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와 남당유고의 정체에 대하여 2009-12-18 2383 유은선 환단고기는 위서임이 분명하다. 이 문제는 두 번 거론하는것 자체가 시간낭비일 정도로 더 이상 논의하는것이 무의미하다. 1979년 환단고기를 처음 세상에 낸 이유립(1907-86)은 그 원작자가 계연수라 누차 주장했으나, 계연수는 그 실존여부가 끝내 확인되지 않았고, 79년 초판이 나온 환단고기는 정작 그 당시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채 묻혀버리고, 이후 1983년 임승국에 의해 재출간되었다. 그리고 환단고기가 본격적으로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이 무렵 부터다. 왜 하필 약속이라도 한듯이 환단고기라던가 단, 다물 같은 책들이 80년대에 지속적으로 출간되어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을까 ? 이전까진 먹고살기 바빴던 일반 국민들이 6,70년대 눈부신 경제성장에 고무되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역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서 ? 아니면, 그 무슨 옛 비결에 기록되어 있는것처럼 그때부터 한반도에 국운이 돌아오기 시작한거라서 ? 아니다. 환단고기가 80년대 들어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데는 확실히 그 무렵 집권세력과 어떤 교감이 있었을 가능성이 약 7,80 퍼센트 이상이다. 할 일없는 문사의 황당한 추측이 아니다. 실제 임승국은 서울의 봄과 5.18 그리고 그 이후의 신군부와 국보위로 이루어지는 불안한 정정때 이상하리만치 자주 몇몇 민족종교 계열 잡지에 ‘ 전두환 ’을 찬양하는 글을 여러차례 기고한것이 이미 밝혀졌다. 그리고 참으로 이상하리만차 환단고기와 단,다물등이 마치 그 무슨 3종세트마냥 세상에서 날개돋히듯이 팔리기 시작한게 80년대다. 증산도의 개벽도 이 무렵 출간되었다. 웃지못할 촌극도 하나 빚어졌다. 임승국이 83년 배달의숙을 통해 발간한 ‘ 환단고기 ’는 그러나 얼마안가 곳곳에서 오류가 드러나 임측은 부랴부랴 이 책을 수거 다시 1978년 본이라는 원판(?)을 다시 출간하기도 했다. 이와같은 정치적 배경과 여러 가지 의혹들을 굳이 제기하지 않더라도 고등학생 정도의 역사,지리적 상식이 있다면 환단고기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책인가를 알 수 있을것이다. 상식적으로 석기시대인 5천년전 심지어 그 이전에 대체 누가 어떤 민족이 무슨수로 그 광활한 대륙을 지배할 수 있을것이며 통신,이동수단은 무엇으로 사용했을 것인가 ? 그 무슨 역대 환웅이니 환인이니 하는 이들의 집권과 생존기간도 비상식적일 정도로 길다. 더 이상 옛날엔 다들 오래살았다느니 하는식의 외할머니가 들려주시는 옛날 이야기 같은 전설로 얼버무리지 말자. 과학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21세기에 들어서도 이 세기 말이나 되어서야 인간 평균 수명이 100세 이상이 가능하다는것이 과학계의 중론이다. ‘ 대쥬신을 찾아서 ’의 저자 김운회 교수도 환단고기에 대해 ‘ 최소한 기마민족의 습성이나 만주지역 이북의 기후에 대한 상식만 있었어도 이런 무식한 짓을 벌이진 않았을 것 ’이라며 일축했다. 도대체 비닐하우스도 없던 시절에 말먹일 풀도 안 나는 얼음땅까지 올라가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환단고기에 한번 단단히 데었던 정통사학계에 그 악몽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곤혹스러운 일이 생겼다. 바로 ‘ 남당유고 ’의 출현이다. 남당유고는 화랑세기의 필사자로 알려진 남당 박창화(1889-1962)가 남긴 30여권의 문집으로, 이 역시 화랑세기 필사본처럼 그가 일본 궁내성 도서관 서릉부에서 일하던 1933-42년 사이에 필사한 것이라 남당의 손자 박인규씨는 밝히고 있다. 현재 박창화가 남긴 유고집을 그의 호를 본따 ‘ 남당유고 ’라 총칭하고 있다. 과연 박창화는 제2의 이유립 같은 희대의 ‘ 역사 사기꾼 ’인가. 아니면 일본이 빼앗아간 우리나라 고서들을 어떤 방법으로든 되찾아오려 노력한 눈물겨운 투사인가. 화랑세기 필사본이 처음 발견된것이 1989년. 그후 10여년 진위논란이 끊이지 않았었다. 이종욱,이도학 교수등 진서임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속속 등장하긴 했지만 고구려 역사연구의 전문가인 노태돈 교수등 반론도 여전히 만만치 않다. 주간동아 기사의 지적처럼 사실 남당유고는 화랑세기가 ‘ 진서임을 입증하는 증거 ’가 될 수도 있고, ‘ 위서임을 입증하는 증거 ’가 될 수도 있다. 