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LEESANG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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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나 허핑턴, 제3세계 미국 (2010년, 크라운, 276쪽, 23.99 달러)
Ariana Huffington, Third World America (2010, Crown, 276 pages, $23.99)
중산층이 몰락한 미국은 제3세계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하는 이 책의 저자는 미국의 진보성향 인터넷 신문인 허핑턴 포스트(The Huffington Post)의 창업자 중 1인인 아리아나 허핑턴이다. 허핑턴 포스트는 대단히 성공한 인터넷 신문이고, 이로 인해 아리아나 허핑턴은 매우 영향력 있는 인사로 평가된다.
그리스 출신인 아리아나 허핑턴은 이혼한 전 남편 때문에 유명해 진 인물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켐브리지 대학을 나온 아리아나는 자유분방한 생활을 했다. 빼어난 외모를 갖춘 그녀는 동거하던 중견 언론인과 헤어진 후 미국에 건너와서 억만장자 마이클 허핑턴을 만나 결혼했다. 1992년에 마이클이 공화당 후보로 캘리포니아에서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해서 당선되고 1994년에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과정에서 남편을 도와서 언론에 알려졌다. 공화당은 낙태, 정부예산 등 사회문제에서 보수적 입장을 전달한 아리아나를 적극적으로 홍보했으나, 마이클 허핑턴은 상원의원 선거에서 근소한 표차로 낙선했다. 1997년에 이들은 이혼했으나 아리아나는 전 남편의 성(姓)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
자신을 유명하게 만들어 준 남편과 이혼한 후에 아리아나는 에너지 문제, 유고 연방 문제 등에서 진보적 입장으로 선회했고, 2003년에 캘리포니아 주지사 특별선거에서 공화당의 아널드 스웨제네거 후보에 상대해서 출마했으니 별다른 지지를 얻지 못하고 후보직을 사퇴했다. 2004년 대선에선 민주당의 존 케리 후보를 지지했고, 2005년에 인터넷 신문 허핑턴 포스트를 창간해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허핑턴 포스트는 조지 W. 부시와 공화당을 공격해서 단기간에 급성장했다. 아리아나는 여러 권의 책을 썼지만 마리아 칼라스와 파블로 피카소의 생애에 관한 책은 노골적인 표절이라는 비판을 들었다.
2008년 경제위기와 주택금융 파탄으로 중산층이 무너져 내리는 시점에 나온 이 책에서 아리아나는 미국이 극소수만 부유하고 대부분 국민은 빈곤한 브라질이나 멕시코 같은 제3세계를 닮아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금융위기 후에 많은 기업이 문을 닫고 일자리가 줄어서 중산 근로계층이 몰락하고 있음을 여러 사례와 통계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아리아나는 미국 기업이 창출하는 이윤의 40%가 금융섹터로 돌아가는 등 금융분야의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커졌고 그 결과로 “열심히 일하면 성공한다”는 ‘아메리칸 드림’이 무너졌으며, 제조업 기반이 무너지고 엔지니어링 분야의 고급학위 취득자가 줄어든 것도 미국의 앞날을 어둡게 한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또한 부시 행정부 들어서 정부재정이 급속히 나빠졌음을 들면서 불필요한 이라크 전쟁과 과도한 군비(軍備)가 중요한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이유로 평균적인 미국인들은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하고 공포(fear) 속에서 매일매일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 한때 열렬한 공화당원이었던 아리아나는 레이건 행정부 시절에 시작된 자유시장근본주의(free-market fundamentalism)에 책임을 돌린다. 즉 정부규제가 나쁜 것이라면서 시장에 적용될 규칙을 없애버린 것이 큰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아리아나는 이런 추세가 빌 클린턴 행정부 들어와서도 지속되었고, 부시 행정부 들어서는 극대화되었으며, 이런 결과로 부자는 더욱 부유해지고 중산층은 불공평한 부담을 지게 됐다는 것이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서 집을 샀다가 직장을 잃어버리자 대출금을 갚지 못해서 집을 잃어버리고 갈 곳이 없어진 중산층은 자신들의 상황을 잘 알지 못하고 무리하게 집을 사서 그렇게 되었다고 보는 견해에 대해, 아리아나는 중산층에게 그렇게 하라고 권한 금융기관이 더 나쁘다고 주장한다. 아리아나는 금융기관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중산층에 덫을 놓았고 그 덫에 빠진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몰락하게 되었다고 본다. 주택금융 못지않은 위기는 크레딧 카드 위기인데, 크레딧 카드 빛도 빛을 진 사람들 보다는 온갖 불리한 조건을 숨겨놓고 중산층을 카드 빛의 함정에 빠뜨린 금융기관이 더 나쁘다고 아리아나는 본다.
아리아나는 미국이 제3세계가 되어 가고 있는 또 하나의 유력한 증거는 열악한 사회 인프라라고 주장한다. 미국은 현재 철도, 도로 등 기간 교통망이 유럽에 비해 뒤떨어져 있고, 미국 전역에 걸쳐 있는 댐과 교량은 너무 낡아서 안전하지 않은데, 오바마의 경제촉진 정책도 사회 인프라에 대한 투자는 인색하다고 아리아나는 지적한다. 그녀는 또한 미국의 민주주의가 월가(街)와 워싱턴 정가(政街)의 회전문 내통(內通) 관계로 무너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 재무장관을 지낸 월가 출신 로버트 루빈과 할리버튼이란 군수업체를 일으키고 부통령이 되어 전쟁을 지휘한 딕 체니의 경우는 월가가 정부를 직접 장악했음을 보여 주며, 이런 분위기가 팽배해서 기업을 감독하는 규제기관은 허수아비로 전락해서 여우가 닭장을 지키는 형상을 초래했으며, 그 결과로 2008년에 금융대란이 발생했는데, 정부와 의회는 대란을 일으킨 금융기관에 돈을 주어 이들을 살리는 처방을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 ? 아리아나는 우선 선거를 완전히 공영화하고, 잘 가르치는 교사에게 보다 인센티브를 주는 등 학교교육을 쇄신하고, 의료비 때문에 빈곤층이 되는 경우가 없도록 정부의료보험을 도입할 것을 주장한다. 일자리 만들기에 대해선 연방정부가 주정부와 지방정부에 자금을 공급해서 주정부와 지방정부가 필요한 공공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고, 태양열 같은 환경친화적 기술에 대한 투자를 늘이며, 숙련된 고급기술을 갖은 외국인력이 미국에 들어오는 창구를 넓히자고 주장한다. 금융기관에 대해선 모든 파생상품과 변종금융수단을 규제하고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다시 분리하도록 하며, 큰 은행을 분산시켜서 대마불사(大馬不死)를 원천적으로 봉쇄하자고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커뮤니티에 봉사하는 미국 고유의 미덕을 살려서 다같이 함께하는 사회를 만들자고 아리아나는 주장한다.
책 제목이 센세이션한데 비해 내용은 특별한 것이 없는 편이고, 금융기관을 개혁하고 정계와 재계의 유착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 외에는 이렇다고 할 만한 현실적인 대안제시가 없다는 것이 책을 읽은 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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