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상적 작문 2009-06-29 471 인문학도 네그리나 바디유를 들먹이면서 친일파 논쟁의 부당함을 이야기한다면 그거야말로 네그리나 바디유에게 참으로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하다못해 스피박이나 바바라도 읽고 탈식민과 탈근대의 상관관계를 이해했다면 이런 식의 작문으로 최소한 포스트 모더니티를 '모독'하는 것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경험과 고민이 빠진 독해와 작문이라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네그리나 바디유가 가진 사유의 전후맥락을 잘라먹고서 특정한 한 두 구절을 가지고 자신의 입맛에 맞게 적절하게 잘라서 쓰는 것에 대한 자괴감조차 느껴지지 않는 이 허무함이란. 각설하고, 일제 식민통치라는 가혹한 현실 하에서 사람들은 각자 구명도생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선택권이 없지 않았느냐는 주장은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논점을 벗어난 것이다. 예컨대 옆집 사는 순이네 아버지가 일본 순사에게 수수콩 두 되 바치고 노역을 면제받았다 따위의 일은 그걸 두고서 누가 '친일파'라고 손가락질하지도 않고, 역사에서도 그런 문제는 애초에 언급하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가 지금 평가하고 판단하려는 대상, 즉 '친일논쟁'의 도마 위에 오른 인물들은 그저 구명도생하는 데 급급했던 민초들이 아니라, 시대와 사회를 주름잡았던 이들이라는 데 있다.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 박정희가 아니라 옆집 사는 박씨 아저씨였다면 그가 관동군 출신이든 일본 순사 출신이든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 행위의 잘잘못 여부를 떠나서, '관심 밖'이란 거다. 그러나 일개 匹夫匹婦가 아닌 '대한민국의 대통령'이기 때문에 그런 과거의 행적이 도마에 오르는 것이고 그에 대한 엄정한 평가가 요구된다는 것을 정녕 '모르기에' 이런 식의 논리를 펴는 것인가? 소위 '친북좌파'라는 것에 대해서는 유모차 끌고 나온 여성에게까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이들이 (애초에 작년 6월의 유모차 행렬을 두고 친북좌파 운운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노릇이지만) 어찌하여 지도층 급 인사들의 과거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이다지도 너그러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아니,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기타 다른 인사들의 '친북' 행적에 대해서는 집요하게 들춰내면서도 '명백하게 드러나는' 몇몇 인사들의 친일 행각에 대해서조차도 눈가리고 아웅하려 든다면 그야말로 자가당착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내가 하면 로망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인가.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임은 알면서도 주권국가임은 모르는 이 자가당착을 도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할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