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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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브래들리, 이집트를 파헤친다 (2009)
작성일 : 2011-02-04 00:54조회 : 2,457


존 브래들리, 이집트를 파헤친다 (2008, 2009, 팰그래브, 246쪽, 16.95달러)

John R. Bradley, Inside Egypt (2008, paperback 2009, Palgrave, 246 pages,
                                16.95 달러)

2008년에 나온 이 책의 부제는 ‘혁명 전야(前夜)에 놓인 파라오의 땅’이다. 저자 존 브래들리는 영국 태생으로 옥스포드 대학과 미국의 다트머스 대학에서 공부했고, 이집트 아랍어에 능통해서 이집트와 아랍권에 대한 현지 취재기사를 많이 썼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이집트의 무바라크 정부에 대한 불만이 폭발직전이라고 했다. 이집트 정부는 이 책이 이집트로 반입되는 것을 금지시켰는데, 그런 소식이 영국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이집트 정부는 그런 조치를 취한 적이 없다면서 물러섰고, 덕분에 이런 책이 나왔다는 사실이 이집트 내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책은 카이로 시내 오래된 건물에 자리잡은 카페로부터 시작한다. 이 허름한 카페는 이집트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모이는 장소인데, 이 건물은 1930-40년대에  카이로가 번영했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952년 쿠데타 후 반세기 만에 중산층은 사라지고 소수의 부자와 다수의 빈민 사이의 격차는 커졌으며, 정치적 부패와 성적(性的) 퇴폐가 사회 전체에 만연되어 있고, 과격한 이슬람주의자들은 체제로부터 버림받은 계층을 노리고 있다.

이집트는 아랍권에서 가장 애국적인 사람들인데, 2007년에 행한 미국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집트 국민의 87%가 정부를 불신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럼에도 이집트 국민들은 그들이 이집트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1952년에 나세르가 일으킨 쿠데타는 비민주적 체제를 도입했는데, 그것이 오늘날까지 그대로 계속되고 있다. 이집트의 진보 지식인들은 “나세르가 이집트 역사상 최악의 지도자였다”고 말한다. 수단 외에는 외국을 가보지도 못한 당시 34세이던 나세르는 정권을 잡은 다음에 자신이 아랍 세계의 맹주(盟主)인 것처럼 행세했다. 나세르는 맹주 노릇을 하느냐고 이집트의 정예부대 3만 명을 남부 아라비아 반도에 보낸 탓에 1967년 전쟁에서 변 변이 싸워 보지도 못하고 이스라엘에 시나이 반도를 내주는 수난을 당했다. 그는 자신의 패거리를 정부 고위직에 임명해서 영국 식민통치 아래서 성장해 온 관료제를 무능하게 만들었다.

나세르는 1960년에 외국인 자산과 기업을 국영화했고, 언론도 국영화했으며, 야당을 해산했다. 나세르를 자신에 항거하는 법관 수백 명을 파면하는 등 군사독재의 길을 열었다. 나세르는 1928년에 창설되어 주로 자선활동을 해온 무슬림 형제단(‘The Muslim Brotherhood’) 회원 수만 명을 투옥하고 고문했으며, 근본주의 테러에 대한 이론을 정립한 사이드 큐트브 등 수십 명을 처형했다. 이 때 살아남은 간부들은 사우디 아라비아로 도피해서 와하비 근본주의에 몰입하게 됐다. 1970년대 들어서 나세르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안와르 사다트는 이들이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돌아 오도록 허락했다.

1973년 4차 중동전 후에 사다트는 경제 개방정책을 썼는데, 그러자 부패한 지배계층은 이 기회를 이용해서 부(富)를 장악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 세계은행의 지침에 따라 이집트는 많은 공영기업을 민영화했는데, 지배계층을 이런 기회를 또 이용해서 더 많은 부(富)를 챙겼다. 이런 과정을 통해 교육을 받은 중산층은 빈곤해져서 박탈감을 갖게 되었는데, 이런 변화는 풀뿌리 조직을 갖고 있는 무슬림 형제단이 세력을 확장하는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1928년에 부패한 서구 문화 유입에 항의하는 운동으로 시작된 무슬림 형제단은 최근에 카이로 교외에 8층 건물을 새로 마련했다. 1970년대 들어서 형제단은 폭력을 정당한 수단으로 간주하는 급진파와는 결별했다. 사이드 큐트브가 뿌린 급진주의 결사는 1981년에 사다트 대통령을 암살했고, 1997년에는 룩소에서 관광객 수십 명을 살해했다. 반면 형제단은 의회 선거에 후보자를 내보는 등 합법적 방법으로 영향력을 확대해 갔다. 2005년 선거에선 88명을 당선시켜서 전체 의석의 20%를 장악한 최대 야당이 되었다. 그러나 투표참여율이 25% 밖에 안되기 때문에 형제단이 과다하게 대표되었는지, 또는 과소하게 대표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1952년 이전에는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포용했던 이집트에 무슬림 형제단이 대안세력으로 등장하고 있는 사실은 콥틱 기독교인과 수피 교인들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 이집트에선 기독교인에 대한 공격이 잦아 지고 있다. 시나이 반도에 거주하고 있는 7만 5천명 정도로 추산되는 베두인도 이집트 정부에게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이들은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베두인과 동족이기 때문에 이집트에 대한 소속감이 없는데다가, 이집트가 시나이 반도의 관광휴양지에 이집트인들의 취업을 촉진하고 있는데 대해 반감을 갖고 있다. 

