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도 어디까지나 법의 테두리 안에 존재해야죠. 2008-08-08 580 인문학도 선거라는 적법한 형식으로 뽑은 대통령이므로 중도에 퇴진하라는 이야기를 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경우로 보자면 당연한 이야기죠. 그러나 여기에는 전제가 붙습니다. 헌정 질서를 해치거나 실정법을 어기는 등 대통령으로서는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했을 경우에는 퇴진을 요구할만한 정당한 사유가 성립됩니다. 그래서 법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가능하도록 제도적인 장치들을 마련하고 있는데, 청와대의 말 한 마디에 오랜 기간 협의해 온 원내 구성마저 백지화시킬만큼 무능한 현재의 '다수여당'이 이에 대해 제대로 된 기능을 발휘하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통령 퇴진론은 아무래도 시민들의 직접적인 참여 형태로 분출될 수밖에 없겠지요. 이렇게 되면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이 이명박 대통령이 실제로 헌정 질서를 어지럽혔다거나 실정법을 위반한 사례가 있느냐는 것인데, 여기에 대해서 판단하는 것은 법률가들이 해야 할 일이므로 제가 가타부타 말하는 것은 좀 문제가 있겠습니다. 다만 오늘날의 젊은 세대로서 느끼는, '일반인 수준에서의' 법 감정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했을 때에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주기는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아니, 오히려 면죄부를 주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쇠고기 문제를 비롯한 여타의 정책적인 사안들은 토론과 설득을 통해서 풀어나갈 수 있는 사안이고, 또 반드시 정부의 방책에 반대하는 것이 옳다고 보기 힘든 부분이겠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에게 주어진 법적 권한을 넘어서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를 자의적으로 제한하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그 어떠한 이유를 들이대더라도 합리화될 수 없는 것이 아니냐는 게 솔직한 생각입니다. 언젠가 라이스 씨도 그런 말을 했었죠. 민주주의란 원래 시끄러운 것이라구요. 그러나 현재의 이명박 대통령과 그를 지지하는 우파 세력들은 시끄러운 민주주의를 별로 좋아하지 않나 봅니다. 정권 퇴진 혹은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반체제 운동'과 동일시하여 대응하고 있으니 말이죠. 여태까지 MB정권에 반하는 모든 종류의 운동에 대하여 친북좌파세력의 개입을 의심 또는 확정하는 스탠스를 취해왔던 것이 그 증거겠지요. 그러나 대통령을 규탄하는 목소리를 반체제적인 것과 동일시한다면, 과거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탄핵을 요구했던 이들 역시 반체제 운동을 획책한 것으로 낙인찍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만일 참여정부 시절에 지금과 똑같은 방식으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들을 향하여 물대포를 쏘고 최루액을 뿌리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탄핵 발의가 나왔을 때 전 국민이 환영했을 겁니다. 솔직하게 이야기한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이미 국민에게 심정적으로 탄핵당한 것이나 진배없다고 봐야 합니다. 지난 촛불정국 이후 20%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는 지지율이 이를 반증하지요. 취임한 지 불과 반년 밖에 지나지 않은 대통령이 지지율 20%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건 우습게 볼 일이 아닙니다. 지난 2003년 4월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서 '허니문'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70%에 불과하다며 대통령의 대표성에 대해 의구심을 표했던 바 있습니다. 물론 '허니문 기간에는 90% 정도는 나오는 게 상식'이라는 조선일보 사설의 주장 자체야 무슨 공산당도 아니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90%를 기대하느냐고 반문할 만 하겠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70%는 커녕 100일만에 20%대로 추락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겠지요. 지지율 20%짜리 대통령이 자신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들에게 물대포를 쏘고 군홧발로 짓밟았다는 건, 민주주의가 발달한 서구사회 같았으면 진작에 난리가 나고도 남았을 일입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형식적인', 즉 제도 차원의 것인데, 이러한 20%짜리 대통령의 독주를 견제할만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지요. 공안정국을 조성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명박 대통령은 탄핵을 받고도 남을 잘못을 저지른 겁니다. 특히 시민들의 피로써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역사가 있는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라면 이러한 행위는 더더욱 용납되어서는 안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역시 시민들의 표를 얻어서 172석을 확보한 현재의 여당은 20%의 현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불과 4년 전에 비슷한 방식으로 민의를 거스른 채 탄핵을 시도했다가 엄청난 역풍을 맞았던 기억에서 벌써 회복된 것인지, 아니면 차떼기 시절부터 이미 몰염치가 습관화되어버린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쨌거나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는 점에서는 그때와 다를 바가 없군요. 요는 이렇습니다. 대의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라 선출된 대통령이라지만, 대의민주주의의 원칙 자체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는 원칙 문제를 들어서 대통령 퇴진 운동을 반대한다는 건 이중잣대입니다. 물론 이것은 어느 누군가가 나서서 '퇴진 운동은 옳다'라고 선언해서 결정될 것은 아닐 것이고, 퇴진을 바라는 국민들의 수요가 점진적으로 많아질수록 자연스럽게 표면화될 문제겠지요. 다만 대통령을 무슨 조선시대의 나랏님 쯤으로 여기고 '정권퇴진운동 = 반체제운동'으로 인식하는 몇몇 우파 정치인/지식인들의 몰상식한 태도는 반드시 시정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덧붙인다면, 소위 '88만원 세대'라고 일컬어지는 저 같은 20대 후반의 젊은이들에게까지 '퇴진'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만들었다면, 사실상 게임은 끝난 겁니다. 솔직히 이명박 대통령 당선될 때까지만 해도 정치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고, 내 돈 주고 신문 사보는 일조차도 없었습니다. 이런 저 같은 사람을 180도 바꾸어놓은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수완에는 그저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네요. 지금의 젊은 세대들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은 사실상 없습니다. 다만 '반대하느냐' 혹은 '무관심하느냐'로 갈리고 있을 뿐이지요. 제가 가르치는 중고등학생은 물론 초등학생인 제 사촌동생마저도 '쥐박이'라는 단어를 거침없이 쓰고 있으니 더 이상의 말은 필요없지 않을까요. 혹자는 이조차도 친북좌파의 소행으로 몰고 가실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만일 그러한 지적이 사실이라면 대한민국은 이미 친북좌파의 손에 넘어갔으며 사실상 체제가 붕괴된 상태라고 보셔야 할 듯합니다. 목숨이라도 부지하시려면 하루 빨리 자산 정리하고 해외로 망명하시길 권해드립니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