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토머스 소웰, 지식인과 사회 (2009년)
2011-07-14 01:36 2,012 이상돈


토머스 소웰, 지식인과 사회 (2009년, 베이직 북스, 398쪽, 29.95 달러)

Thomas Sowell, Intellectuals and Society
(2009, Basic Books, 398 pages, $29.95)

토머스 소웰의 이 책은 지식인들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해악을 여러 분야의 사례를 들어 잘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상식의 허구와 그러한 허구를 만드는데 지식인들이 기여했음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소웰은 ‘지식인’의 정의로 책을 시작한다. 의사, 엔지니어, 그리고 투자전문가는 고도의 전문지식을 갖고 이를 실제에 적용하지만 이들을 지식인으로 부르지는 않는다. ‘지식인’이란 개념의 핵심은 이들이 “생각을 거래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그는 말한다. 즉, “지식인의 작업은 생각에서 시작해서 생각으로 끝난다”는 말이다. 따라서 빌 게이츠는 지식인이 아니지만 칼 마르크스는 지식인이라는 것이다.

지식인은 책으로 자기 생각을 나타내며 책은 큰 영향을 미친다. 마르크스와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책은 읽는 사람은 없지만 세상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지식인들의 주장은 이들이 지식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에 영향을 미치지만 이들의 주장은 지나고 보면 황당한 것들이 많다. 1930년대에 독일이 재무장을 하고 있을 당시에 버트란드 러셀은 영국이 일방적으로 비무장을 할 것으로 주장했다. 1930년대에 조지 버나드 쇼는 “독재를 해야만 정부가 무엇을 할 수 있다”면서 “히틀러가 유럽을 얼마나 잘 정돈하는지 두고 보자”고 했다.

카네기, 포드, 그리고 록펠러는 그들이 생산하는 제품의 가격을 내려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제품을 살 수 있게 했고, 이러한 시장 과정(market process)을 통해서 사람들은 삶의 질을 향상시켰다. 버트란드 러셀과 조지 버나드 쇼는 이 같은 시장 과정을 ‘강도 짓’에 비유했다. MIT의 경제학자 레스터 서로우는 1980년에 나온 책 ‘제로 섬 사회’로 유명해 졌는데, 그는 미국이 실업에 관해서 최악의 기록을 가진 산업국가라고 진단했다. 서로우는 1980년대 미국의 불황을 예고했는데,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의 후유증으로 불황이 생기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서로우 교수의 진단과는 정반대로 미국에선 그 후 20년 동안 호황과 저(抵)인플레이션이 지속되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오직 지식인 집단만이 사회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 갈 수 있다고 보았다. 장 자크 루소는 사회제도가 인간 불행의 모든 근원이라고 보는 비관론을 퍼뜨렸다. 이들로 대표되는 지식인들이 보는 세상은 이처럼 온통 불행과 비극 뿐이었다. 이들은 사람들을 변화를 추구하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으로 나누어서 후자를 매도했다. 하지만 보수 사상가로 평가되는 에드먼드 버크와 아담 스미스는 미국 식민지 독립과 노예제 폐지를 일찍이 주장한 개혁주의자였다.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은 결코 현상유지를 주창한 책이 아니었고, 20세기 후반기 자유주의 경제학과 보수주의 정치철학을 주창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밀튼 프리드먼, 윌리엄 버클리 등도 현상타파를 주장한 사람들이었다.

전형적 지식인들은 진보적인데, 이들은 세상을 볼 때 자기들이 보고 싶은 현실만 필터로 걸러내서 보는 능력이 있다. 1930년대에 뉴욕타임스의 소련 주재 특파원 월터 듀란티는 당시 소련에 기근이 없었다고 보도해서 퓰리처 상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우크라이나를 방문했던 영국의 작가 맬컴 머그리지는 우크라이나에서  농부들이 굶어 죽고 있다고 본국에 기고했는데, 이상하게도 진실을 보도한 그가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됐다.

총기와 범죄와의 관련에 관한 지식인들의 연구도 대부분 자료를 왜곡한 것이다. 멕시코의 총기 소지율은 미국의 그것에 비한다면 일부에 불과하지만 살인율은 미국의 두 배에 이른다. 스위스, 이스라엘, 및 뉴질랜드는 총기 소지를 엄격하게 통제하지 않지만 이들 나라에서의 살인율은 총기를 엄격히 통제하는 일본 및 영국과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지식인 집단은 총기 보유는 살인의 증가에 책임이 있다는 식의 논리를 펴고 있다.

뉴딜주의자들이 허버트 후버 대통령을 비난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후버는 흔히 아무 일도 하지 않아서 대공황을 악화시켰다고 비난 받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상무장관으로서 노동시간 단축을 주장했던 후버는 대통령이 된 후에 연방예산 적자를 줄이기 위해 세금인상을 추진해서 관철시켰다. 그러나 후버의 조치는 대공황의 충격을 다스릴 수 없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부유층에 대한 세금을 인상하는 등 후버의 정책을 더욱 더 강화했는데, 그럼에도 뉴딜주의자들은 후버가 실패한 대통령이라고 몰아 세웠다.

