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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노르버그, 금융 재앙 (2009년)
작성일 : 2010-01-24 00:41조회 : 1,675



요한 노르버그, 금융 재앙 (2009년, 케이토 연구소, 186쪽, 21.95 달러)

 Johan Norberg, Financial Fiasco (2009, Cato Institute, 186 pages, $21.95)

  이 책의 저자 요한 노르버그는 1973년에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태어나서 1999년에 스톡홀름 대학에서 사상사(思想史)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정치사, 경제학 등을 공부한 그는 자유주의 철학에 심취해서 스웨덴에서 그런 생각을 전파하는 포탈을 만들어서 운영했고, 2002년-2005년에는 스웨덴의 자유주의 경제 싱크탱크인 팀브로(Timbro)에서 일했고, 지금은 워싱턴에 소재한 케이토 연구소(Cato Institute)의 연구위원으로 있다.

노르버그는 2001년에 펴낸 ‘세계화를 옹호하면서’(‘In Defense of Global Capitalization’)로 명성을 얻었다. 2008년에는 나오미 클라인의 ‘쇼크 독트린’을 반박한 책을 스웨덴어로 펴냈다. 2009년 가을에 나온 이 책에서 노르버그는 미국의 금융위기를 분석하고, 미국이 아직도 교훈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노르버그는 2008년에 미국을 덮친 경제위기가 불가항력적인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에 의한 것이 아니고 기업과 정부기구, 그리고 정치조직의 의사결정권자들의 ‘의식있는 행동’(‘conscious actions’)이 초래한 것이라고 화두를 연다. 그는 지금 세계가 최초로 전지구적 금융위기를 겪고 있으며, 이로 인해 세계화와 자유무역에 광범한 반(反)작용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고 경고한다.

오늘날 ‘검은 월요일’이라고 부르는 1987년 10월 19일, 뉴욕 증시는 하룻동안 23% 폭락했다. 당시 연방준비제도이사회(The Federal Reserve Board) 의장이던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은 기준 이자율을 신속하게 낮추어서 자금 공급을 늘렸고, 그러자 시장은 신속하게 안정되었다. 이렇게 해서 영웅이 탄생했다. 그린스펀은 그 후에도 위기가 닥쳐 오면 금리를 인하해서 대처했다. 1991년 걸프 전쟁 때도 그랬고, 아시아 경제위기가 닥쳐왔을 때도 그러했다. 이런 처방에 따라 미국 경제는 긍정적으로 반응했고, 사람들은 1990년대의 번영을 그린스펀의 공적으로 돌리기도 했다.

2001년 들어서 그린스펀은 이자율을 내리기 시작했고, 9-11 테러가 발생하자 그린스펀은 이자율을 대폭 인하해서 자금 공급을 늘였다. 2001년 초에 6.25%이던 기준금리가 그 해 연말에는 1.75%로 내려갔다. 9-11 테러 후 2개월 만에 미국 증시는 그 전으로 회복했고, 2002년에 미국은 1.6% 경제성장을 기록했다. 2003년 6월에 기준금리는 1%라는 최저수준을 기록했다. 그린스펀은 나중에 준비제도이사회가 의도적으로 통화팽창이란 위험을 택했고 이로 인해 거품이 조성됐다고 인정했다.

자기 집을 갖는 것은 미국인의 꿈이었고, 그런 이유로 연방 소득세가 도입된 이래 주택 모기지의 이자는 소득세 공제대상이었다. 1987년에 레이건 행정부와 의회는 자동차 구입과 신용카드 대출이자에 대해 인정해 온 소득세 공제를 폐지했는데, 그럼에도 주택 모기지 이자에 대해선 공제를 유지시켰다. 그러자 사람들은 주택을 담보로 모기지를 얻어 자동차를 사는 등 편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1994년에 전체 주택담보의 68%가 자동차 구입 등 다른 목적에 사용됐다. 

1997년에 클린턴 대통령은 부부의 경우에 50만 달러를 한도로 부동산 자본이득세(capital gains tax)를 폐지했다. 주식과 채권 등에 대한 자본이득세는 유지하면서 주택에 대한 자본이득세를 폐지하자 미국인들은 주택을 투자 대상으로 보게 되었다. 과거에는 주택 모기지 이자율은 확정식이었는데, 이자율이 떨어지자 변동이자율 모기지가 늘어났다. 보다 많은 미국인들이 주택을 구매함에 따라 엄격한 토지이용계획 때문에 주택공급이 제한된 캘리포니아와 플로리다 등에선 주택가격이 가파르게 올라갔다. 주택 거품이 조성된 것이다.

