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2008-08-01 600 인문학도 이승만이 어떤 기회주의적인 관점에서 친미노선을 택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정권을 잡기 위한 방편으로 미국을 택한 것이라면 임정 시절부터 미국과의 외교를 중시했던 태도에 대해서 설명할 수가 없으니까요. 나중에 다른 임정 간부들과의 갈등을 일으키고 결국 이승만이 임정을 떠나게 되는 요인 가운데 하나가 되는 것으로 보아서는 미국에 대해 남다른 확신이나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굳이 정리한다면 '친미주의자'라기보다는 '미국주의자'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해방 이후 남한 정부를 수립하는 과정에서는 정치적인 경직성을 보여주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만일 기회주의적인 관점에서 친미 노선을 택했다면 외려 융통성을 발휘해서 남로당 계열 인사들 가운데 일부는 적절히 흡수 통합하는 전략을 택했을 겁니다. 해방 당시 서울(경성)의 소위 '인텔리' 계층을 주도하고 있던 것은 평안도를 중심으로 한 서북지역 출신들이 상당수 있었고, 또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론으로서의 사회주의에 깊은 관심을 보였던 만큼 남로당 계열을 끌어들일 만큼의 감각이 있었다면 이후 입지 확보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겠지요. 그러나 뼛속까지 미국적이었던 이승만의 관점에서는 그러한 융합이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미국은 원래부터 공산주의에 대한 상당한 경계심을 보인 바 있고, 그러한 미국을 일종의 절대 원리로 이해했던 이승만으로서는 공산주의자들과 대화를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을 테지요. 즉, 미국적인 사고의 테두리로부터 한치도 벗어나기 힘들었다는 게 이승만의 근본적인 한계라는 겁니다. 오히려 기회주의적인 친미가 아닌, '진심으로' 미국을 믿었던 사람이기 떄문에 말이지요. 김구에게 일종의 면죄부(?)를 주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인데, 결코 공산주의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왜냐하면, 무식했기 때문입니다. 당시로서는 사회주의라는 것 자체가 다분히 현학적인 테마에 해당했고, 이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지적 기반을 요구로 했기 떄문입니다. 김구가 김일성에 대해서 호감을 가졌던 것도 오히려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자본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뚜렷한 구분 의식이 없었기 떄문이라고 봐야죠. 김구의 관점에서는 공산주의자든 자본주의자든 일본을 상대로 하여 무장 투쟁을 벌였던 이들은 일단 '우호적으로' 비춰졌을 겁니다. 특히 보천보 전투 등에서 상당한 전과를 올린 것으로 알려진 김일성에 대해서라면 더욱 그러했겠지요. 반면에 일치감치 임정에서 빠져나와서 주로 미국에서 대미 외교에 주력했던 이승만에게는 그다지 호감을 갖지 못했을 겁니다. 의열단을 조직해서 항일 투쟁을 벌이고,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을 겪으면서 사선을 넘나들었던 김구의 입장에서는 이승만이란 나약한 먹물 혹은 댄디 보이(?) 이상의 인물로 비춰지기는 어려웠겠지요. 문제는 이러한 사고 기반의 차이, 즉 각각의 인물이 가지고 있었던 성향이나 기타 여러 제반 요건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겉으로 드러난 몇몇의 상황만을 가지고서 이념적인 관점에서 파악하려는 편향적인 시각들이 다수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김구가 김일성에게 우호적이었다는 걸 발견해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왜 그러한지에 대해서는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대신 자신들이 보는 김일성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색깔을 뒤집어씌우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성향 문제를 떠나서, 기본적인 학문 접근 방식에 위배되는 행위입니다. 저로서는 일부 우파 논객들이 보여주는 이와 같은 추수적인 행태에 대해서는 다소간의 경계심을 갖게 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입장입니다. 결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얼마나 적절하느냐가 중요한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