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여성정치인으로 성공하려면 선덕여왕 보담은 천추태�
2009-07-02 716 유은선

MBC 드라마 선덕여왕이 인기리에 방영중이다. 인기리에 방영되는 사극이 있을시에는 으레 정치권에서도 그와같은 담론이 오고가곤 했었듯이, 이번에도 역시 예외가 아니다. 특히 차기 대권 도전이 유력시 되는 어느어느 여성 정치인에 관해선 벌써부터 그 지지자들 사이에서 선덕여왕과 동일시 하는 말과글이 오가기도 하고, 혹자는 그러한 여성 정치인에게 선덕여왕같은 리더십을 발휘하란 주문을 하기까지 한다.


드라마야 어디까지나 드라마일 뿐이지만, 그러한 인기 사극 한편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 또한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는 한 예다. 헌데 그렇다면 실제 역사속에 존재했던 선덕여왕은 어떤 인물일까. 사실 우린 지금까지 선덕여왕에 대해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이었다는 점 때문에 그저 막연한 호감만을 갖고 있었을뿐, 정작 그녀의 시대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한다. 그런데 삼국사기를 펼쳐보고 그녀의 치세를 들여다보면 뜻밖의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실은 선덕여왕 치세 16년동안 무려 7번이나 백제, 고구려의 침공을 당한다. 이중 한차례는 고구려가 침입한 것이고 나머지는 모두 백제다. 물론 김유신, 알천 같은 명장들이 곧바로 반격을 시도 빼앗긴 땅을 되찾은 적도 있긴 하지만 여하튼 선덕여왕 16년 치세는 전쟁이 끊이지가 않았던 그런 혼란스러운 시대였음을 알게 된다. 한편 선덕여왕의 뒤를 이은 진덕여왕 시대에도 초창기에 백제는 내리 3년을 연거푸 신라를 침입한다. 진덕여왕은 8년간 즉위했고 그 뒤를 이은 왕이 삼국통일의 주역 태종무열왕 김춘추다.


그런데 어떻게해서 신라에서만 무려 세 번이나 여왕의 즉위가 가능했을까. 이중 진성여왕은 통일신라 후반기에 즉위한 임금이고, 선덕여왕,진덕여왕은 다들 알다시피 삼국통일의 주역 김유신,김춘추가 활동하던 시대의 여왕이다. 신라시대 여왕 즉위 가능성에 대해선 여러 가지 학계의 의견이 있긴 하지만, 특히 이중에 결국 김유신,김춘추 세력이 자기네 세력을 확보하고 궁극적으로는 진골인 김춘추의 왕위계승 명분을 쌓기위한 준비기간이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사실 이와같은 의견엔 약간 반론의 명분이 있기도 하다. 우리는 학창시절에 성골,진골의 개념에 대해 성골은 왕족간의 결혼으로 낳은 자손, 진골은 왕족과 귀족 사이에서 낳은 자손이라고 막연히 구분해 배웠지만. 실상 김춘추도 그 아버지는 진지왕의 아들 김용춘의 아들이며 (한편 화랑세기엔 김춘추의 아버지가 김용춘의 형 김용수로 되어있다), 어머니 또한 신라 진평왕의 딸 천명공주다. 따라서 앞에 언급한 성골,진골 개념으로 구분해도 김춘추는 성골이 된다. 대체 성골과 진골을 구분짓는 진짜 기준이 무엇이었을지 앞으로도 좀 더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한편 선덕여왕의 즉위기간은 16년, 진덕여왕은 8년 도합 24년이다. 진골(?)인 김춘추의 왕위계승 명분을 쌓고 김춘추의 평생 정치적 동지인 김유신이 자기 세력을 확장하는 준비기간으로 삼았다고 보기엔 너무 길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진덕여왕이 세상을 떠나고 남은 군신들이 이찬 알천에게 섭정을 청하니, 알천이 나이가 많고 덕행도 없다며 양보하고 물러나 이윽고 김춘추를 왕위에 올렸다고 나와있다.


이와같이 막상 역사서를 살펴보면 우리가 어릴때 역사만화나 동화의 그림에서 보았던 푸근하고 후덕한 아줌마 같은 이미지의 선덕여왕과는 달리 그녀의 치세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혼란스러운 시기였음을 발견하게 된다. 선덕여왕과 같은 리더십을 현실속의 여성 정치인에게 주문하는 사람들은 대체 무슨 생각에서 그와같은 발언을 하는 것인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여성 정치인으로 성공하는건 매우 힘든 일이다. 근본적으로 여성에 대한 편견이란 거대한 벽에 맞닥뜨려야 하고 더욱이 그 저열함과 치졸함으로 따지고보면 전세계 200여 국가중 최고급이라 해도 억울하지 않을것이 우리네 정치현실이고 여야갈등임을 감안한다면 이런 정치 풍토에서 무슨 수로 성공하는 여성 정치인이 탄생할 수 있을까.


