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2008-07-16 782 인문학도 사실 이 문제의 핵심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습니다. 이지원(e知園) 시스템이라든가 원본-사본 논란, 하드디스크 논란 등은 청와대의 딴지걸기용 멘트 혹은 디지털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발언이므로 그다지 고려의 사항이 되지 못합니다. 문제는 참여정부의 기록물을 어떻게 처리했느냐에 대해서 위법 여부를 어떻게 판단할 것이냐에 있습니다. 역대 대통령들은 대개 자기 정권의 기록을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전두환도, 노태우도, 김영삼도 이후 자신에게 부메랑이 될 수 있을만한 자료는 전부 파기했지요. 심지어는 김대중조차도 노무현 정권에게 별다른 자료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노무현 씨는 이러한 관행(?)에 대해서 좀 아쉽게 생각했던가 봅니다. 전직 대통령의 신변상의 보호를 위해서 기록물을 파기하겠다는 생각 자체에는 공감을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중에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을 법한 자료들을 완전히 파기한다는 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손해가 된다고 생각했던 듯합니다. 그래서 이지원(e知園) 시스템을 구축하고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을 제정해서 청와대의 기록물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를 시도합니다. 그리하여, 각 정권은 차기 정권이 청와대를 인수하기 이전에 자기 정권의 기록물들을 국가기록원에 이관하는 작업을 거쳐야 합니다. 모든 기록물을 이관한 뒤에는 기록물이 담긴 하드디스크 및 각종 저장매체를 '물리적으로' 완전히 파기합니다. 국가기록원에 이관된 자료는 그 성격에 따라서 이전 정권에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는 자료는 10~30년 가량의 엠바고 기간을 갖습니다. 단 전직 대통령은 이 기록물에 대해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도록 접근을 허용합니다. 그리고 청와대 역시 필요에 따라서 국가기록원에 열람을 청구하면 이전 정부가 남긴 기록물 가운데 엠바고에 해당하지 않는 것들을 열람할 수 있습니다. 즉, 정권 이양 이전에 모든 기록물들을 파기하는 대신에 국가기록원이라는 제3자에게 기록 관리를 맡김으로써 이후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자료들을 보존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전직대통령의 열람 권한'에 대한 것입니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 의하면 국가기록원(혹은 정부)은 전직 대통령이 자신과 관련된 자료를 열람하는 데에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낙향한 노무현 씨의 입장으로서는 이 기록물들을 열람하기 위해 성남까지 올라와야 한다는 것이 '편의'와는 상당히 어긋나는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인수위가 정권을 이양받던 당시에는 아직 국가기록원의 온라인 열람 인프라가 구축되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인수위의 양해 하에 국가기록원에 넘긴 자료의 '복사본'을 가지고 가서 봉하마을의 인트라넷 안에 깔아둔 것입니다. 이는 원칙상으로 보자면 분명히 '위반'에 해당하는 사항입니다. 다만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앞서 언급했듯이 '전직대통령의 열람에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한다'라는 원칙과 현 상황이 위배된다는 점이겠지요. 전직 대통령은 자료의 열람 권한은 있어도 '소유' 권한은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열람이 불가능한 상황이므로 한시적으로 소유하겠다는 것인데, 충분히 '편법'으로 비판받을만한 소지가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이유 때문에 지금 정부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법적으로 처리하기에도 애매한 것이지요. 사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간단합니다. 국가기록원이 노무현 씨에게 온라인 열람 서비스를 제공하고, 해당 자료들을 반환받으면 그만인 일입니다. 이는 봉하마을 측에서도 인수위 시절부터 주장하던 것이기도 하구요. 청와대와 봉하마을 사이에 자꾸 잡음이 발생하는 것은, 이미 인수위 시절에 양해했던 사항에 대해서 이제 와서 다시 말바꾸기로 걸고 넘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굳이 이 문제를 걸고 넘어져서 봉하마을 측과 법적 공방을 벌여봐야 득이 될 게 전혀 없는데 말이죠. 행여나 이걸 빌미로 보수세력의 결집을 노릴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청와대는 정말로 정치 감각이 떨어지는 집단이라고 봐야 되겠죠. 게다가 애초에 저 문제만 깔끔하게 짚고 넘어갔으면 큰 탈이 없었을 텐데, 이렇게 이야기가 정리되기 이전에 청와대에서 내놓은 '괴담'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이를테면 봉하마을이 자료를 전부 가져가서 자기들이 국정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느니 (그렇다면 이전 대통령들은 다들 초능력자? 게다가 국가기록원에 열람 신청하면 상당수의 자료들이 열람 가능한데?), 봉하마을이 가져간 자료가 인터넷에 의해 해킹될 우려가 있다느니 (물리적으로 연결이 차단된 서버를 해킹할 수 있으면 세계정복도 가능하겠죠), 서버를 통째로 들고 갔다느니(청와대 서버를 들고 갔으면 지금 청와대에서는 내부통신망을 어떻게 쓴다는 건지...) 하며 스스로 디지털에 대해 무지함을 드러내는 발언들을 반복했다는 것이죠. 이게 청와대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키는 데 일조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또 남 탓만 한다'라는 비아냥이 나오도록 자초한 셈입니다. 결국 청와대로서는 이젠 정당한 요구를 해도 비웃음을 살 수밖에 없는 고약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지원(e知園)은 쉽게 말해서 통합자료관리시스템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자료의 정리와 검색, 열람, 출력 등을 총괄하는 시스템으로서, 정부의 문서 관리를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만든 소프트웨어입니다. 비유하자면 워드나 액셀 같은 문서 작성 프로그램에 검색+열람+관리+감시 기능이 포함된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그럭저럭 비슷할지 모르겠습니다. 액셀 파일을 한글2007에서 불러올 수 없는 것처럼, 이지원에 의거한 정부 문서들은 오직 이지원이 깔려 있는 컴퓨터에서만 열람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복사나 출력 등 사본을 만드는 행위를 했을 때에는 출력을 시도한 ID와 시간, 횟수 등을 역시 기록으로 남겨두는 꽤 똘똘한 녀석이죠. 이번 사태의 본질과는 큰 관계가 없는 사항이므로 크게 신경쓰지는 않아도 되는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