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일 씨 말대로 해준다면 상대방은 박수를 치겠지요 2008-08-06 759 인문학도 대한민국 우파가 결코 포기하지 못하는 메카시즘의 달콤한 유혹, 그 유혹 속에 도사린 함정이 바로 류근일 씨의 칼럼을 통해서 여지없이 드러나는군요. 상대방을 일단 좌파로 규정하고 우파의 내부 결집을 시도한다는 논법은 상당히 달콤한 열매처럼 들리겠지만, 그 열매를 베어무는 순간 대한민국 우파는 요단강을 건너게 됩니다. 독이 든 사과지요. 우파가 스스로 독배를 들겠다고 하는데 좌파에서는 굳이 말리지 않을 겁니다. 차라리 박수를 치면서 좋아한다면 모를까요. 최근의 경향을 가만히 돌이켜보면, 투표에서 소위 '캐스팅 보트'를 쥔 부동층들은 대체로 정치적으로는 무색무취에 가까우면서 경제 문제에 대해서는 과도하리만치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그것은 관계치 않겠으나, 자신의 이익에 손을 대는 정치인들에게는 표를 안주겠다는 것이지요. 이번에 이명박 정권이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은 소위 '747공약'이 이들의 경제적 이기주의에 상당한 공명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통합민주당이 그렇게 BBK를 외쳤음에도 불구하고, 대운하와 같은 악재를 끌어안은 정권임에도 불구하고 표를 준 것은 그러한 원인이 작동한 까닭이지요.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강남구/서초구 지역이 공정택 씨에게 몰표를 준 것은 이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교육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임대아파트 입주 반대에 대한 강남 지역 유권자들의 경제적 이기주의가 대단위의 조직표를 형성한 것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부동층의 욕망에 대해서 이명박 정권이 제대로 부응을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강만수 카드를 버리지 못한 MB 특유의 보은 인사 정책은 이 '경제 회색분자들'의 꼭지를 단단히 돌게 만들었지요. IMF의 경험이 아직도 생생한 3~40대 중산층에게 있어서 강만수라는 이름은 히스테리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인데, MB는 그것도 모자라 강만수로 하여금 10년 전 IMF를 불러왔던 환율 정책을 그대로 쓰게 만들어서 투자자들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으니까요. 제 아버님도 금융권 출신이시고, 10년 전에 IMF를 온몸으로 받아냈던 경험을 가지신 분이라 아직도 아버님 인맥 통해서 금융 쪽 소식은 종종 전해듣지만, '돈'에 대한 기대심리에 있어서 MB는 이미 지지를 잃은 지 오래입니다. 처음에 작은 정부니 비지니스 프렌들리니 하면서 기대심리를 한껏 치켜세워 놨더니만 강만수라는 빅 브라더의 등장과 더불어서 외환 시장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리는 바람에 실망에 대한 낙차가 엄청나게 커진 것이지요.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 'MB노믹스'가 제대로 된 파괴력을 발휘하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동안 환율 문제가 도마에 오르기는 했지만, 이는 금융권에서나 피부에 와닿는 일이지 아직까지 일반 시민들의 경제 활동에까지 여파를 미치는 상황은 아니니까요. 소비자 물가도 하반기가 되어야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할 겁니다. 거기다가 지금 금융가에서는 사실상 정설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9월 외환위기설'이 현실화되면 대규모의 경제 대란이 일어나겠죠. 이렇게 되면 부동층의 풍향계는 완전히 돌아섭니다. 그리고 이 시점 정도가 되면 MB노믹스 뿐만 아니라 이들을 여태까지 견제하지 못했던 여당은 물론이고 보수 세력 전체가 '왕따'로 전락하는 시발점이 될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야당이나 진보 세력 내에서는 굳이 MB를 끌어내려야 할 필요성을 못느끼고 있습니다. MB라는 건 사실 여당과 보수우파가 끌어안은 일종의 시한폭탄과도 같아서, 끌어안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폭발할 확률은 높아지는 것이니까요. 행여나 한나라당이 MB시한폭탄의 정체를 알아채고 이것이 터지기 전에 놓아버린다면 야당 입장에서는 닭 쫓던 개 꼴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것은 어제 칼럼에서 교수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야권 내에 제대로 된 대선 주자가 아직까지 나오지 않은 까닭이기도 하지만, 현재로서는 보수 세력에 대한 민심 이반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인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직까지도 MB를 끌어안기에 여념이 없는 현 보수세력이 좀 더 MB를 끌어안고 있어줘야 진보 쪽이 원하는 구도가 이루어진다는 것이지요. 