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필립 하워드, 공동선(共同善)의 붕괴 (2001년)
2011-11-13 00:00 1,556 관리자


필립 하워드, 공동선(共同善)의 붕괴 (2001년, 발렌타인 북스, 253쪽, 14달러)

Philip K. Howard, The Collapse of the Common Good
(2001, Ballantine Books, 253 pages, $14.00)

미국은 국민의 권익이 법으로 잘 보장되어 있는 나라이며, 인구에 대비해서도 변호사가 매우 많은 나라이고 또한 소송이 많은 나라이다. 법적 장치와 절차가 정교하게 구비되어서 국민의 권리가 잘 지켜지는 장점도 있지만 이로 인해 전체적 사회비용이 높아진다는 비판도 있다. 이 책의 저자인 필립 하워드는 미국의 법 제도와 변호사 과다가 초래하는 부작용이 너무 크다고 지속적으로 비판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필립 하워드는 예일 대학과 버지니아 대학 로스쿨을 나와서 뉴욕시에서 변호사로 일해 오고 있다. 그는 뉴욕시의 그랜드 센트럴 역사(驛舍) 같은 오래된 건물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투쟁에 가담해서 명성을 얻었다. 그러면서도 하워드는 산업안전법과 환경보호법의 규제가 너무 경직적이라고 주장해서 이를 개선하도록 하는데 기여했다. 1995년에 펴낸 ‘상식의 죽음’(The Death of Common Sense)에서 그는 미국의 과다하게 상세한 법규가 사실상 중앙 통제(central planning) 효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2001년에 나온 이 책에서 하워드는 걸핏하면 소송을 제기하는 미국의 풍토가 미국인의 생활과 미국 사회를 나쁜 방향으로 이끌고 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책은 소송 때문에, 그리고 소송을 우려해서 발생한 어처구니없는 일을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미국 전역의 어린이 놀이터에서 미끄럼 틀 같은 기구가 없어지고 있는데, 그것은 이런 기구에서 놀다가 작은 부상을 당한 부모들이 지방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기 때문이다. 1주일 후면 의사면허를 받게 되는 의대 졸업생이 뉴욕 근교를 운전하다가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고가 나서 길 밖으로 튕겨 나가 쓰러진 사람을 보고 처음에는 그를 도우려고 했지만 무면허 의료행위로 인해 법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냥 운전해서 지나쳐 버렸다. 이처럼 법적 공포(legal fear)가 미국의 문화를 결정짓는 요소가 되어 버렸다.

미국에서 일어난 황당한 소송과 법적 청구를 들자면 끝이 없다. 뉴저지의 한 은행을 턴 권총강도는 자신이 권총으로 위협했다고 말한 은행 직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자기는 돈을 요구했을 뿐이고 직원의 생명을 위협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마이애미 시청 직원들은 회전의자에서 떨어져서 엉덩방아를 쪘다는 이유로 진단서를 첨부해서 근로자 재해 청구를 하자, 시는 회전의자를 회수하고 예산을 들여서 고정의자로 교체했다. 그러자 직원들은 고개가 아프다는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1993년에 법원은 GM 트럭이 연료탱크가 차량의 측면에 있어서 충돌시 폭발이 났다고 판결했는데, 1999년에는 GM 세보레 승용차가 추돌로 폭발한 사건에서 연료탱크가 후면에 있어서 폭발이 일어났다고 판결했다. 그렇다면 도무지 연료탱크를 어디에다 두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툭하면 소송을 걸기 때문에 의사들은 환자를 자기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위험한 존재로 생각하며 진료를 하며, 소송을 걸기 위한 시신 해부가 붐을 이루고 있다. 학교에서 교사는 수업을 교란하는 학생을 제어하려고 하지 않는데, 공연히 말썽부리는 학생을 제지했다가는 부모로부터 소송을 당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정직이 덕목이라고 가르치던 시절은 오래 전에 끝났고, 이제 학생들은 적법절차라는 보호막 안에서 거짓말과 부정을 당당하게 하고 있다.

