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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이스털리, 백인의 부담 (2006년)
작성일 : 2010-05-02 00:05조회 : 2,774



윌리엄 이스털리, 백인의 부담 (2006년, 펭귄 프레스, 436쪽, 27.95달러)

William Easterly, The White Man’s Burden
(2006, Penguin Press, 436 pages, $27.95)

이 책의 저자 윌리엄 이스털리는 뉴욕 대학의 경제학 교수인데, 오랫동안 세계은행에서 개도국에 대한 개발원조 업무를 담당했었다. 밀튼 프리드먼을 추종하는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이스털리 교수는 자신이 일했던 세계은행 같은 국제기구와 선진국의 개발원조가 후진국의 빈곤을 전혀 해결하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책의 제목 ‘백인의 부담’은 1899년에 영국의 시인 키플링이 발표한 같은 이름의 유명한 시(詩)를 그대로 빌려온 것이다. 당시 키플링은 미국이 필리핀을 식민지로 삼게 된 것을 축하하면서, 열등한 인종을 개화시켜야 하는 의무를 백인들이 지고 있다는 의미로 이 구절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스털리 교수는 빈곤한 후진국들을 돕기 위한 서방의 노력이 후진국들을 더욱 병들게 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백인의 부담’이란 제목을 붙였다.

저자는 지난 50년 동안 서방 선진국들은 2조 3천억 달러에 달하는 원조를 후진국들에게 제공했지만 아프리카 등 빈곤한 지역에서의 삶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고 화두를 연다. 그럼에도 서방의 정치인, 국제기구의 책임자, 학자, 그리고 저명인사들은 너나 없이 서방이 후진국에 보다 많은 원조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원조를 많이 했지 않느냐고 질문을 하면 이들은 보다 화끈하게 원조를 해야만 그들을 도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빈곤의 종말’이란 책을 쓴 컬럼비아 대학의 제프리 색스 교수가 이런 주장을 하는 대표적인 학자다. 저자는 선진국들이 좋은 뜻을 갖고 많은 원조를 했음에도 빈곤을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기아와 질병이 더욱 심해지는 비극적 결과를 초래했다면서, 그 이유로 서방 선진국들이 후진국들에게 ‘계획’을 강요했다는 점을 든다.

저자는 사회적 경제활동 행위자를 그들이 접근하는 방식에 따라 ‘계획자’(planner)와 ‘모색자’(searcher)로 구분한다. 부유한 선진국 정치인과 기업인들은 ‘모색자’이다. 즉, 이들은 칼 포퍼가 말하는 ‘유토피아적 사회적 엔지니어링(utopian social engineering)’을 거부하고, 사회발전을 시장에서의 자율적 조정기능에 맡겨왔다. 이러한 ‘모색’ 과정에선 피드백(feedback)과 책임(accountability)이 작동을 해서 적절한 결과를 찾게 되며 그런 과정을 거쳐 경제와 사회가 함께 발전을 한다. 그러나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경제체제는 피드백과 책임이란 과정이 없기 때문에 결국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자신들은 ‘모색자’로서 경제성장을 이루어 온 선진국들이 빈곤한 후진국에 대해 원조를 할 때면 항상 ‘계획자’가 된다는 것이다. 후진국의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선진국에게 표현할 방법도 없고, 또한 선진국의 원조가 실패해도 이에 대해 책임을 물을 장치도 없기 때문에 선진국들이 제공하는 원조가 빈곤타파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국제기구와 선진국의 ‘개발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대단한 선지자나 되는 듯한 착각에 빠져 항상 ‘거대한 계획’을 세워 후진국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데, 그것이 바로 문제인 것이다.

제프리 색스 교수는 선진국들이 후진국에게 통 크게 원조를 하면 일거에 빈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데, 저자는 이러한 ‘거대한 계획(Big Plan)’ 발상을 버리는 것이 후진국을 살리는 첫 단계라고 주장한다. 색스 교수로 대표되는 계획론자들은  후진국들은 ‘빈곤의 함정’(poverty trap)에 빠져 있기 때문에 선진국이 화끈하게 원조를 해서 이들이 함정에서 빠져 나오도록 도와주면 그 다음은 스스로 해결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저자는 이런 발상이 순진한 환상이라고 본다. 더구나 선진국과 국제기구에서 후진국에 공여하는 개발원조의 많은 부분은 현지민들이 원하는 바를 반영하기 보다는 원조를 주는 정부와 기관이 선호하는 바에 따르기 때문에 비효율적이고 부패가 개입하기 마련이다. 또한 가난한 나라가 식량 같은 기본적 수요를 외국의 원조에 의존하게 되면 식량생산 기반이 무너져서 계속 원조에 의존할 수 밖에 없게 되어 “원조가 저주(aid curse)”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경제원조를 통해 시장경제체제로 구조조정을 하도록 하는 정책도 대부분 실패하기 마련이라서, 아프리카 국가들 뿐만 아니라 러시아에 대한 그러한 시도가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저자는 빈곤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한 홍콩, 한국, 싱가포르, 타이완, 중국 등은 시장에서의 실험에 자신들을 스스로 던졌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이러한 나라들의 경제체제는 완전한 시장경제체제가 아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아프리카의 빈곤국가에 경제원조를 주어서 일거에 시장경제체제를 구축하겠다는 발상을 갖고 있는 개발전문가들 이야말로 시장경제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며, 후진국의 사정을 상향식(bottom-up)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저자는 또한 선진국과 국제기구의 대규모 원조로 인해 원조를 주는 기관에도 관료주의가 생겼고, 원조를 받는 국가에서도 관료주의가 생겨서 이 두 관료집단이 자신들의 지위를 보전하기 위해 공모하는 결과를 초래해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고 주장한다.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아프리카와 중남미의 빈곤 문제를 야기한 데는 유럽의 식민정책에 책임이 많음을 여러 나라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선진국들이 식민통치 못지않게 식민통치를 끝내는 과정도 무책임해서 오늘날의 문제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인도와 파키스탄 그리고 방글라데시, 수단에서의 남북 지역대결, 앙골라 등지에서의 내란 등이 모두 그 같은 잘못된 정책의 결과라는 것이다. 저자는 오늘날 경제적으로 성공한 일본, 중국, 한국 타이완 등은 식민통치 경험이 없거나 완전한 식민통치를 경험하지 않은 지역인데 비해, 스페인과 미국의 오랜 식민지였던 필리핀은 빈곤의 늪에 빠져있음을 비교해서 설명한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오랜 식민지 통치를 거쳤고, 또 독립한 후에도 서방국가들의 경제원조에 의존해 온 탓에 자생력을 상실해 버렸다는 말이다.

저자는 19세기 말에 미쓰이와 미쓰비시 같은 기업군이 성장하면서 산업화를 이룬 일본, 2차 대전 후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룬데 성공한 홍콩과 싱가포르 등 성공한 사례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즉, ‘스스로 모색하는 자’(searchers)만이 빈곤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이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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