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그리고 병자호란 2010-04-04 398 인문학도 인조반정을 일으켜서 권력을 잡았던 서인 집단은 전형적인 유교 원리주의자들이었다. 반정 이전의 북인 집단이 실리외교를 주장했던 것에 반해, 반정 이후의 서인들은 '오랑캐'인 청나라를 배격하고 '형님의 나라'인 명나라를 돕는 것이 의리라고 하였다. 이미 청의 전면적인 공세 아래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명을 도와야 한다는 주장은 그 자체는 꽤나 멋있는 말일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해본다면 그야말로 '자기 손으로 자신의 사형선고'를 쓰는 격에 지나지 않았다. 명을 파죽지세로 꺾어나가던 청이 변방의 조그마한 나라가 이렇듯 도발을 거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나다를까, 청은 대군을 일으켜서 병자년에 조선을 침공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청을 정벌하자'고 주장했던 대부분의 사대부들은 자기 일신의 안위만을 생각하여 도망치기에 급급, 결국 인조는 대피할 타이밍조차 제대로 잡지 못해서 남한산성에 고립되고 만다. 100여일 간의 저항(?) 끝에 인조가 직접 삼전도까지 나아가 무릎을 꿇고 예를 올리는 치욕으로 병자호란은 마무리된다. 물론 이 기간동안 조선의 수많은 백성들이 전화의 희생양이 되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청을 막을 실력도, 청에 대비할 대책도 없이 전쟁만을 부르짖었던 유교 원리주의자들의 오만이 낳은 결과가 이렇다. 나는 애국심에 피가 끓어 포고문을 외치는 저런 류의 사람들이 그다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현재 전시작전권이 미군에게 있어서 한국군이 독자적으로 전쟁을 일으킬 수 없다는 간단한 사실조차 왜 알지 못하느냐고 따질 생각도 없고,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고 외치는 당신들이 바로 전시작전권 회수를 반대했던 그 일당들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일깨워주고 싶지 않다. 어차피 이성 따위는 이미 마비된 상태에서 외치는 악다구니, 혹은 자기도취의 극단에 휘말려서 내뱉는 말 따위에 논리적인 반박을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기 때문에. 다만,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은, 그렇게 전쟁까지 불사할 정도로 애국심이 들끓는다면, 말로 떠들기 전에 직접 총 들고 전쟁터로 나서달라. 기왕이면 자살어뢰 부대라도 조직해서 이번 사건의 '범인'인 북한 해군의 함정들을 싸그리 침몰시키는 것은 어떤가? 그야말로 통쾌한 복수가 아니겠는가? 그대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희박해진 요즈음의 젊은이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라도, 그대들이 직접 진두에 서서 그 피끓는 애국심의 결실을 보여주기 바란다. 이 성명서에 이름을 기재한 어르신네들이 조만간 '구국자살어뢰단'을 조직했다는 훈훈한 소식을 신문기사에서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