현재 30여권 정도로 파악된 남당유고는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 고구려사초 ’, ‘ 고구려사략 ’처럼 역사서의 형태를 띤 책도 있고, ‘ 을불대왕전(고구려 미천왕) ’, ‘ 소수림왕전 ’, ‘ 어을우동전 ’과 같은 소설형식의 책도 있으며 그 외 세가,연표 형식의 책들도 있다. 그렇다면 대체 이 남당유고의 정체는 무엇인가. 정말 박창화가 쓴 위서(僞書)인가. 아니면 이들 역시 화랑세기처럼 일본 궁내성에 숨겨져 있는 우리나라 고서들을 필사해 온 것인가. 사실 위서(僞書)를 만들려는 사람들은 그 목적의식이 분명히 드러나게 마련이다. 환단고기를 위작해낸 이유립의 경우 일제시대엔 언론계에 종사했으나 해방후엔 스스로 ‘ 커발한개천각교 ’란 민족주의 계열 종교단체를 창시하고 교주가 되기도 하는등 이후 줄곧 민족종교 계통에서 활동해 왔다. 그리고 이유립의 제자 임승국은 80년대 들어 노골적으로 전두환을 찬양하기 시작했고, 그리고 80년대 들어 환단고기는 이상하리만치 세상의 주목을 받으며 날개돋힌듯 팔려나갔다. 환단고기는 확실히 우리나라 고대사를 지나치게 과장,날조한 국수주의 사기꾼의 망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남당유고의 경우 박창화가 굳이 역사날조를 해야하는 뚜렷한 ‘ 목적의식 ’이 보이지 않는다. 1889년생인 남당은 그 당시엔 대개 그러하였듯 한문수학을 했고, (손자 박인규씨 주장에 의하면) 일제강점기에 잠시 교편을 잡았으나 곧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했고 이후 1933년부터 42년까지 일본 궁내성 도서관에서 근무했으며, 해방후 귀국 이후엔 줄곧 충청도 지역의 중,고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했다. - 헌데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주장은 믿기 힘들다. 상식적으로 일본이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을 궁내성 도서관에서 일하게 할 리가 없지 않은가. 박창화가 이유립처럼 역사날조를 시도해야할 이유가 있었을까 ? 그는 이유립처럼 그 무슨 민족주의 계열 종교단체에서 활동하는 국수주의자도 아니고, 해방이후엔 대체로 교직에 몸담아오며 평이한 생활을 했었다. 다만 박인규씨의 증언에 의하면 이승만 정권 당시 박창화가 자신이 직접 일본에 가서 그네들이 훔쳐간 고서들을 되찾아 오겠다며 지원을 요청했었는데, 그 당시 이정권은 박창화의 주장을 별로 신뢰하지 않아 일축해버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30여권의 박창화 남당유고를 모두 진서라고 단언하기도 힘들다. 실제 고구려사략등은 인터넷의 몇몇 역사카페 및 블로그 매니아들이 중권고구려비등의 국내 비문 및 금석문등과 대조해본 결과 일치하는 바가 거의 없음이 밝혀졌다. 또 하나 남당유고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것은 을불대왕전등 약 열권정도에 해당하는 소설형식의 책들이다. 이제 한번 상식선상에서 따져보도록 하자. 과연 10년 세월 궁내성 도서관에서 근무하면서 그 많은 책들을 위작 혹은 창작하는것이 가능할까 ? 필자도 문예창작학과를 나온 사람이지만, 주변의 아는 작가들의 경험등으로 미루어 볼 때 10년동안 30권의 장편소설을 쓴 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허나 필사라면 단순히 베끼기만 하는 것이니 시간이 그리 많이 걸리진 않는다. 만약 박창화가 소설가로 활동하고자 하려했던 사람이라면, 일제시대든 해방이후이든 그가 문예창작과 관련한 활동을 했다는 기록이나 증언이 나와야하는데 그에 관한 기록이나 증언은 없다. 상식적으로 소설을 쓰려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작품을 어떤 형태로든 세상에 발표하려 하지 자손에게 유언만 남기고 집안 깊숙이 꼭꼭 숨겨놓지는 않는다. 더욱이 일제때든 해방이후이든 우리나라에 한문소설 장르가 존재하지도 않았는데 한글도 아닌 한문으로 ‘ 역사소설 ’을 쓸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런 경우는 한번 가정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실제 박창화는 일본 궁내성 도서관에 근무하면서 일본이 가져간 우리나라 고서들을 필사하는 작업을 계속 했으며, 그러나 워낙 그 분량이 방대해 한계를 느낀 나머지 차라리 그 고서들을 근간으로 한 소설을 써보려 한 것은 아닐까. 그렇게 된다면 단재 신채호의 갓쉰동전처럼 역사사료로서의 가치는 없어도 최소한 2차적 참고자료 정도의 의미는 지닐수 있다. 을불대왕전등 수수께끼같은 10권 정도의 소설을 박창화가 창작한 이유에 대해 이것이 필자가 추측해 본 것이다. 어느정도 필력을 갖추었고, 역사지식이 해박하며 게다가 수시로 역사자료를 가까이서 접해볼수 있는 사람이라면 10년동안 열권 정도의 소설 창작은 충분히 가능하다. 