어차피 이 시한폭탄이 터진다는 것이 기정사실화된 상황이고 보면, 이왕이면 보수우파의 품 안에 있을 때 터져주는 게 상대방으로서는 훨씬 나은 일이라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류근일 씨의 칼럼은 보수세력의 결집을 유도하고 있군요. 말하자면 시한폭탄 터지기 전에 우리편 한 사람이라도 더 모이라는 이야기인데, 결국 폭탄이 터지는 순간 희생자만 늘어나게 만드는 결과를 낳고 말겠지요. 군대식으로 이야기한다면, 적의 포병이 TOT 사격을 때리고 있는데, 목표 지점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아군 병사들을 사격 지점에 '집결'시키는 행위라고나 할까요. 전술교범대로라면 일단 포격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산개해 있다가 포격이 끝난 뒤 재정렬을 하든가, 아니면 제2선으로 후퇴해서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하는 게 정상이겠지요. 포탄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사격 지점에 병력의 종심을 두텁게 한다는 건 아군 병사 한 명이라도 더 포격 속에서 죽게 만들어서 아군의 결정적인(decisive) 패배를 앞당기는 것 외에는 아무런 효과도 없는데 말입니다. 오히려 MB를 하루빨리 내칠 것을 주장하는 쪽은 좌파가 아니라 부동층이나 기존 지지층 쪽이 많습니다. 특히 시한폭탄인 MB를 하루빨리 버리고 박근혜나 이회창 같은 새로운 주자를 내세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상당수 되지요. 진보진영 쪽에서도 이런 정황은 잘 알고 있고, 그 때문에 오히려 현 시점에서 MB가 물러나는 것에 대해서는 꺼려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지금 시점에서 MB를 물러나게 만든다면 '합법적으로 세운 대통령을 중도하차시켰다'는 보수 쪽의 정치공세로부터도 자유롭기 힘들어질 테니까요. 그런데 대선 당시 MB를 지지했던 현 주류 보수세력은 MB시한폭탄에 대한 경고를 좌파들의 이호경식지계 쯤으로 파악하고 있는 듯합니다. 혹은 여당 내의 주류 세력을 친MB계가 휘어잡고 있기 때문이든가, 그도 아니면 이번 정권 잡으면서 물밑에서 오고 간 것들(?)이 많아서 쉽사리 손을 털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겠지요. 어쨌거나 분명한 것은 MB시한폭탄의 바늘은 곧 멈춰설 것이고, 그 순간이 오기까지는 진보 진영에서는 숨죽인 채 문화 쪽에서의 전쟁을 가속화시키리라는 것입니다. 돈과 시간은 있으나 지적 욕구에 허덕이는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문화 강좌는 이미 진보 진영에 점령당한지 오래이므로, 이들에게 MB노믹스의 행보를 시한폭탄인 것처럼 여기게 만들 커리큘럼만 지속적으로 주입해도 '폭발 사후'에 대한 준비는 완벽하게 끝납니다. 이렇게 되면 굳이 MB를 탄핵하지 않아도 진보좌파는 자연스럽게 차기 정권을 잡게 됩니다. 그야말로 '막대기만 세워도 당선된다'는 지난 대선의 속설이 주인공만 바뀐 채 그대로 재현될 테니까요. 그리고 설령 용케도 MB시한폭탄이 터지지 않은 채 5년을 버틴다 하더라도 진보 쪽에서는 잃을 게 전혀 없습니다. 어차피 현 상황에서 MB가 시한폭탄이 아닌 보물상자로 변모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 것이고, 큰 실수는 하지 않더라도 캐스팅 보트를 쥔 '경제동물'들의 불만은 점점 쌓여갈 테니까요. 게다가 지지 연령층이 높은 보수세력의 경우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수적으로 불리해지는 대신, 이번 촛불집회를 통해서 보수우파의 안좋은 면만 골라서 경험한 중고등학생들은 5년 뒤면 전부 유권자가 됩니다. 광우병에 걸리지도 모르는 미국산 쇠고기 먹지 않겠다고 뛰쳐나온 이 친구들에게 색깔 뒤집어씌우고 물대포 쏘게 사주한 것이 현재의 보수우파 세력이고 보면, 다음 대선에서 투표권을 얻게 될 이 친구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보수우파가 지지하는 후보에게는 표를 주지 않을 테지요. 옛날 같으면야 언론사 장악한 다음에 열심히 나팔 불어대서 지금의 기억들을 덮어버리게 만드는 수라도 쓰겠지만,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는 그러한 언론 플레이마저도 쉽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너무 '드러내놓고' 언론장악하는 게 중고생들에게까지 그대로 중계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는 힘들여서 장악해봐야 자신들의 편을 들어주는 언론사들 입지만 좁아질 뿐, 수고로움에 비해서 얻는 것은 극히 적게 될 가능성이 높겠지요. 현재의 야권에 있어서는 시간이 곧 약입니다. 이미 MB가 어떤 존재인지 확인했으므로, 가만히 놔두면 알아서 터지거나 혹은 안터지더라도 최소한 '나아지지는' 않으리라는 걸 확신하게 되었으니까요. 진보진영은 느긋하게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다음 번을 기약할 수 있게 되겠지요. 이런 상황에서 보수진영이 MB를 닦달하고 나서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MB를 지키기 위해서 보수세력이 결집해야 한다고 주장하니, 아마도 진보진영 입장에서는 박수를 치고 꽃가루를 뿌려도 그 고마움을 다 표현하기 힘들 겁니다. 하믈렝... 아니, 서울의 피리 부는 MB가 나타나서 모든 보수세력을 피리소리로 유혹하여 강물로 뛰어들게 만들어준다는 데 상대편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