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60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경향신문칼럼) 2008-07-30 680 방랑객 이만열 칼럼]‘건국 60년’ 역사인식 잘못됐다 이 글은, 국사학자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건국 60년’이라는 이름으로 기념행사를 강행하는 정부에 ‘건국 60년’ 대신 ‘정부수립 60년’으로 고쳐 행사를 치를 것을 권고하기 위한 것이다. 이전에도 같은 주제로 몇 차례 글을 썼다. 그런데도 거듭 붓을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침묵이 시류에 동참했다는 결과를 가져올까 저어해서다. 이승만도 당시 ‘정부 수립’ 명명 ‘대한민국 건국 60년’이란 대한민국의 건국원년을 1948년으로 보자는 역사인식이다. 그러나 이건 1948년 당시 지도자들의 역사인식과 다르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건국 기원과 관련, 1948년을 ‘대한민국 30년’, 즉 ‘민국(民國) 30년’으로 정리했다. 그들은 1919년 3·1만세운동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그 해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건립함으로써 대한민국을 성립시켰다고 보았다. 그 내용을 제헌헌법 전문(前文)에 명백히 밝혔다.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의 새로운 출범을 축하하는 경축식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 국민축하식’이라는 펼침막을 내걸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당시 지도자들은 그 경축식을 ‘건국’으로서가 아니라 ‘정부 수립’으로 축하했다. 왜 그랬을까. 60여년 후에 올 역사인식의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다고 추론한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1948년 당시, ‘민국 30년’을 애써 주장한 이승만의 역사의식이 돋보인다. 그는 3·1독립선언과 임시정부의 건립으로 나라를 건국했다는 역사인식을 가져야 대한민국이 외세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립으로 건국한 것이며, 그래야만 3·1독립선언이 미국의 독립선언보다 더 가치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런 역사의식은 그를 국부(國父)로 추앙하려는 분들이 마땅히 계승해야 할 것임에도 같은 정부를 계승하고 있는 ‘건국 60년’의 의식에서는 아무런 해명도 없이 ‘민국 30년’의 역사를 거부하고 있다. 초대정부의 이 같은 역사인식을 바꾸려면 정부가 정식으로 문제제기하고 학자들이 진지하게 토론하여 국민적인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건국 60년’을 용납한 이 시대는 정부 주도로 대한민국의 역사 30년을 삭감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현정부 스스로 역사 30년 삭감 듣건대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은 처음 민간에서 추진했다고 한다. 정부에서 떠맡게 되면서 ‘건국 60주년’이라는 말도 그대로 수용한 것 같다. 정부는 그 때 제헌헌법과 현행 헌법의 전문(前文)에 나타난 역사의식을 꼼꼼하게 따졌어야 했다. ‘건국 60년’ 주장자들의 역사의식이 “광복은 우리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거나 “광복을 맞았다고 하나 어떠한 모양새의 근대국가를 세울지, 그에 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수준을 넘지 못했다면 더욱 그렇다. 그들은 일제강점기 임정을 비롯한 우리 민족의 독립역량을 과소평가하고 각종 항일투쟁을 통해 근대민주국가를 건설하려고 노력해온 선진들의 독립운동을 의도적으로 폄훼했다. 그 같은 역사인식은 ‘식민지근대화론’과 상통한다. 그런 역사인식으로써는 나라를 세워 항일독립투쟁을 전개한 역사를 제대로 수용할 수 없다. 행여나 정부의 ‘건국 60년’ 인식이 이런 역사의식에 근거해 있을까 두렵다. ‘건국 60년’ 논자들은 영토와 국민, 주권행사가 갖춰져야만 국가가 성립된다고 보고 이 세 요소를 갖추지 못한 임시정부의 전통은 정신적으로밖에는 계승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1776년 7월4일 독립을 선언한 미국은 1783년 9월 파리강화회의의 독립 인정과 1789년 4월30일 미 연방정부 수립의 과정을 거쳐 건국했지만, 1776년을 건국 원년으로, 7월4일을 독립기념일로 정했다. 독립선언에서 시작, 연방정부를 수립한 13년간의 미국 건국과정은 1919년 독립선언에서 시작,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이른 한국과 다를 바가 없다. 이제 정부가 ‘건국 60년’이란 역사의식으로 기념행사를 치르려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 그러지 않아도 외세 개입으로 독도의 영토 훼손이 우려되는 판국인데, 안에서는 이 정부 스스로가 자기의 역사를 삭감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을까 정말 걱정된다. <이만열 | 전 국사편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