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법리공방이 되겠죠...
2008-07-16 803 인문학도



내용상(?)에 있어서는 봉하마을 측이 청와대 기록을 '유출'했다는 지적은 별 설득력이 없습니다. 일단 청와대 측에서 인선에 어려움이 있었다느니 국정을 혼란스럽게 했다느니 운운하면서 봉하마을의 자료 유출을 그 원인으로 지적하는 건 넌센스입니다. 이전 정권의 보호를 위해서 공개 시한이 걸려있는 자료가 아니라면, 국가기록원에 열람 신청을 하는 것만으로 간단하게 이전 정부가 남긴 자료들을 열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형식상에 있어서는 봉하마을 측이 자료를 '불법적으로' 유출했다는 지적도 얼마든지 가능하기는 합니다. 기록물관리법상으로 따지더라도 현재 봉하마을 측은 해당 자료를 가지고 있을 권한이 없습니다. 자료의 소유권은 어디까지나 국가기록원에 있으며, 노무현 씨는 이에 대한 열람 권한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형식적으로 따진다면 이 부분은 위법의 소지가 다분하겠지요.

그러나 문제는 지적하신 것처럼 '열람에 최대한 편의를 제공한다'는 조항 때문에 앞의 위법 사실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전체적으로는 무혐의 처리가 될 가능성이 상존합니다. 봉하마을 측에서 온라인으로 열람 가능한 인프라를 구축해주면 자료는 언제든지 반환하겠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 사항에 대해서는 이미 현 정부가 인수위 시절에 봉하마을 측과 구두 합의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청와대는 극구 부인하고 있습니다만) 봉하마을 측이 인수위의 사전 양해를 얻었고, 별다른 뚜렷한 이유 없이 온라인 열람 인프라를 구축해주지 않은 정부 측의 의무 불이행을 문제삼는다면 청와대의 의도대로 되기는 어려울 겁니다. 물론, 여기에는 치열한 법리 공방이 따를 수밖에 없겠지만요.

하지만 법리 공방까지 가게 되면 손해를 보는 건 현 정권입니다. 일단 검찰과는 달리 법원은 비교적 정치적 중립을 잘 고수하고 있는데다가, 일반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누가 봐도 현 정권이 전직 대통령을 '괴롭힌다'고 비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전직 대통령들처럼 서울 시내에 비싼 저택 지어놓고 거기서 정치적 막후 세력 노릇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 고향 내려가서 오리 키우는 사람 불러다가 기록물 유출이네 뭐네 하면서 괴롭히면 여론이 곱게 볼 리가 없지요. 게다가 이미 이번 공방에서 인터넷과 인트라넷의 차이조차 모르고 해킹 위험 운운할만큼 컴퓨터 기술에 대한 무지를 여지없이 드러낸 바 있는 청와대입니다. 인터넷 상에서 본인들이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는 사실도 잘 모를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법리 공방 들어가면, 그야말로 개그콘서트 쯤이라고 여길만한 사람들이 많아지겠지요. 게다가 상대방은 이지원 시스템 아이디어로 특허까지 받은 적이 있는 사람입니다. 설령 봉하마을을 상대로 법리 공방에서 승리한다 하더라도 청와대의 위신은 한없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elf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에서도 엿볼 수 있지만, 사실 여부를 떠나서 '현 정권이 정치적 의도로 전직 대통령을 괴롭힌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는 것만으로 이미 청와대는 패착에 빠진 겁니다. 설령 봉하마을 측에 유죄 판결이 난다 치더라도 사람들은 사법부의 중립성을 의심하지, 봉하마을의 의도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대두될 가능성은 적습니다. 청와대로서는 다소 억울할 노릇이겠지요. 그래서 정치라는 게 무섭습니다. 신뢰를 한 번 잃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어주지 않는 게 소위 민심이라는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