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자면 이런 이야기입니다. 2010-01-02 387 인문학도 한국 사회의 통념상 부모는 자식에게 헌신하고, 이러한 헌신으로 성장한 자식은 이후 노동력을 상실한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매우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현재의 60대를 구성하는 세대들은 보다 젊었을 적에 자신들 경제력의 대부분을 자식을 교육시키고 키워내는 데 투자하지요. 문제는 환류, 즉 이러한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성장한 자식 세대가 거꾸로 경제력을 잡게 되면 그때부터는 부모를 봉양하며 살아가야 될텐데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환류가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렸다는 점입니다. 즉, 자식들이 부모를 봉양하며 사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기지 않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2~30대가 부모에 대한 봉양 의지 자체를 방기하는 건 아닙니다. 간혹 신문지상에는 부모를 내팽개친 자식에 대한 이야기들이 가십거리처럼 등장하긴 합니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부의 문제고, 대부분은 부모 세대가 생존하기 위한 경제력을 제공하는 것에 그다지 저항감을 느끼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개인에 따라서 세부적인 차이는 있겠지만요. 그러나, 문제는 '여기까지'라는 겁니다. 부모를 경제적으로 먹여 살리는 일까지는 받아들이지만 그렇게 자신이 봉양하는 부모의 '지식'이나 '사상'까지 존중하고 받아들이려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부모 세대가 가지고 있는 유-무형의 자산이 자식들에게 필수적인 요소였습니다. 그래서 자식들은 부모를 먹여 살리는 일뿐만 아니라, 부모 세대의 지식과 사상을 세습하는 일을 당연스럽게 여겼고, 이를 생활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그러나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이런 순환고리는 깨져버리고 맙니다. 자녀에게 지식과 사상을 습득시키는 것은 부모가 아니라 제도화된 교육기관의 임무가 되었고 부모는 어디까지나 이를 위한 '경제력'만을 제공하는 존재로 바뀌어버린 것이죠. 그리고 자녀들이 성장해서 경제권을 주도하는 시기가 도래할 즈음이 되면 부모의 경제력을 뒷받침하던 유-무형의 자산들은 도태되어 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부모-자식 세대의 분화 양상이죠... 즉, 부모에게 경제력을 지원하는 일에 대해서는 도덕적인 측면에서 받아들이지만 부모 세대가 가진 지적-사상적 자산을 물려받는 일에는 무척 인색하게 되어버린 겁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부모 세대가 가지고 있는 자산이 독자적인 경제력을 형성할 수 있을 정도의 '갱신'을 거치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마는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분위기상 이게 수월하게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게 난감한 부분입니다. 60대 이상의 노년층에 대한 재교육이나 취업 기회 부여 등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인색한데다가 설령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경제력을 쥐고자 하는 장-노년층에 대해서도 찬사를 보내기는 커녕 자식들이 얼마나 무심하길래 저 나이에도 일을 하느냐, 는 식으로 부정적으로 바라보기가 일쑤이니 기본적인 토대 자체가 형성되기 어려운 실정이지요. 미국 사회의 예를 든 것도 이런 부분에서의 차이 때문입니다.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현재의 60대가 과거 빛나는 경제발전의 주축을 담당했던 세대라 해도 현재의 청년 세대는 그 공로 자체는 인정할지언정,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적 자산에 대해서는 21세기라는 새로운 시대에는 걸맞지 않는 것이라 생각하며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을 낳은 주된 요인 가운데 하나는 오늘날의 노년층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 무능력, 즉 오늘날의 환경에서도 경제적 가치를 창출해낼만한 원동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 쉽게 말해서 "젊은 세대를 설득할만한 실력"을 보여줄만한 터전이나 기회를 갖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 이외의 신경질적인 확대해석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삼가겠습니다. 저는 술도 마시지 않았고, 기분도 그렇게 미묘한 상태는 아니니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