오늘날 무바라크 정권을 지탱하고 있는 장치는 경찰들이 저지르는 악명 높은 고문이다. 이집트 경찰은 전기고문 등 각종 고문을 동원하고 있으나 언론자유가 없는 탓에 공식적으로는 문제가 되고 있지 않다. 사우디 아라비아와 이집트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미군이 잡은 포로를 인계 받아서 고문했음이 드러났는데, 이렇게 미국과 협력한 대가로 이집트는 미국으로부터 인권침해에 대한 비판을 받지 않았다. 무바라크 정권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장치는 부패다. 이집트 문화유물을 해외로 팔아 넘기고, 시효가 지난 백신을 리베이트를 받고 외국에서 구입하는 등 이집트 정부의 부패는 극심하다. 그럼에도 세계은행은 2008년에 이집트가 ‘개혁 우수국가’로 선정됐는데, 이 보고서를 만들 당시 세계은행 총재는 미국 국방차관으로 이라크 전쟁을 기획했던 폴 울포비츠였다.

이집트의 주된 수입원은 외국인 관광객들이다. 피라미드가 모여 있는 룩소 등 나일 강변의 관광지에서 외국인들이 뿌리는 외화가 현지 주민들의 생계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룩소는 중동지역에서 남성 매춘의 중심지가 되고 말았다. 유럽과 북미에서 온 동성애자들이 남자 아이들과 싼 값에 동성애를 하러 오기 때문에 10대 소년들은 몸을 파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또 다른 진풍경은 영국 등 유럽의 50-60대 여인들이 이집트 관광지에 와서 자기 아들 나이의 이집트 남자들과 동거하거나 결혼하는 경우다. 심지어 손자 나이 밖에 안되어 보이는 이집트 남자와 동거하는 유럽 할머니도 있다. 대부분 이혼녀들인 이들은 이집트에 와서 값싼 물가와 섹스, 좋은 기후를 즐기고 있다. 개중에는 이집트 남자를 잘못 만나서 돈을 다 뜯기고 쫓겨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보니 현지 이집트인들이 나이든 외국 여성 자체를 이상한 눈초리로 보기도 한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테러를 하는 것도 이런 풍조와 관련이 있다.

집권 30년을 넘긴 호스니 무바라크는 건강이 나쁘며, 자신의 아들 가말 무바라크에게 권좌를 물려주고 싶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들은 무바라크 부자를 제거하고 싶어 한다. 가말 무바라크는 결코 지각과 경험이 없는 경량급은 아니다. 가말은 무슬림 형제단의 주도하는 반대세력이 야기하는 위험을 잘 알고 있다. 가말이 권력을 승계하기 위해선 군부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그것도 미지수이다.

오늘날 이집트는 부패와 경제침체로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고, 혁명의 기운이 사회 전반에 팽배해 있다. 매년 20억 달러에 달하는 원조를 하는 미국은 무바라크 정부에 대해 개혁을 요구해야 하지만 ‘테러와의 전쟁’에 협력하고 있는 무바라크 정권에 대해 개혁을 요구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무바라크 정권은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에서의 개혁이 결국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대두를 초래했다고 워싱턴에 경고할 수도 있다.

2008년 4월에 이집트 전역에서 벌어진 파업은 무바라크 정권에 대한 경고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만일에 무바라크가 아들을 후계자로 지정하는 순간 대규모 반(反)정부 운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본다. 저자는 미국 정부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사로 잡혀서 이집트 문제에 대해 손 놓고 있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면서, 카이로가 불타기 전에 워싱턴은 무언가 대책을 취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c) 이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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