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납부 = 애국자? 2010-04-05 461 인문학도 얼마전에 2009년도 연말정산 환급금을 받았다. 그래봐야 몇만 원 되지 않는 작은 액수지만, 그래도 추징당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 만족한다. 반면 나와 같이 근무하는 선배는 몇만 원의 추징금을 냈다. 역시 얼마 되지 않는 돈이지만 선배는 썩 기분이 좋지 않은 눈치였다. 어차피 월급쟁이들이야 유리지갑인데 무엇을 덜 냈다고 또 내라고 하는 것인가, 선배의 얕은 한숨에는 그런 목소리가 담겨 있는 듯했다. 우리는 세금을 낸다. 하지만 '애국심에 들끓어서' 세금을 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만일 내지 않을 수만 있다면 누구든지 세금을 내지 않으면 좋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세금을 낸다. 그것이 '의무'이고 '준법'이기 때문이다. 만일 누군가가 '나는 세금을 내고 싶지 않으므로 내지 않겠다'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탈세 혐의로 처벌을 받거나, 혹은 어찌어찌 법망을 피해간다 하더라도 정직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타인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다. 납세의 의무, 교육의 의무, 국방의 의무, 근로의 의무. 이것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주어진 4대 의무이다. 하지만 이러한 의무를 '국가에 대한 충성' 차원에서 수행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근로와 교육은 자기계발과 생활의 영위를 위하여, 납세와 국방은 국가에서 부과하는 최소한도의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그 의무를 다할 뿐이다. 내가 이런 의무들을 수행한다고 해서 내 주변의 누군가가 '애국자구나'라고 칭찬해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고의적으로 이러한 의무를 방기한다면 사람들은 비난할 것이다. 그러기에 의무라 하는 것이다. 나는 이명박씨나 정운찬씨의 병역 면제를 둘러싼 '진실'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 문제에 대해 확실한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본인들 말고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들의 병역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잡음'이 일고 있으며, 이는 이들의 병역 면제가 국민에게 부과되는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음을 반증하는 부분이다. 만일 면제를 받아야 할 뚜렷한 사유가 있고, 그에 대해 누구든지 수긍할 수 있다면 아무도 이들의 병역에 대해 문제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유가 분명치 않고, 똑같은 국민으로서 그 의무를 다하고 있는 타인들이 납득하지 못하기에 자꾸만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것을 두고 '꼭 병역의 의무를 다해야만 애국이라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하는 것이 애국자가 아니라, 하지 않은 것이 범죄자다. 미덕과 의무는 결코 동의어가 아니다. 혹자는 말할는지 모른다. 이들은 각기 기업인과 학자로서 사회에 끼친 영향이 지대하므로 병역 면제 정도는 눈감아줄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그러나 그것은 결과론에 불과하다. 이들이 병역을 면제받던 시점에서는 이 사람들이 기업인이든 학자든 사회에 기여할만한 인재가 되리라고 예측할 수 있었을법한 근거가 전무하다. 차라리 국가대표 선수로 출전하여 세계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체육인이라면 모를까, 아직 자신의 경력조차 제대로 시작하지 않은 시점에서 병역 면제를 받은 것을 두고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었으니까'라고 말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주장이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그만큼 사회에 대한 공헌도가 높으니 봐줄 수도 있다 치자. 그렇다면 병역의 의무를 다하고서도 자신의 분야에서 업적을 이룬 사람들은 무엇이 되겠는가? 정운찬 씨가 학자로서 후학들을 길러낸 공을 인정받는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대학 교수 중에 병역의 의무를 마치고서도 자신이 속한 학계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인물들은 넘쳐난다. 만일 같은 논리로 따진다면 이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병역 면제의 혜택을 주었어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은가? 기업인이나 정치가 또한 다르지 않다. 후일의 성공 여부를 두고서 병역 면제의 혜택을 논한다면 아마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 학자, 기업인, 정치가들이 넘쳐나게 되지 않겠는가. 어차피 기업인이든, 학자든, 정치가든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은, 병역 의무 이행 시점으로부터 한참 지난 중장년 시기에 접어들어서나 될법한 일이다. 20대가 전성기라는 운동선수의 경우라면 모르겠으되, 병역 소집 시점에서 딱히 국가와 사회를 위해 공헌한 바도 없고, 그렇다고 누구나 수긍할만한 면제 사유를 가지지도 않은 사람들의 병역 의무 불이행이 용납되기는 어렵다. 그렇게 제멋대로 적용할 수 있는 원칙이라면 애초에 원칙이랄 것도 없고, 의무랄 것도 없다. 누가 되었든 '나는 나중에 크게 성공할 사람이니까'라는 명목으로 적당히 병역을 회피한 다음에, 나중에 성공하면 그만 아니겠는가. 뭐, 나중에 성공하지 못하면 그때 가서 벌금을 물든 징역을 살든 하면 될 일이겠고. 대통령이나 국무총리이기 때문에 군대를 다녀와야 하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에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이다. 오히려 '국민의 대표'이기에 의무를 이행하는 데 있어서도 '모범'을 보여야 하는 것이거늘, 모범은커녕 기본조차 못하는 이들에 대해서 옹호하고 감싸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하물며 천안함 사고로 수십 명의 아까운 젊은이가 목숨을 잃은 요즘같은 때에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아깝게 죽어간 그 젊은이들 중에서 나중에 훌륭한 기업인, 학자, 대통령이 될 사람이 없었다고 그 누가 감히 장담할 수 있겠는가. 국민으로서 제 의무를 이행하다가 자신의 미래조차 잃어버린 사람들 앞에서, 그러한 의무를 살살 피해가며 제 일신의 영달을 추구한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또, 그런 사람들을 옹호하겠다고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식의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은 어찌 고개를 들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