실제 바로 그와같은 정치현실을 증명이라도 해주듯 건국이래 지난 60년간 여성 정치인으로 성공한 사례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굳이 따지자면 6,70년대 야당 정치인들에게 어머니 같고 할머니 같은 존재였던 고 박순천 여사 정도라고나 할까.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 여당 여성 정치인들에겐 심지어 데코레이션이란 비아냥이 있었을 정도로 그저그런 사회 명망가급 여성 인사에 대한 배려차원에서 주는 자리에 불과했고, 한국 정치권에서 그나마 여성 정치인들이 일정부분 목소리를 내고 제 역할을 시작한 역사는 이제 한 십수년 정도 될 것이다.


난 차라리 여기서 좀 뜻밖의 인물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출발에서부터 역사왜곡 논란에서 자유로울수가 없었던 이유때문인지 요란했던 시작과는 달리 근래에는 저조한 시청률로 허덕이고 있는 KBS 대하사극 ‘ 천추태후 ’. 그 주인공인 천추태후다. 실제 역사에는 김치양과 간통하고 그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왕위에 올리려 했다가 폐위된 희대의 요부로 기록되어 있는 그녀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녀가 고려사를 쓴 유학자들에 의해 폄하되었을 가능성, 그리고 특히 그녀가 섭정을 했던 목종시대에 존재했을 법한 신라계 : 고구려계의 갈등 혹은 유교계 : 불교계의 갈등에 의한 희생양이었을 가능성도 요즘은 학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드라마 천추태후는 뜬금없이 그녀를 갑옷입고 거란과 싸우는 여전사로 둔갑시키는 바람에 역사왜곡 논란에 휘달렸지만, 여기선 드라마와는 상관없이 실제 역사기록만을 놓고 살펴보기로 하자. 실제 천추태후가 섭정을 한 목종 10년의 재위기간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기록을 살펴보면 뜻밖의 이 시절이 평온한 치세였음을 발견하게 된다.


목종 재위기간 10년은 별다른 사건없이 아주 평온하게 흘러가고 있다. 이 시절 천추태후는 서경에 자주 행차하고 백성을 구휼했으며, 조세를 감면해 주었으며, 성을 쌓고, 제도를 정비(전시과, 화폐제도, 군제개편 등) 했다. 실록의 세가(世家)야 본래 왕의 치적과 주요 사건을 연도별로 나열해 가는 것이니만큼 사서에야 그와같은 일을 주도한 사람이 목종인 것으로 나와있지만, 만약 이 시절의 실권자를 섭정을 한 천추태후라 가정한다면 의외로 그녀는 뜻밖에 정치를 잘 했고, 선정을 베푼 여인이라는 매우 뜻밖의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결과만을 놓고 보자면야 김치양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왕위에 올리려는 무리수를 두다 패해 역사의 패자로 남은채 희대의 요부이자 불륜녀로 낙인찍히고 말았지만, 뜻밖에 그녀가 섭정을 한 목종의 치세는 태평성대로 나와있는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의 이 한결같은 기록을 과연 어찌 이해해야 할까.


바로 그런면에서 천추태후가 유교계 : 불교계등 신하들의 정치갈등에 희생양이 된 것이며, 특히 김치양과의 관계는 과부가 다른 남자와 통정을 한 이유 때문에 후세의 유학자들에 의해 폄하된 것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사실 요즘의 현실 정치인들의 평가도 그 지지자와 반대파에 의해선 극명하게 엇갈리는 경우를 흔히 볼수 있으니 천추태후에 대한 기록을 한 사가들이 그녀의 반대편에 있는 입장이었다면 그녀 역시 충분히 매도되고 폄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사실 천추태후가 마냥 잘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녀는 확실히 독한면도 있다. 무엇보다 자신의 세력에 가장 큰 위협이 될 수 있는 대량원군 왕순(훗날의 현종) 암살을 여러차례 시도했으며, 게다가 끝에 가선 결국 김치양의 아들을 왕위에 올리려는 무리수를 두었다가 폐위된 것 아닌가. 정치인은 천사의 날개와 악마의 발톱을 동시에 가져야만 한다고 했던가. 뜻밖에 백성들에겐 전란도 없고 조세도 감면된 평온한 치세였던 반면 반대파 정치인들에겐 그야말로 악마와도 같은 존재였을 천추태후. 그러고보면 그녀는 확실히 정치인으로써의 갖춰야할 면모를 모두 완벽하게 갖춘 인물이다.