사실 남당유고의 진위여부를 가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국내에서 우리끼리 탁상공론을 하는 것 보다 실제 일본 궁내성에 그네들이 가져간 우리의 고서가 있는가의 여부를 직접 확인해 보는 것이다. 실제 일본이 일제 강점기 또는 그 이전에도 상당수의 우리나라 고서들을 대여형식 또는 무단으로 가져갔음은 MBC의 다큐프로 취재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프로에서도 박창화의 궁내성 도서관 근무여부가 사실인지만 확인할수 있었을뿐 실제 황실 도서관 내의 책을 접해볼수는 없었다. 사실 일제가 가져간 우리나라 고서의 실체를 확인하는것은 말처럼 쉬운일은 아니다. 프랑스가 가져간 규장각 도서 한권을 반환하는데만 수십년이 걸렸다. 그것도 돌려주는것이 아닌 영구대여의 형식이었다. 다른나라의 사례를 살펴보더라도 침략국이 자신들이 침탈해간 유물이나 고서를 돌려준 사례는 드물다. 하물며 일본이 자신들이 고서를 훔쳐간 사실을 인정하고 돌려가거나 그것을 전부 공개한다 ?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이루어질수 있는일은 아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화랑세기 필사본을 비롯한 30여권의 남당유고는 환단고기와는 다르게 평가되어야 하는 책이란 점이다. 그렇다고해서 남당유고를 100퍼센트 신뢰하기도 힘들다.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이중 소수림왕전,어을우동전등 열권 정도는 소설이 분명하며 고구려사초,고구려사략등도 생각보다 오류가 많음이 밝혀졌다. 참고로 박창화는 손자 박인규씨한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 화랑세기 필사본은 소중한 것이니 잘 간직할 것이며, 강역고(疆域考)는 자신이 직접 작성한 것이며, 나머지는 있으나 마나한 책 ’이라고. 아무래도 이 유언을 잘 음미해봐야 할 것 같다. 우리나란 여러차례 전란을 거치며 많은 역사서들이 불타버려 사라진것도 사실이고, 일제시대 일본이 우리나라의 많은 고서들을 훔쳐간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특히 고대사를 연구하거나 공부하는 사람들일수록 빈약한 고대 사료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절실히 갖고있다. 그래서인지 그러한 허점을 이용 어떤 사기를 치는 사람이 나타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앞서 여러차례 언급한 바와 같이 환단고기는 위서가 분명하다. 이미 밝혀진 사실이므로 이 문제는 두 번 이상 더 논란을 벌일 필요도 이유도 없다. 그러나 남당유고는 확실히 환단고기와는 뭔가 다른 것 같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학계는 이미 환단고기와 그 추종자들 때문에 한번 단단히 몸살을 앓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또다시 발견된 옛 사서의 접근에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는것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다. 너무나 빈약한 우리의 고대사 사료이기 때문에 그 빈공간에 대한 타는 목마름과 갈망 때문에 차라리 오랫동안 사라졌거나 묻혀진 사서가 어느날 갑자기 우리앞에 나타나준다면 하는 바램은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한번쯤 가져보았을 것이다. - 솔직히 필자도 소싯적에 낙서장 같은데 고구려 영토나 또는 미래의 대한민국 영토를 가상으로 그려보거나 가상의 역사책을 써보는 일을 많이 해봤다. 어쩌면 정말 하늘이 도와 일본이 훔쳐간 고서든 오랜 전란과 정치적 혼돈속에 사라진 옛 역사서든 그것이 어느날 갑자기 우리앞에 나타날수도 있을것이고, 역으로 그와같은 우리의 고대사 허점을 이용한 제2의 이유립같은 희대의 역사 사기꾼이 나타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 일본,중국만 우리 역사를 왜곡한다고 생각해선 안된다. 우리사회에도 우리의 고대사의 허점을 이용 역사장난을 치려하는 불순한 세력들이 도처에 서려있다. 남당유고는 아직 그 진위여부에 대해 섣불리 결론을 내리기가 힘들다. 제일 쉬운 방법은 직접 일본 궁내성 도서관을 찾아가 확인해 보는 것이겠지만, 따지고보면 그게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 어떤 누구도 우리의 고대사의 허점을 이용 역사를 날조하려 들거나 장난을 쳐선 안된다는 것이다. 일본이나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해 그렇게 비난하면서 우리까지 역사를 갖고 장난을 친다면 우리도 그네들과 하나 다를것 없는 사람들이 되는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