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과 '고난도'의 차이 2009-10-12 483 인문학도 앞에 이상득 의원에 대한 이야기가 왜 들어간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문제는 일단 차치하고... 아마도 이상득 의원에 대한 언급에서 나온 '고급'이라는 말의 뜻은 난이도라는 측면에서의 고급, 즉 '고난도'라는 의미일 것인데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고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고난도 한국어'라는 말은 애초에 적용이 불가능한 공허한 개념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국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입장에서야 기본적인 한글 자모 낱자부터 시작해서 각 단어의 품사와 용언의 활용 형태, 각 문장성분의 결합 구조, 겹문장의 구성 등 문법적인 측면에서 여러가지를 공부해야만 하고,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저급-중급-고급으로 배우는 난이도가 구분될 수 있겠습니다만 한국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문법적인 지식에 따라 활용력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가방'이 명사인지 동사인지 모른다고 해도 '나는 가방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는 거죠. 하물며 일본에서도 자국민을 상대로 일본어를 저급-고급으로 나누지 않을 뿐더러, 이런 것은 영어든 불어든 러시아어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모국어를 굳이 그렇게 나눠 배우진 않죠. 다만 문학교육이나 기타 언어활용능력 분야에 있어서 통합적인 단계별 교육이 존재할 뿐입니다. 만일 이것이 '고난도'의 의미가 아니라 그냥 순전히 '고급'이라는 뜻이라고 해도 주장의 내용이 모호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고급'이라는 게 고차원적인 언어구사방식, 이를테면 '배운사람'들에 의해 구사되는 우아하고 고상한 언어활용방식이라고 한다 해도 4700만 국민이 모두 이런 종류의 언어를 써야 한다는 것은 전체주의적 발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언어라는 것은 사고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이고, 사람이란 자신의 처지와 입장에 따라 생각이 다른만큼 사용하는 언어의 양상 역시 계층별로, 연령별로 달라지는 것이 당연한 것일진대 그걸 깡그리 무시하고 하나의 도달 목표를 정해서 그곳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언어를 무슨 야금술이나 컴퓨터 공학기술 쯤으로 여기는 사람이나 내놓는 발상이라고 봐야겠죠. 간혹 언어의 구사 양태를 통해서 계층별 차이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보긴 했어도 그걸 가지고서 특정 계층, 특히 상류층에 해당되는 언어를 지향해야 한다는 주장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건 덧말이지만... 한글전용론이 좌파 어쩌고 하신 것 같은데 국어 연구사에서 한글 전용론의 대부격인 분이 바로 최현배 선생이십니다. 최현배 선생을 좌파 학자라고 한다면 지나가는 개가 웃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