21세기에 들어서 중국과 산유국들이 풍부한 자금을 미국에 공급하게 됐다. 중국과 산유국들은 남아 도는 달러로 미국의 주식과 채권을 사들이고 또 직접 투자를 했다. 이런 돈이 미국에 넘쳐흘러서 이자율은 계속 떨어졌고, 싼 이자에 맛들인 미국인들은 계속 빚을 얻어 썼다. 가난한 사람들이 부유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양상이 초래된 것이다.

한편 미국의 재정적자는 계속 증가했다. 2001년 초에 취임한 부시 대통령은 10년 간에 걸쳐 1조 3000억 달러에 달하는 감세(減稅)를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정부지출을 줄일 계획은 갖고 있지 않았다. 9-11 테러 후에는 막대한 전쟁 비용이 추가로 들어갔고, 그런 상황에서도 부시 대통령은 노년층에 대한 조제약 경비를 메디케어로 부담해 주기로 했다. 폴 오닐 재무장관이 이런 정책이 무책임하다고 경고하자 그는 즉시 경질되고 말았다.

경제위기를 초래한 또 다른 장본인은 패니매(Fannie Mae)와 프레디맥(Freddie Mac)이란 주택금융을 전문으로 하는 공기업이다. 연방정부가 주택금융에 간여하게 된 것은 1930년대 뉴딜 시절이다. 경제공황으로 인해 주택금융을 해준 저축은행들은 자기 주(州)내에서만 영업을 할 수 있어서 부실대출 위험을 분산시킬 수 없었다. 이런 난점을 해결하기 위해 루스벨트 대통령은 1938년에 연방모기지협회(The Federal Mortgage Association : Fannie Mae)라는 정부기구를 창설했다. 1968년에 민간자본참여를 허용해서 패니매는 반관반민(半官半民)기구로 변신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5명의 이사를 임명하고, 연방정부가 모기지를 보증한다는 암묵적 양해가 있었다. 패니매의 기능 중 연방정부가 직접 대출을 하는 부분을 떼어내어서 별개 조직을 만들었는데, 의회는 1970년에 이 기구를 연방주택대출모기지협회(The Federal Home Loan Mortgage Corporation : Freddie Mac)란 반관반민 조직으로 만들었다. 패니매와 프레디맥이 주택 구매자에게 대출을 해준 은행으로부터 그런 채권을 인수함에 따라 자금을 회수한 은행은 다른 주택구매자에게 대출을 해줄 수 있게 됐다. 은행은 자기 돈을 들이지 않고 주택대출을 해 주고, 많은 사람들이 낮은 이자율을 믿고 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 주택 거품을 일으킬 수 있는 조건이 조성된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1995년에 의회는 커뮤니티 재투자법(The Community Reinvestment Act : CRA)을 한층 강력하게 만들었다. 1977년에 제정된 이 법은 소수인종에 대한 주택금융 차별을 금지했는데, 1995년 개정법은 연방정부로 하여금 은행이 이 의무를 이행하는가를 감시하고 독려하도록 하였다. 1995년에법률이 개정됨에 따라 은행은 이제 주(州) 경계를 넘어서 영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1997년 10월, 퍼스트 유니언(First Union)과 베어 스턴스(Bear Stearns)은 CRA에 의거해 대출해 준 모기지를 증권화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부채상환 능력이 부족한 소수인종에게 주택구입대금으로 대출한 이들은 위험부담이 큰 자신들의 모기지를 프레디맥의 보증으로 시중에 유통시키기 시작했다.