1961년 미국의 살인율은 1933년의 그것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지식인 집단들이 주장한 법률 개혁이 이루어졌다. 1974년에 살인율은 1961년의 그것의 두 배가 되고 말았다. 지식인 집단은 범죄의 근본원인은 빈곤과 기회박탈이라고 하지만 미국과 영국에서 범죄가 급증한 시기는 빈곤과 기회박탈이 사라져 가고 있던 1960년대였다. 1960년대 미국 대도시를 휩쓴 폭동은 흑인들의 경제적 수준이 상대적으로 좋았던 북부에서 많이 일어났다.

제2차 대전 후에 독립국가가 된 싱가포르의 총리 리콴유는 법과 질서가 존중되고 있던 영국을 모델로 삼아 국가를 이끌어 갔는데 그의 정책은 지식인 집단이 가장 경멸하는 것들이었다. 오늘날 지식인 집단은 범죄를 야기하는 문화나 하부문화를 변화시켜나가기 보다는 그것을 ‘다문화’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있다.

전쟁과 평화에 관한 지식인들의 태도는 매우 패배적이다. 제1차 대전에서 엄청난 인력 손실을 경험한 프랑스에선 반전(反戰)주의와 평화운동이 일었다. 베스트 셀러가 된 ‘서부 전선(戰線) 이상 없다’는 그 같은 반전 무드를 한껏 북돋아 주었다. 해롤드 라스키 등 영국과 미국의 지식인들은 모든 국가가 전쟁을 포기하자는 운동을 전개했고, H.G. 웰스, 버트란드 러셀 등 당대의 지식인들이 이런 운동을 지지하고 나섰다. 프랑스에선 치열했던 베르당 전투에서 전사한 군인들을 애국자로 묘사하기 보다는 전쟁이란 비극 때문에 사망한 불쌍한 사람들로 묘사되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교사들이 이런 움직임에 앞장서서 학생들이 반전 무드에 젖어 들었다.

프랑스의 군대마저 그러한 평화운동에 희생이 되었다. 히틀러의 독일군이 폴란드를 침공하고 있을 때 프랑스 국경지대엔 독일군이 별로 없었다. 평화주의에 빠진 프랑스 군대는 독일군을 상대로 선제공격을 하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태만하게 있다가 들이닥친 독일군 탱크 부대를 맞아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정신적 무장해제가 그런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영국도 다를 것이 없었다. 네빌 챔벌레인 총리가 히틀러를 뮨헨에서 만나고 돌아오자 언론은 그를 열렬히 지지했다. 미국에선 존 듀이, 업톤 싱클레어, 제인 애담스 등이 청년들에 대한 군사훈련을 폐지하자는 선언을 했다. 제2차 대전에서 영국과 미국이 선제공격을 당한 것은 이 같은 도덕적 무장해제가 큰 역할을 했다.

1960년대 들어서 베트남 전쟁이 지루하게 지속되자 그런 분위기가 다시 소생했다. 군사적으로 볼 때에 미국은 베트남에서 결코 패배하지 않았으나 본국의 여론전쟁에서 북 베트남에게 패배한 것이다. 1968년 초 북 베트남군과 베트콩이 펼친 구정 대공세는 미군의 효과적인 반격으로 궤멸되었지만 미국 언론은 이를 미국의 패배로 묘사했다. 이로 인해 존슨 대통령은 북폭(北爆)을 중지시켰고 대통령 재선에 나서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닉슨 대통령은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 체면을 유지하는 패배를 선택하고 말았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지식인 집단이 하던 방식과는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그는 공산체제에 대한 경멸을 숨기지 않았고, 1985년에 제네바에서 고르바체프를 만났을 때에 “우리는 당신들이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도록 보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상호 군축을 하던가 아니면 군비경쟁을 하던가 둘 중의 하나인데, 당신들이 군비경쟁에서 우리를 이길 수 없음은 잘 알 것입니다”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소련을 향한 그러한 자세가 결국 소련을 무너뜨린 것이다.

애국심은 국가라는 공동 운명과 그에 대한 공동 책임을 인식하는 것인데, 지식인 집단은 1920년대부터 베트남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 이르기까지 시종일관 애국심을 경멸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이들의 이러한 태도로 인해 베트남 전쟁,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전사하거나 부상당한 미군 장병을 애국자로 보기 보다는 전쟁의 희생자라고 보는 경향이 팽배해 있다.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이러한 지식인 집단은 공공 지식인(public intellectuals)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이들은 원래 자기 전공 영역을 벗어난 주제에 대해 영향을 미치는 것이 특징이다. 원래는 언어학자였지만 자신의 영역을 훨씬 벗어난 분야에 대해 논평을 하는 노암 촘스키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공공 지식인으로서 미디어를 통해 유명인사가 된 이들 중 대부분은 학문 연구자로서의 업적은 보잘 것 없는 경우가 많다. 밀튼 프리드먼, 게리 베커, 로버트 보크, 리차드 포스너 등은 학자와 공공 지식인으로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이들은 오히려 예외적인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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