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카시적 구조의 한계죠 2008-08-05 614 인문학도 현재의 대한민국 우파가 '색깔론'에 그다지도 집착하는 것은, 우파 자체가 가지고 있는 태생적인 한계 때문입니다. 민족주의라는 가치관은 이미 좌파에게 빼앗겼고, 자본주의라는 경제 체제에 있어서도 '자유방임' 보다는 대기업 위주의 성장주도책을 택해온 우파로서는 이념 문제만큼 견고한 스탠스를 마련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아이러니하게도, 현재의 우파가 자기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존재가 필수적입니다. 북한이 일종의 악의 축으로서 '현존하는 위협(Clear and Present Danger)'으로 기능해야만 우파 역시 자신의 입지를 확보할 수 있기 떄문이지요. 그러나 김일성 사후 북한은 이미 '현존하는 위협'으로서의 능력을 상실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전쟁수행능력은 고사하고 자기네 국민들 먹여살릴 힘조차 없어서 국제사회에 손을 벌리고 있는 실정이지요. 더군다나 지난 10년의 좌파(?)정권이 견지한 대북정책은 6.15와 10.4라는 상징적인 선언과 더불어서 부산 아시아드 경기장에 인공기가 휘날리는 스펙타클한 광경을 국민들 앞에 펼쳐보인 바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파가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북한이라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적을 찾는 수밖에 없지요. 그러한 결과로 선택된 것이 현재의 진보계열이고, 이들에게 끊임없이 '친북'이라는 레테르를 뒤집어씌움으로써 보혁갈등 구조를 조성하고자 했던 겁니다. 최장집 교수와 같은 인물들이 색깔론에 시달리는 몰상식한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 기인하는 현상이겠지요. 대한민국 우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겠습니다. 지금의 우파는 '빨갱이'라는 링거 주사를 꼽아놓고 있지 않으면 자체적인 존속이 불가능할 만큼 쇠약한 지경에 빠져 있습니다. 지식 생산이라는 측면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진보좌파들에게 자리를 내어준 상황이고, 문화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젊은 세대에게 다가설 수 있는 도구들을 확보하지 못했지요. 그 결과가 늘 같은 사람이 글을 쓰고 늘 같은 사람이 그것을 읽으면서 동조를 하는 '그들만의 리그'로 굳어져버린 겁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병폐는 90년대 중반 이후 대학 내의 좌파 운동권이 겪었던 것과 흡사한 형상이라는 겁니다. 폭압적인 정권에 대항한다는 거대 담론이 사라진 자리를 당시의 운동권들은 제대로 메꿔내질 못했고, 더 이상 일반 학생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힘든 과거의 담론들을 과거의 방법론으로 반복함으로 인해서 대중으로부터 유리되는 악순환에 빠졌던 바 있으니까요. 그 정점이 96년도 한총련의 연대사태였고, 그 결과 한총련이라는 이름은 현재 명맥이나마 간신히 유지하는 수준이 되어버렸습니다. 지금 대한민국 우파가 그와 유사한 길을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 흥미로운 일이죠.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지, 독재정권과 장기간 싸워온 경험이 오히려 독이 되었던 90년대의 운동권처럼, 현재의 대한민국 우파 역시 반세기동안 자신들을 지켜 온 빨갱이 담론이 오히려 자신들의 무덤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