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정도가 좀 심하긴 하지요.
2010-06-30 272 인문학도


지난 주말에 청주에 내려오면서 고속버스 안에서 '전우'를 잠깐 봤는데... 뭐 세세한 오류는 그렇다 치더라도, 중간에 버젓이 헬리콥터를 등장시키는 데에는 두손 두발 다 들었습니다. 그것도 UH-1... 순간 '전우'가 베트남전을 다룬 드라마가 아닐까라는 의혹을 잠깐 가졌었지요.

사실 '고증'이라는 게 드라마를 평가하는 '결정적 요소'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작품에 대해 제작진이 가지고 있는 태도나 철학을 파악하는 요소로서는 충분하지요. 고증에 신경쓰려고 했는데 옛날 물건이어서, 구하기가 쉽지 않고 설령 구하더라도 너무 비싸서 대체품을 쓴다, 라는 선에서 발생하는 고증상의 오류는 보통 그냥 애교로 받아줘도 무방합니다. '잘 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됐다'니까요.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같은 단타성 블록버스터야 티이거가 없으면 T-34를 개조해서라도 일단 겉껍데기만이라도 비슷하게 만들어야 욕을 좀 덜 먹지만, 상대적으로 저예산(?)의 TV 드라마에서는 그정도까지의 퀄리티를 바라는 건 무리겠고요.

다만 문제는... '잘 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됐다'가 아니라 '적당히 분위기만 맞으면 되지 뭐'라는 태도에서 발생하는 오류입니다. 전우가 되었든 로드 투 넘버 원이 되었든 정작 6.25와 관련된 '실상'을 그려내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고, 제작진이 6.25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 내지는 '선입견'을 그려내는 정도에서 만족을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되면 단순히 등장하는 장비 한두개가 틀리는 선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전쟁 자체에 대한 시각이 엉뚱해집니다. 그리고 이런 오류가 가지는 파급력은 어마어마한 것이고요.

이런 오류의 극치를 보이는 게 최근에 개봉한 '포화속으로'죠. 포항 전투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고는 하지만 영화의 시놉시스나 설정을 보면 90%가 '거짓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거짓말은 단순히 '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되서' 생긴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야 어찌됐든 난 이렇게 생각하니까'라는 태도에서 생긴 거짓말이라는 게 문제죠. 인민군이라는 '절대악'에 맞서서 포화가 빗발치는 전투 상황에서도 '가오'를 잃지 않고 덤벼드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아이돌 그룹 출신의) 학도병! 이라는 잘못된 밑그림을 가지고 영화를 시작했으니 결과도 엉성하게 나오는 겁니다.

이런 류의 영화/드라마가 이념 공세에 시달리는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애초에 '있었던 사실'을 '제대로 그려보겠다'고 달려들었으면 이념적으로 파고들어서 균열을 내기란 대단히 어려웠을 겁니다. 그러나 '사실 재현' 보다는 '사실 창작'이라는 목표로 시작되고 보니 이념을 분계선으로 한 양쪽 진영에게 끊임없이 뭇매를 맞는 것이죠. 이를테면 제대로 된 데이터 없이 '논쟁적인' 테마를 제시해서 학계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불량논문의 처지랄까요.

문득 예전에 보았던 학도병 관련 영화 한 꼭지가 생각나는군요. 휴식 시간에 밥을 나누어주는데 한 학도병이 너무 배가 고팠던 나머지 주먹밥 한 덩이를 더 먹으려다가 두들겨 맞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식사는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적의 기습적인 포격으로 풍비박산이 나고, 한차례의 포격이 지나간 뒤에 아까 그 학도병을 두들겨팼던 부사관이 생존자 파악하려고 돌아다니다가 그 학도병을 발견하지요. 그 학도병은 주먹밥 두 덩이를 양손에 꼭 쥔 채 죽어 있었습니다. 꽤 오래된 영화로 기억하는데, 요즘 나오는 영화들과 비교해보면 역사라는 게 늘 발전적인 쪽으로 향해 가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