시민단체들은 은행이 소수인종에게 주택대출을 늘일 것을 주장했는데 ‘개혁을 위한 커뮤니티 조직의 연대’(The Association of Community Organizations for Reform : ACORN)이 이런 운동에 앞장섰다. 거대한 모기지 금융회사인 칸트리와이드(Countrywide)는 소수인종과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금융을 확대하기 위해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s) 사업을 확장했다. ‘서브프라임’은 문자 그대로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할 가능성이 많은 사람에게 금융기관이 위험을 안고 대출하는 것인데, 소수인종과 저소득층도 주택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한다는 미명하에 자격이 미달인 주택구매자에게 대출을 하고 그로 인한 위험부담을 모기지를 인수한 패니 매와 프레디맥이 떠안았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주택장관을 지낸 헨리 시스네로와 앤드루 쿠오모는 주택거품을 조장한 일등공신이다. 클린턴 행정부 말기에 재무장관을 지낸 로렌스 서머스는 패니매와 프레디맥이 야기하는 위험을 경고했지만 그냥 묻혀 버리고 말았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2002년에 패니매와 프레디맥이 불실화할 가능성은 없다고 결론을 내린 연구보고를 발표했는데,  이 보고서는 패니매와 프레디맥이 발주한 것이었다. 2008년 7월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게 될 폴 크르거만도 패니매와 프레디맥은 위험도가 높은 대출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서 패니매와 프레디맥이 보증하는 증권화된 모기지를 파는 금융회사의 숫자는 계속 늘어났다. 리먼 브라더스는 1990년대 중반부터 서브 프라임 모기지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메릴 린치도 그러했는데, 처음 몇 년 동안은 이들은 이 분야에서 많은 수익을 냈다. 시티 코퍼레이션도 마찬가지였다.

2004년 이코노미스지(誌)는 “거품은 생각보다 오랫동안 커지고, 결국은 터지고 만다”고 경고했다. 2007년 7월, 칸트리와이드는 투자자와 분석가들에게 왜 자신들의 실적이 저조한가를 설명해야만 했다. 2008년 9월 15일, 158년 역사를 자랑하는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을 선언했다. 시티 그룹 같은 다른 투자회사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2007년 하반기 들어서 패니매와 프레디맥의 주가는 계속 떨어져서 2008년 7월이 되자 1년 전에 비해 1/10 수준으로 전락했다. 2008년 9월, 연방정부는 2000억 달러를 패니매와 프레디맥에 투입해서 국유화시켜 버렸다.

미국의 금융위기는 외국으로 번져갔다. 작은 나라 아이슬란드가 직격탄을 맞았는데, 2008년 한해 동안 아이슬란드의 주가는 90%나 폭락했다. 1929년 주식 대폭락이 재연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고,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 임기 말 부시 행정부의 행크 폴슨 재무장관은 금융기관에 총 2500억 달러에 달하는 구제금융을 주기로 했다.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무책임한 금융기관을 구제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자기 집을 갖겠다는 미국인들의 열망이 이렇게 큰 충격을 야기한 것은 세계화와 규제완화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워싱턴에는 금융시장을 규제하는 공무원이 12,190명이나 되고, 조지 부시 행정부 동안에도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는 오히려 늘어나서 그로 인한 비용이 29%나 늘어났다. 따라서 규제완화가 금융위기의 주범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월가(街)가 자신들이 얼마나 잘못했는지는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AIG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계산하지 않는 잘못된 컴퓨터 모델을 사용해 왔다.

저자는 이와 같은 경제위기의 재현을 막기 위해서는 지금과는 정반대의 처방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선, 금융기관에 대한 구제금융과 예금보험을 폐지하고 무디스 같은 공식적인 신용평가기관을 없애서 은행이 직접 자기 책임 하에 영업을 할 것을 제안한다. 즉, 지금 우리 앞에 펼쳐 있는 것은 ‘카지노 경제’가 아니라 ‘헬리콥터 경제’이며, ‘헬리콥터 엄마’에 의해 자라난 아이는 자립심이 없어져서 심각한 증상에 빠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제가 정부에 의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경기침체는 결코 자본주의의 위기가 아니며, 오히려 경기 붐이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오늘날의 금융위기가 저(抵)이자율, 막대한 적자, 그리고 크레딧에 의한 소비에 의해 초래됐는데, 각국 정부는 또다시 저(抵)이자율와 막대한 적자 그리고 크레딧에 의한 소비로 위기를 극복하려고 하고 있다면서, 이런 미봉책은 더 큰 위기를 가져올 뿐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1970년대에 큰 정부와 공공부분의 부채, 그리고 경쟁력을 잃어버린 기업을 억지로 살리는 정책으로 인플레이션과 보호무역주의를 초래했는데, 그것을 1980년대가 치유했다는 교훈을 되살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정부의 능력은 한계가 있음을 다시 깨닫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두고 볼 일이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 이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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