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과 광복 2008-07-31 689 인문학도 2차대전 당시 프랑스의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1940년 당시 프랑스가 함락될 때 간신히 빠져나갔던 프랑스 육군 준장 드골은 자유프랑스 정부를 세웁니다. 일종의 망명정부지요. 그리고 프랑스 내에는 나치에 의해 괴뢰정권인 비시(Vichy) 정부가 들어섭니다. 당연히 연합국은 자유프랑스 정부를 프랑스의 합법 정부로 인정했고, 추축국은 비시 정부를 합법 정부라고 선언했지요. 이후 전쟁이 기울어갈 무렵, 드골은 파리로 입성합니다. 그리고 당시 프랑스 내에서 활동하던 레지스탕스 계파(자유프랑스 계열과 공산당 계열)를 아우르고 정식으로 프랑스 정부를 재건하지요. 국가의 기본 3요소가 결여되었으므로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면, 2차대전 당시 프랑스의 합법 정부는 비시 정부가 되어야 맞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역사서에도 비시 정부를 합법적인 정부라고 기록하지는 않습니다. 꼭두각시 정권이라고 규정하고 있지요. 그리고, 당연한 말로겠지만, 비시는 종전 이후 대독 협력분자로 분류되어 사형을 선고받습니다. 상해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인하기 힘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던 당시에 사실상 '한국'이라는 정체성을 이어가면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정치집단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임시정부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공화국'이라는 개념이 성립된다는 점에서도 정치적인 상징성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임시정부 수립 이전까지는 독립운동의 방향에 대해 여전히 복벽주의, 즉 무너져버린 대한제국을 되살리자는 목소리들이 상당히 높았습니다만, 3.1운동을 거치고 이에 대한 교훈으로서 해외에 임시정부를 수립하면서 비로소 공화제라는 형태를 지향하는 독립 운동으로 초점이 모아지게 됩니다. 물론 동북아 정세가 급박해지면서 집단지도체제로 탈바꿈하게 되기는 하지만, 이는 상황에 발맞추기 위한 임시적인 개편이지 기본적인 지향점 자체가 달라졌다고 볼 수는 없겠지요. 사실 건국절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임시정부의 정통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글들을 보면, 대체로 임시정부 자체에 대한 재평가라기보다는 김구 개인에 대한 공격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김구가 해방 이후 김일성과의 대화를 시도했다거나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반대했다는 이유 등으로 인해 '친북좌파'라는 레테르와 어느 정도 부합된다는 판단이 서 있기 때문인 듯합니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임시정부 = 김구'는 아니라는 점이죠. 역사 속에서 상해 임시정부라는 존재가 수행했던 해외 망명정권으로서의 역할이라든가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건국에 끼친 정치적/역사적인 영향력을 간과한 채, 대표격에 해당하는 인물의 행적을 '폭로'하며 이것이 마치 임시정부와 광복의 진실인 양 호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약간 뒤집어서 생각하면,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역사의 흐름을 파악하려는 구시대적 접근법이 아직까지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아래 어떤 분께서도 지적하셨습니다만, 김구를 깎아내린다고 이승만이 재평가되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임시정부를 깎아내린다고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이 강화되는 것도 아니겠구요. 20여년 동안 임시정부가 항일투쟁을 해왔던 이유가 분단된 국가 건설에 있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해방 이후 김구의 행적을 '친북좌파'라는 프레임으로 끼워맞춰 볼만한 문제가 아닐 것인데, 마치 김구가 김일성을 찬양했고 이승만을 부정했다는 식의 구도로 몰아서 1950년대 이후의 이념 대결 프레임을 김구나 임시정부로까지 소급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인정하는 것이 그다지도 어려운 일인지, 관련된 논의들을 읽으면서 씁쓸함을 지우기 힘든 건 어쩔 수 없는 일인 듯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