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광장의 꽃 2009-08-14 489 Pulsar 어제 밤 광화문 광장을 지나다가 수많은 경찰들이 모종의 훈련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시위대 역할을 하는 듯한 경찰들이 중앙에 깃발을 들고 있고, 그 시위대 역할 무리들을 포위하기 위해 함성을 지르며 200여명의 경찰들이 빠른 속도로 달려가 에워싸는 광경이었습니다. 물론 진짜 시위대는 없었습니다. 이미 광화문 광장 중앙쪽 전체는 꽃을 잔뜩 심어 놓아 아예 들어갈 수가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 시민들은 꽃을 심어놓은 중앙부분을 피해 폭 2미터가 되나마나한 길변만을 지나다니도록 되어 있었고, 그마저도 우르르 달리고 또 달리는 경찰들로 인해 지나기조차 어려워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많으면, 그 길변에서 차도까지 밀려내려와 걸어야하니 얼마나 위험하겠습니까. 광장은 처음부터 광장이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빈약했는데, 이마저도 꽃으로 80% 가까이 차단해 놓으니 이게 무슨 광장이라고 할 수 있나요. 꽃을 심은 것은 집회를 원천차단하기위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인도보다도 좁은 길을 쉼터로 쓰라고 만들기 위해 막대한 돈을 퍼부울 수 있다는 것이 믿기어려웠습니다. 이 정부가 얼마나 집회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지만,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줄 정도로 고함을 치며 시민들 사이를 누비며 경찰 훈련을 해대는 것을 보고 있으니 딱한 생각만 듭니다. 중앙을 가득 메운 꽃. 그 꽃들을 심어놓은 스타일은 정말 가관이었습니다. 크고 조악하기 짝이없는 꽃 모양을 스케치한 후 그 '꽃'을 꽃들로 채워 넣은 형국이었는데, 김정일 클린턴 사진 배경이 된 거센 파도 그림만큼이나 천박한 것이었습니다. 김정일 배경 그림은 김정일의 위엄과 그들의 이념을 추앙하는 정치적 의미를 담은 전체주의적 키치였다면 광화문 광장의 '꽃으로 꾸민 꽃'은 애써 밝고 해맑은 이미지를 차용하려 하였으나, 시민들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잔인한 역설의 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르르 몰려가는 경찰들의 모습과 아트가 아닌 그저 정치적 연출이 된 그 꽃들이 서로 오버랩되면서 씁쓸해졌습니다. 언론인들도, 지식인들도, 정치인들도, 일반 공무원들도, 모두들 충성 경쟁이 지나친 듯한 요즘입니다. 시민의 땅이, 꽃마저도 그런 정치적 선동도구가 되어야 한다면, 그저 매케한 공기나 맡으며 눈 귀를 막고 짐을 싸 서울 밖으로 쉬러 나갈 수 밖에 없겠네요. 4대강 사업 시작하면 그마저도 하기 힘들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