선택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고등 교육을 받았던 경력은 없으며, 이후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면서도 이론적인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조금 경박하게 표현한다면, 무식하기에 용감했던 운동가가 바로 김구의 실제 모습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김구를 폄훼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이 지금 일부 우파 논객들이 김구에게 씌우고자 하는 혐의(?)를 벗을 수 있게 해 주는 요소이기 때문이지요. 김구의 모든 정치적 실천을 지배했던 원리는 단 한가지, 민족주의 뿐입니다. 그것도 이론적으로 철저하게 무장한 민족주의였다기보다는 대체로 심정적인, 혹은 감상적인 선을 넘어서지 않는 수준의 '범박한' 민족주의였다고 봐야 합니다. 이것이 일종의 원리주의로 기능하면서 '민족'을 제외한 다른 이념적 요소들은 철저하게 무시했던 것이 김구의 기본적인 스탠스라고 보는 게 정확할 것입니다. 이것은 김구가 이승만이나 김정일과 다른 규범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가 됩니다. 이승만이나 김정일은 자신들의 지지 기반이었던 미국과 소련의 정치적/사상적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고, 오히려 이러한 지지기반의 확보를 위해 두 강대국이 견지했던 토대를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입장을 취하게 됩니다. 이 결과가 1948년 대한민국의 건국과 1949년 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성립이지요. 그러나 김구에게는 이러한 이념적 대립, 혹은 냉전 체제의 정치적 대립이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없었습니다. 나쁘게 말하자면 이러한 정치적 구도를 이해할만큼 머리 회전이 빠른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고, 좋게 말하자면 이념의 문제보다 민족의 문제를 앞선 것으로 파악하고 민족을 이념의 윗줄로 넣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죠. 민족의 문제를 말하는 데 있어서 소극적인 한국의 우파 논객들로서는 이러한 김구의 성향이 마뜩찮게 보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보수'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민족 문제를 다루는 데에는 인색한 것이 한국 우파의 특징 가운데 하나니까요. 더군다나 이념적으로 결코 병립할 수 없는 김일성이라는 존재와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를 시도했다는 것만으로도 김구는 뭇매를 맞아야 할 인물처럼 보일 겁니다. 그러나 김구의 입장에서는 김일성이 되었든 박헌영이 되었든 항일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인물이라면 그가 택했던 민족 원리주의의 입장에서 하등 거리낄 것이 없는 대상이었을 것이고, 그런 까닭에 별다른 저항감 없이 김일성과 대화를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요는 이렇습니다. 8월 15일을 광복절이 아닌 '건국절'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일반 시민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민족주의와의 정면 대결을 시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한반도 민족주의의 아이콘과도 같은 김구라는 인물의 행적을 정면으로 걸고 넘어져야 하는 작업이니까요. 그러나 일제 식민치하 36년이라는 경험을 가지고 있는 입장에서 과연 저러한 도전(?)을 쉽게 납득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우파 내에서야 그런대로 합리적인 주장인 것처럼 받아들여질지 모르겠으나, 민족의 문제에 대해 아직까지도 심정적인 성원을 포기하지 않은 일반 시민들을 상대로는 쉽지 않은 작업이 될 겁니다. K리그나 기타 국내 스포츠에는 별 관심도 없으면서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국가대항전'에서는 폭발할 듯한 기세로 달려드는 것이 한국 국민들의 특성이지요. 그만큼 내면에 작동하고 있는 민족주의의 시스템이 강고하다는 것인데요, 과연 여기에 도전장을 내미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지 의심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