엽관제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도입한 직업공무원 제도는 정부 조직의 무책임을 초래했다. 엽관제는 율리시즈 그랜트 대통령 시절에 그 부패상이 극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 대한 반성으로 1883년에 의회는 직업공무원제를 도입하는 펜들턴법을 제정했다. 행정을 정치 영역 외부에 두고자 한 직업공무원제는 엽관제가 갖고 있는 문제를 상당부분 해결했지만 또 다른 문제를 야기했다. 정치적 여론에서 차단된 전문가들은 대중이 원하는 일을 하기 보다는 자신들이 원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클리블랜드 대통령에서 해리슨 대통령에 이르는 기간 중 대통령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추종자들을 직업공무원으로 임명해서 직업공무원 제도는 항구적인 엽관제가 되고 말았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무능한 직업공무원들을 해고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자 했는데, 직업공무원들의 저항에 의해 무산되고 말았다. 1960년대에 적법절차 보장이 확대되자 이제는 공무원을 해고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해 졌다.

오늘날 정치적으로 임명된 고위직 공무원들은 하급 공무원들의 무사안일과 규정만을 들먹이는 관료적 태도에 깊이 좌절하고 있다. 공립학교의 시설이 마치 구시대의 박물관처럼 되어 버린 데도 공무원들의 무사안일과 관련이 있다. 뉴저지 지사에 새로 취임한 팀 케인은 출근 첫날 자신의 데스크 램프가 타버린 것을 알고 교체하도록 지시했는데, 주정부 공무원들은 전구를 교체하는데도 책임자가 없다는 등 이유를 대면서 해결을 하지 못했다. 덴버 공항의 관제탑을 어떤 색으로 할 것인가를 두고 연방항공국과 노조가 의견이 6년 동안 갈려서 도색을 못했다. 오늘날 미국에서 공무원들은 하급 인간으로 취급 받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오늘날 우수한 대학 졸업생들은 공무원을 경멸하고 기피한다. 교직을 희망하는  학생들의 실력도 갈수록 저하하고 있다. 1998년에 매사추세츠 주 교사 시험에 응시한 지원자의 60%는 고등학교 1학년 영어와 수학 실력이 되지 못했다. 일단 교사가 되면 아무리 무능해도 해고는 거의 불가능하다. 공무원이 해고되는 경우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교사와 공무원은 적법절차라는 법적 장치에 의해서 너무나 철저하게 보호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능한 교사가 자리잡고 있는 학교를 잘 가르치는 좋은 학교로 만들기 위한 기본적인 요건은 교사를 해고하고 새로 채용하는 권한인데 아무리 의욕적인 교장이라도 이런 권한을 행사하기는 무척 어렵다. 적법절차와 관료제가 가장 무능한 사람들을 공복(公僕)으로 앉혀 놓고 평생 봉급을 주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흑인 등 소수인종을 보호하는 데 사용된 적법절차와 법 앞의 평등 보호 원칙은 이제 소수인종을 무조건 보호하는 장치가 되고 말았다. 오늘날 무능한 소수인종 직원을 해고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무능한 흑인 직원이 소수인종이라는 이유로 더 빨리 승진해서 전체 조직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일은 어디에서나 일어나고 있다. 고용에서의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이 고용에서 차별을 고질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오늘날 미국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정당하고 옳은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좌절을 느끼고 있다. 이들은 종종 자신이 해야 한다고 믿는 일을 하기 전에 그런 일이 초래할 수 있는 법적 책임에 공포를 느끼고 그냥 뒤로 물러나 버리는 것인데, 이는 미국의 기본적인 정신과 문화에 배치된다. 법적 권리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법적 권리 때문에 개인의 권리가 거대한 권력으로부터 보호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개인이 법적 장치를 동원해서 공동체의 결정을 좌절시킬 수 있다면 그것은 자유와 책임을 강조하는 미국의 전통을 좌절시키는 것이다. 소송을 일으키는 변호사, 노조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목적 뿐인 노조 지도자, 정년이 보장되어 있는 공무원과 교원은 전체 미국인의 선택을 저해하고 있다. 미국인들이 진정한 자유를 원한다면 이들이 갖고 있는 자유를 도로 회복해야 한다. 이것이 공공선을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이다.

(c) 이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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