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LEESANG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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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

CEO 인사말

안녕하십니까 ? Leesangdon.com을 방문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걸어 온 길을 아래에 정리해 보았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들러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상돈은 한국전쟁 중인 1951년 피난지인 부산에서 태어났다. 부모와 가까운 친척은 모두 서울 출신이다. 부모, 조부모, 외조부모 등 모든 친척은 6.25 남침 후 서울에서 ‘적치(敵治) 90일’을 견디어 내어야 했다. 당시 문화계의 지도자였던 외조부 춘곡(春谷) 고희동(高羲東)은 납북위기를 간신히 모면했다.

미 해병대의 진군으로 서울이 수복되었으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일가 친척은 모두 피난을 가야만 했고, 그런 연유로 부산에서 태어났다. 휴전 후 다시 서울로 복귀했고 서촌이라고 부르는 지역에서 자랐다. 종로구청 자리에 있었던 수송국민학교를 다녔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어난 4.19와 4학년 때 발생한 5.16은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1964년에 경기중학교에 입학했고, 경기고등학교를 거쳐서 1970년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생활 중 고시공부에는 마음을 붙이지 못했고, 타임지 등을 즐겨 읽었으며 미국 정치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해서 공법학을 공부했으며, 1976년 2월 ‘미국 대법원과 사법적극주의’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3년에 출간된 첫 저서 <미국의 헌법과 연방대법원>은 석사학위 논문을 보완한 것이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해군에 입대해서 그 해 7월 임관되어 1979년 7월까지 복무했다. 제대 후 곧 미국 유학 길에 올랐다.

1980년에 튤레인 대학 (Tulane University)에서 법학석사 학위를 받았고, 1981년에는 마이애미 대학(The University of Miami)에서 비교법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다시 튤레인 대학으로 돌아와서 1983년에 법학박사(S.J.D.) 학위를 받았다. 학위논문은 ‘해저석유개발에서 발생하는 해양오염의 법적 문제’이다.

1983년 9월 중앙대학교 법과대학 전임교수로 임용되어 2013년 2월까지 근무했다. 1993년에 정교수가 되었으며, 2001~03년간 법과대학 학장을 지냈다. 미국 조지아 대학 딘 러스크 센터 교환연구원(1988년 2월)과 조지타운 대학 풀브라이트 방문학자(1993년 12월~94년 2월)를 지냈다. 1996년 가을학기에는 로욜라 로스쿨(Loyola Law School)에서 교환교수로 강의를 했다.

국내외 학술지에 환경법, 국제환경법, 헌법, 국제경제법, 법조윤리 등 다양한 분야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학술저서로는 <미국의 헌법과 연방대법원>(1983), <국제거래법>(1992년), 그리고 <미국의 헌법과 대통령제>(2012년)가 있다.

1992년 6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로에서 열린 유엔환경개발회의에 한국정부가 제출한 국가보고서를 집필했으며, 1999년에는 세계은행의 위촉으로 한국의 환경정책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1995~2003년간 조선일보 비상임논설위원을 지내면서 사설과 칼럼 430여 편을 집필했다.

칼럼과 서평을 모은 책을 여러 권 펴냈다. <환경위기와 리우 회의>(1993년), <지구촌 환경위기와 한국의 환경정책>(1995년), <세계의 트렌드를 읽는 100권의 책>(2006년), <비판적 환경주의자>(2006년), <조용한 혁명>(2011년), <공부하는 보수>(2014년) 등이다.

2011년 12월~2012년 5월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을 지냈으며, 2012년 대선 기간 중에는 새누리당 정치쇄신위원을 지냈다. 2013년 2월, 중앙대학교를 명예퇴직한 후 칼럼 집필과 방송 출연을 하였다. 2016년 4월 총선에 국민의당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참여해서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됐다. 20대 국회에선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이 상 돈 (李相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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