선덕여왕 치세 16년동안 무려 7번이나 전쟁을 치루었다. 김유신,알천등이 백제에 반격을 가한 일까지 포함하면 거의 매년 전쟁을 치뤘던 것이다. 뒤이어 왕위에 오른 진덕여왕 역시 집권 초반기에 3년동안 매년 연거푸 백제의 침공에 시달려야 했다. 허나 정작 천추태후가 실권을 행사한 고려 목종의 치세 10년간엔 전쟁이 단 한번도 벌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사실 고려 성종-현종조에 걸쳐 무려 세차례나 고려를 침공한 거란이 아닌가. 헌데 정작 그 거란이 목종조엔 침략을 못 하다가 천추태후가 실각을 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제2차 전쟁을 벌인다. 정변을 일으켰던 강조가 이때 포로가 되어 처형당하지만, 뒤이어 또 다른 명장 양규가 곧바로 나타나 거란을 격퇴한것이 천추태후 실각직후 벌어진 제2차 거란과의 전쟁이다. 천추태후가 섭정을 한 목종 치세 10년간은 정작 단 한차례도 전쟁이 벌어지지 않다가, 그녀가 실각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듯이 침입해 온 거란. 이와같은 역사의 흐름을 살펴본다면, 정말 우리가 알지 못하는 - 그리고 어쩌면 천추태후 반대세력이 의도적으로 역사에서 지워버렸을지도 모르는 - 역사의 어떤 큰 비밀이 숨겨져 있는것은 아닐까.


대명천지 21세기가 밝은지도 어언 10년.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도 정치인에 대해선 지지자와 반대파의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경우를 수도없이 볼수 있다. 하물며 근본적으로 여성이라는 편견이란 이중고에까지 겹쳐 시달리는 여성 정치인들은 어떤가. 구체적으로 사례를 들자면 가령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 같은 경우엔 노무현 정권 시절 정부에 대한 연이은 강성 발언과 비판 때문에 지지자들로부턴 열혈 애국여성으로까지 추앙받았지만 반대파들은 심지어 X여옥이란 폭언까지 퍼부으며 비판을 서슴치 않았다.


노무현 정권 시절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조기숙씨의 경우 사실 미국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그리고 나름대로 정치개혁에 대한 일관된 소신을 갖고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조기숙씨에 대한 반대파의 비난도 예하 마찬가지였다. 더욱이 다른건 몰라도 미국에서 정치학을 전공했고, 나름대로 미국적 정치 시스템에 대한 기대와 환상을 갖고 있는 인물이기도 한 그녀에 대해 ‘ 반미좌파 ’ 라고까지 비난한 악플은 분명 엄연한 사실 왜곡이다. 비록 사실관계를 모르는 일반 네티즌들의 막연한 악플이라 할 지라도 어쨌든 현역 여성 정치인데 대해선 반대파의 비난하는 모습엔 명백한 사실관계에 대한 왜곡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1996년 새정치 국민회의 소속으로 출마 처음 정치에 입문한 추미애 의원의 경우도 의정활동 초창기엔 상당히 열성적이고 성실하게 의정활동을 하는 정치인으로 시민단체로부터 평가받기도 했지만, 안티조선 운동이 기승을 부리던 김대중 정권 당시 보수언론사 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 퍼부은 폭언으로 인해 처참하게 망가지기도 했다.


실제 여성 정치인들에 대한 비난 의견들을 보면 심지어 그녀의 개인 사생활이나 가정사까지 들먹이며 흠집을 내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그중에는 명백한 사실관계 왜곡이나 잘못된 정보가 마치 사실인것 처럼 인터넷 여기저기 퍼져있는 사례도 여러번 본다. 이것이 그저 몰지각한 일부 네티즌들의 발언이라면 모를까, 명색이 사회 저명인사나 지도급 인사라고 부를만한 인물중에도 그런식으로 특정 여성 정치인을 비난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대명천지 21세기에도 여성 정치인에 대한 비난이 이럴진대, 과연 천년전 천추태후가 어떤식으로 반대파에 의해 매도되고 폄하되었을지는 능히 짐작이 될만한 일 아닌가.


인기리에 방영되는 사극이 있으면, 그와 관련한 담론이 정치권에서 오가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사서를 열어보고, 선덕여왕 치세 16년은 전란이 끊이지를 않았고, 따라서 백성들의 삶도 피폐해질 수밖에 없었던 시절임을 알고나서, 선덕여왕 리더십을 운운하는 정치인을 대하게 되면 솔직히 당혹스러워 진다. 정작 천추태후는 목종을 폐위하고 김치양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왕위에 올리려 했다는 점에서 도덕적 흠결을 말할수는 있어도, 오히려 그가 실권을 행사한 10년동안은 전란도 없었고, 백성을 구휼하고, 조세를 감면해 주었으며,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해준 평온한 시절이었음을 알게 된다면 이 대비되는 두 여성 지도자의 치세를 어떻게 비교하고 평가해야 할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오늘날 한국사회, 그리고 한국 정치현실에서 여성 정치인으로 살아남으려면, 반대파 언론을 향해선 ‘ 이 X같은 신문 ! ’ 이란 폭언을 퍼부을줄도 알아야 하고, 모시던 주군이 위험에 빠지면 ‘ 어떻게 조폭 두목과 생계형 범죄자를 동일시 하느냐 ! ’며 결사옹위하는 자세도 보여줄수 있어야 하며, 석달 열흘 반정부 촛불시위로 날밤을 새는 무리들을 향해선 ‘ 모조리 정신병원에 처넣어야 한다 ! ’고 대갈일성하는 강단도 보여줄줄 알아야 한다는 점. 그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